4화. 아이와 엄마의 성장통

익숙함에 대한 고집, 그리고 숨겨진 유연성

by 김겨울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 후 '적응'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잘 지냈다. 겉으로 드러나는 걱정할 만한 신호가 없어 그저 기특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1학기가 끝나고 시간을 돌이켜보니 ‘치열하게 성장하고 있어요’ 하는 숨은 신호가 있었다.


우리 아이에게는 겉으로 보기에 모순되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새로운 환경에 대한 초기 적응이 느리다.

"걱정이라고는 처음 보는 사람뿐이야"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유독 긴장을 많이 한다.

긴장하면 두통, 복통을 호소하다 토할 때도 있었다.


둘째,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졌다.


이 두 가지 특징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였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는 건 익숙함에 대한 고집, 그리고 숨겨진 유연성.


아이 학원 시간을 학교 끝나고 바로 갈 수 있게 바꾸려 했을 때였다. 내 편의를 위해 픽업을 더 쉽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선생님이 바뀌는 것도 같이 배우는 친구들이 바뀌는 것도 절대 싫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내가 조금… 아니 많이 번거로워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에 그대로 두었다.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아이의 고집은 여전하구나’ 하면서…


서너 살 때까지 엄마만 찾는 통에 답답하고 힘들어서 혼자 운 적도 많았다. 그때 나는 여러 육아서를 찾아 읽고 한 발 뒤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우리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 잘할 수 있을 것 같긴 해!"

새로운 클래스나 단체 활동을 시작하기 전 아이는 늘 이렇게 말한다.

"모르는 친구나 선생님 있으면 부끄러워. 근데 나 할 수는 있을 것 같긴 해. 왜냐면 나 맨날 부끄럽다 하고 재밌게 하고 오잖아."

이 말속에는 두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그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는 늘 그렇게 해냈다. 심지어 잘!


초등학교 입학 후, 아이는 학교 적응에 큰 어려움을 내비치지 않았다. 잠을 좀 더 자는 정도의 변화만 있었다.

그러다 두어 달이 지나니 "수업 시간이 막 재밌지는 않다"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니 수업 시간에 집중하기보다 손을 가만두지 않는 모양이었다. 손에 거스러미가 잔뜩 올라와 엉망이 되어있었다.

아마도 이 행동이 새로운 환경에서 오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와 긴장을 스스로 해소하려던 방식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잠으로 에너지를 회복하고, 손을 만지작거리며 지루함과 불안감을 달래는 자기만의 방법이었던 거다.

다행히 매일 아침 학교에서 지킬 것을 이야기하고 약속 도장을 찍고 가면서 아이의 손은 다시 깨끗해졌다.


5개월 동안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니 아이의 성장이 크게 와닿았다.

내면의 힘, 회복 탄력성이 길러지고 있다는 것도.


지금 아이는 점심시간과 방과 후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담임 선생님 수업 시간도 이제 재밌는 것도 있고 괜찮다고 말하며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재잘 즐겁게 들려준다.


자신만의 호흡으로 긴장감을 해소하고, 학교라는 필수적인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이다.


겉으로 드러나 걱정할 만한 성장통은 없었지만 내면에서 치열하게 새로운 환경과 자신을 조율하고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겪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익숙함을 선호하지만 필수적인 변화 앞에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응해 내는 힘이 길러지고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자산을 쌓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하루하루가 더없이 기특하고 놀랍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나는 심리적 안전기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그러지 못했다. 빵 폭식과 커지는 짜증으로 나의 성장통을 표출하며 지낸 것이 부끄럽다.


아이를 통해 나 또한 내면의 힘으로 성장통을 극복할 수 있기를 다시 한번 다짐한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