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 정책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미국 보스턴에 잠시 거주 중입니다. 이제는 구글맵 없이도 다닐 수 있을만큼 지리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은 이 도시의 물가입니다. 달러당 1400원대라는 기록적인 고환율과 살인적인 물가의 압박을 벗 삼아 지내는 이방인의 느슨한 도시 적응기를 전합니다.
우려했던 대로다. 지난 2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발표로 후폭풍이 밀려오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민 해방의 날이라고 했지만 현재로서는 그 어느 곳보다 미국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은 것 같다. 나스닥 지수는 5.9%대 S&P 500 지수는 4.8%대까지 흔들리며 팬데믹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그렸다.
현지 언론들도 트럼프 정부의 이번 결정을 두고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장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커져가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파격적인 상호관세안은 무리수라는 지적이다.
얼마 전 월스트리트 저널에 나온 기사는 미국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인들이 TV와 간장, 룰루레몬, 기네스를 사재기하느라 바쁘다는 내용이다(Americans Rush to Buy TVs, Soy Sauce, Lululemon Workout Gear). 이들 제품(혹은 브랜드)들은 대부분 수입산으로 미국에서 대체품을 찾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룰루레몬을 대표적인 수입재의 상징으로 들어 관세 부과를 앞두고 수입재 구매에 대한 미국인들의 혼란과 불안감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브랜드인 룰루레몬은 매장의 65%가 미국에 있다. 2023년 기준 전체 매출의 약 60% 이상이 이곳에서 발생했을만큼 주요한 판매처다.
룰루레몬은 그동안 동남아시아에서 지역에서 제품을 생산을 한다는 이유로 미국과 캐나다 간의 관세 갈등에서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트럼프 내각이 발표한 상호 관세안에서 베트남 제품에 46%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 아시아 국가를 정조준하면서 생산기지가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 있는 업체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미국의 관세는 브랜드 국적이 아니라 상품의 생산국(origin of goods) 기준으로 부과한다고 한다. 베트남 등에서 주로 생산해 온 룰루레몬 역시 이번 정책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나 역시 미국에 온 이후 저렴한 가격에 룰루레몬 제품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터라 기사의 헤드라인이 와닿았다. 지난해 한국에서 룰루레몬 바지를 하나 구매했는데 바지가 놀랄 만큼 편했다. 레깅스 재질이지만 입으면 슬랙스처럼 툭 떨어지는 핏이라 직장을 다니면서도 포멀하게 입을 수 있었다. 평소 많이 신는 첼시부츠나 단화와도 잘 어울리는 데다 옷도 가벼워 교복인 것처럼 수시로 입었다.
반갑게 찾은 미국의 룰루레몬 매장에는 한국에서보다 제품군이 많았지만 가격이 높아 손이 가지 않았다. 정가에 구매하기보다 clearance(재고정리)나 세일 기간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하버드대학 기념품 샵에서 룰루레몬과 콜라보 한 운동복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오늘이 제일 저렴한 날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인내심이 바닥을 친다.
식료품 가격도 오르는 수순일 될 것이다. 식료품을 파는 트레이더조나 홀푸드마켓 등 어느 매장에 가도 made in china 제품이 즐비해있다. 중국산이 아닌 걸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다. 미국은 앞으로 중국에서 수입되는 모든 상품에 34%의 새로운 관세율을 부과한다. 덕분에 중국산 제품을 유통해 온 월마트와 타겟 등 주요 유통기업들(월마트, 타겟)의 주가는 때려 맞고 있다.
Koreans be crying in H Mart next week as 25% tariff kicks in
한국도 상호관세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꽤나 치욕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교역국에 부과할 관세율을 발표할 당시 차트에는 한국 25%라고 적어놓고는, 행정명령 부속서에는 26%로 담았다. 항의와 문의가 이어지자 26%가 맞다고 우기다가, 어찌 된 일인지 25%로 정정하는 상황도 있었다. 25%가 됐건 26%가 됐건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 중 한국이 가장 큰 관세를 맞았다는 점은 변함없다.
덕분에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마다 곁에 두고 위안을 삼았던 H마트는 더 이상 안식처가 되지 못할 것 같다. H마트는 한중일 제품을 비롯한 아시아 식료품을 주로 취급하는 프랜차이즈 마트다.
소셜 미디어 X에 누군가가 올린 글. "다음 주 관세 부과되면 한국인들은 H마트에서 울겠네".
미래의 내 모습이다. 안그래도 우리 집 쌀과 김치, 참기름, 간장, 비비고 김치만두, 가래떡 모두 H마트에서 수혈하고 있는데 앞으로 한식을 어떻게 만들어 먹어야 할지 암담하다.
정부 정책은 보통 그 효과가 일상에 드러나기까지 시일이 걸리는데,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는 내 미국 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당장의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