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만 괴물엄마가 된 이야기 - 16화
아이에게 얼마만큼의 사랑을 줘야 ‘충분하다’고 느낄까.
아니, 나는 충분한 사랑을 주고 있을까?
요즘 첫째는 자주 말한다.
“안아줘요, 엄마.”
귀찮고 피곤해서 처음에는 밀어냈다.
그렇게 지나친 날들이 몇 번.
그런데 어느 날 새벽녘에 잠에서 깨 울기 시작했다.
“안아줘요. ”
낮에 거절당한 일이 마음에 남았던 걸까.
아니면 꿈속에서도 엄마 품이 그리웠던 걸까.
그날의 울음은 평소보다 훨씬 더 간절하게 들렸다.
그날 이후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안아달라고 하면 안아주자.
이 마음은 나만이 채워줄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안아주면 아이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오징어처럼 몸을 베베 꼰다. 그러면 안아주기 싫어진다.
나는 이미 지쳐있었고 사랑도 체력이라는 걸 실감했다.
밤마다 아이는 또 말한다.
“안아줘요, 엄마!”
나는 '누워서 안아줄게.'라고 타협을 시도하지만
그건 싫단다. 대신 아이는 내 배 위에 드러누워
천장을 보고 내 얼굴을 베개 삼아 눕는다.
이걸 견딜 수 있는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결국 처음의 따뜻한 다짐은 무너지고
내 안의 화가 불쑥 솟구친다.
“아! 안아줬잖아! 왜 가만히 안 있어!”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아이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떠올린다.
충분한 사랑을 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은 자꾸만 비틀리고 어긋난다.
또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
안아달라는 투정에 오죽하면 아이에게 별명도 붙여주었다.
“안아도령.”
처음엔 웃자고 붙인 말이었지만
입에 올릴수록 마음 한켠이 묵직했다.
혹시 나는 아이의 진심을 가볍게 넘긴 건 아닐까
그 생각에 마음이 찌르르했다.
밀쳐내고서야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 아이는 아직도 내 뱃속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걸까?
엄마의 숨결, 심장소리, 뱃속의 요람.
그 태초의 품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안아줘요’라는 말이 갑자기 너무 애처롭게 들렸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둘째를 더 자주 안아줬던 것 같다.
(갑자기 머쓱한 마음이 스친다.)
그래도 내 배 위에서 등산하듯 오르락 내리락하는 건
좀 과하잖아.
이해하려 노력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나를 힘들게 하나 싶어
미운 감정도 동시에 올라온다.
안아도령.
웃기지만 슬픈 별명이다.
그리고 또다시 나에게 그 도령이 찾아오면
이번에도 나는 괴물엄마의 얼굴을 드러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지금 이런 마음이야. 어쩌라고.”
매번 무너지는 나 자신도 결국 나니까.
오늘도 내 방식대로 괴물엄마로 살아본다.
아이는 그런 엄마라도 여전히 안아달라 말한다.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기까지
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누군가는 철없는 엄마라고 손가락질 할지도 모른다.
아이 또한 완벽한 사랑을 바라는 게 아닐 것이다.
그저 엄마 품에 안기고 싶었을 뿐이었겠지.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지친 엄마는 그 마음을 모르는 척 해본다.
나도 살아야하니까.
그래서 오늘도 괴물의 탈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