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함께 52주 프로젝트
지구에 사는 이상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들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간다. 중력을 거스르고 싶어서 자꾸만 비행기를 타고, 우주선을 타고 무한대로 뻗어나가려는 욕망을 실현하지만 우리는 결국 어딘가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쥐꼬리만 한 안정감이라도 얻는 것이다. 하물며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들 조차 잠시 날개를 접고 중력에 몸을 맡겨 쉬어가야 한다. 이런 지구에서 나 같은 소시민은 날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내 몸 하나 뉘일 땅 조금만 있으면 충분히 만족하고 말아 버린다.
사람을 구성하는 게 외로움이라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소속감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요즘. 그 소속감이 나의 영혼이 지구에 붙들려 있도록 계속 잡아당기는 중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조금 우울하고 슬픈 얘기긴 하지만, 이 땅을 스스로 떠나는 이들의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소속감을 얻지 못해서 라고 생각한다. 단단하게 두 발로 서있으려면 중력이 나를 끌어당겨 주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자꾸만 지구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모두들 안타깝게 떠다니며 별이 되는 요즘, 나는 누군가에게 중력이 되고 싶다.
어딘가에 소속되길 노력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일단 타의적으로라도 공동체의 교집합에 포함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하지만 최근 나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회사에서 같이 일을 할 동료 디자이너를 추가로 뽑았는데 나는 새로 오시는 분 출근 당일에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언질도 배려도 존중도 무엇 하나 없이 내게 할당된 업무를 강제로 그분에게 배정하는가 하면, TF를 구성해서 의도적으로 (내가 볼 땐 의도적이었다. 왜냐하면 제삼자의 눈으로 봐도 그렇기 때문) 나를 배제했다. 업무 특성상 개발팀과 붙어서 일을 해야 하는데 나는 개발팀과도 떨어져 버렸고, 업무 일정, 프로세스 그 무엇도 공유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애처럼 보일까 봐 뭐든 스스로 찾아서 업무를 했다. 실무자한테 가서 물어보고 의논하고, 혼자 업무 리스트를 만들어서 공유도 했다. 기본적인 시스템 안에 내가 들어가 있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자꾸만 소외되는 중이었다. 점점 중력이 사라지는 기분. 발을 붙이고 안도할 수 없게 되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가 싶어서 다른 분들에게 상담도 해보고, 친구들에게도 얘기했다. 친구들은 ‘설마 너 사내 따돌림당하는 건 아니지?’라고 되물었다. 조금 힘든 와중에 웃기긴 했다. (직장 내 따돌림은 아니었다 물론) 제삼자가 보기에도 충분히 문제가 많은 상황인데 나 혼자 예민하고 지질하게 굴고 있나 싶어서 우울했는데 다들 공감해주고 같이 분노해주니 조금이라도 발끝이 땅에 연결되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중력, 그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늘 있는 거라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조금만 방심하면 내가 지구 밖으로 날아가겠더라.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아주 사소한 것임에도 멀어지지 않게 서로를 붙들고 있어 준다. 날아가지 않게. 멀어지지 않게. 작은 점이 되지 않도록. 먼 별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어지럽고 복잡한 유기체며, 아름답고 또 슬프니 지구를 떠나지 않게 붙잡아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