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가면 늘 먹고 오는 것 중 하나가 야키니쿠다. 일본 현지 맛집 사이트에 들어가 평점이 제일 좋은 곳들을 고르거나 묵고 있는 호텔 직원들에게 추천을 받는다. 사실 일본에서 야키니쿠를 찾아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다. 한국에서 먹어도 되는 음식을 왜 굳이 일본까지 가서 먹냐는 것이다(심지어 아내조차 이해를 못 한다).
반박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아니, 그들의 말이 정확하다. 한국사람 입장에서 야키니쿠 가게의 상차림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상추도 안 주고, 제공하는 고기의 양도 적으며, 밑반찬도 따로 시켜 먹어야 한다. 게다가 된장찌개도 없다. 냉면은 사실상 쫄면에 가깝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한 장면. 사진: TV도쿄
무엇보다 가게를 잘 고르지 않으면 숯불이 아닌 가스불에 고기를 구워 먹어야 한다. 그 숯불도 사실 공을 잘 들이는 곳이 많지 않다. 가스불을 쓰는 고깃집을 가는 게 한국사람 입장에선 영 어색하다. 무슨 이유에선지 일본의 고깃집들은 고기의 질에는 신경을 많이 쓰는 반면, 숯은 착화탄이나 육각 목탄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숯을 고르는 안목이 떨어져서? 만약 그렇다면 현지의 야키토리 전문점에서 쓰는 그 고급 비장탄들은 다 뭘까. 아마 가격을 조금이라도 더 낮추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하는데, 그걸 곱씹을수록 한국의 고깃집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한국도 일본도 아닌 맛, 재일동포들이 만들어 온 '원시의 불고기'
이런 수많은 단점에도 여행 중 야키니쿠 가게를 꼭 들르는 건 말로 설명하기 힘든 매력 때문이다(당연히 숯을 쓰는 가게 한정이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야키니쿠는 일제강점기 당시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이주하거나 징용당한 뒤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재일동포들의 음식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얘기해야 할 건 그들이 ‘한국인’이 아닌 ‘조선인’의 후예라는 것이다. 망한 나라 조선의 호적을 놓지 않고 사는 이들. 남한, 북한, 일본, 중국 연변 자치구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이들 말이다(물론 세월이 흐른 지금은 상기한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 분들이 더 많다).
그들의 음식은 그들의 정체성처럼 묘하게 경계를 넘나든다. 분명 둥글게 모여 앉아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는 건 한국 스타일인데, 소주대신 하이볼이나 레몬사와, 막걸리를 곁들이는 건 우리와 다르다. 양념에 고기를 담가 숙성시키는 우리와 달리 그 자리에서 묻혀 상에 내는 것도 한국 사람 입장에선 왠지 새롭게 다가온다.
언젠가 평안도와 충청도, 그리고 전라도 일부에서는 여전히 고기를 양념에 재우지 않고 묻혀낸 뒤 굽는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어쩌면 그 문화가 재일동포들의 야키니쿠에도 남아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야키니쿠란 원시의 불고기인 셈이다.
한국인인 나와 재일동포인 그들의 차이는 밑반찬을 맛볼 때 더 극적으로 느껴진다. 나물무침은 간이 훨씬 세고, 냉면은 고구마전분이 아닌 밀가루를 쓰며, 육수도 한국보다 훨씬 시큼하다. 무슨 국밥인지 설명하지 않는 그냥 ‘국밥’은 설렁탕도 갈비탕도 도가니탕도 아닌 그 어딘가에 있고, 어떤 이유에선지 김을 같이 제공하는 곳들도 있다(돈코츠라멘에 김이 고명으로 올라가기 때문일까).
마늘? 상추쌈? 쌀밥과 먹어보는 양념고기의 참맛
여기에 고기와 밥의 조화를 유난히 강조한다는 점에서도 우리와는 다르다. 한국식 바비큐가 쌈이라면 일본은 밥이다. 한국은 상추에 고기를 싸 먹는데 더 집중하는 편이지만, 일본은 밥이 있어야만 더 많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 상추쌈도 없이 밥에다 고기만 먹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먹어보면 그 이유 또한 이해가 된다.
고기에 쌀밥. 생각보다 잘 맞는다. 그나저나 나는 왜 이 국적불명의 음식이 좋을까
숯불에 잘 구운 양념고기와 밥은 생각 이상으로 잘 어울린다. 우리가 명절에 산적을 밥반찬으로 올리는 것처럼. 잘 지은 쌀밥은 하얀 도화지와 같아서 곁들여 먹는 음식의 맛을 한층 돋운다. 고기의 지방에서 녹아 나온 감칠맛, 향긋한 숯불 향이 밴 고기가 잘 지은 쌀밥과 만나면 젓가락을 멈추기 힘들다(잘 끓인 된장찌개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나는 야키니쿠집에 오면 호르몬(대창), 미노(양), 하라미(안창살)를 하나씩 시킨다. 호르몬은 소금으로 시킨 뒤 고추냉이에 같이 찍어먹는다. 미노와 하라미는 양념구이로 주문해 균형을 맞춘다. 가끔 고기에 뿌려 먹으라고 레몬을 제공하는 곳도 있고, 스키야키(일본식 불고기 전골)처럼 날계란을 풀어 찍어먹으라는 곳도 있다. 하지만 무엇을 만나든 결국 모든 고기는 쌀밥 위에 올라가는 것이 야키니쿠의 숙명이다.
국적 불명의 음식을 굳이 찾아 먹는 이유
어딘가 빈약해 보이는 서비스와 문화적 위화감에도 굳이 야키니쿠가 싫지만은 않은 이유는 특유의 가게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치 냉전시절 공작원들의 제3국 접선장소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가게들마다 콘셉트나 분위기가 다르므로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메뉴판은 사장님이 직접 손으로 써 놓아야 하고, 환기 설비가 어딘가 좀 부실해야 하며, 노르스름한 전구색 전구가 천장에 달려있어야 한다. 여기에 숯이 담긴 둥근 모양의 화로를 제공하고 김치 맛까지 괜찮으면 최고의 야키니쿠 집이라 할 수 있다. 고기와 맥주, 레몬사와까지 번갈아 먹고 마시며 떠들다 보면 어느새 가게 안에는 연기가 자욱하다.
그 감상에 젖을 즈음 생각한다. 굳이 비행기를 타고 외국까지 가 어느 나라의 맛도 아닌 음식을 시켜 먹는 이 설명할 수 없는 욕망에 대해서. 그것은 타국에서 조상의 뿌리를 체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같은 듯 다른 지역색이 특이하고 재밌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즐거운 날에는 무조건 고기를 구워 먹어야 한다는 집안 문화가 내게 영향을 줘서? 나는 첫 번째 가설에 힘을 싣고 싶은 마음이다. 근거는 없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마음대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아사도(아르헨티나식 스테이크)를 자신들의 영혼이라 부른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매년 9월 24일을 "브라이(남아공식 바비큐)의 날"로 기념한다. 우주로 발사체를 쏴 소행성의 궤도를 돌려놓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인류는 바비큐 앞에서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한다. 숯불과 고기, 쌀밥과 김치 앞에서 화목을 다지는 우리도 그 중 하나!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