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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Sep 12. 2024

바비큐의 대가는 작지 않다

한여름 주방은 끔찍하다. 가스레인지의 불길이 주방을 달구면 다른 한쪽에서는 튀김기의 유증기가 습도를 끌어올린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아이스팩도 더위를 식혀주지 못한다. 냉면이나 막국수 같은 차가운 국수를 같이 판다면 습도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그곳에 관상용 식물을 두었다면 아마 하루도 못가 시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름에는 매일 내가 시들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일한다.


날이 따뜻해지는 4월이 되면 벌써부터 여름 생각에 잠을 못 잔다. 단골 손님들과의 추억이나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보며 느끼는 쾌감 같은 건 떠오르지도 않는다. 이걸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생각할 뿐. 손님 상에 나간 물병에 물이 맺히기 시작하면 '올 게 왔구나' 싶다. 왜 하필 지구는 점점 더워지는가. 언젠가는 반드시 식당 밖을 나와 다른 일을 하겠다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자주 시켜먹는 그릴 양념치킨. 이 세상 모든 그릴러에게 사랑과 존경을!


내 주방도 뜨겁지만, 그릴 앞은 더 지옥이다


그래도 엄살은 속으로 부려야지 바깥에 티를 내면 안 된다. 세상에는 그보다 더 뜨거운 주방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일식? 중식? 한식? 아니, 내가 아는 한 진짜 지옥은 그릴 앞에 있다. 물은 100도씨, (조리에 적합한 온도를 기준으로) 기름은 165도씨지만 그릴은 최소 온도가 400도씨다.


그릴 앞이 지옥이라고 말하는 게 사실 나뿐만은 아니다. 요리 저널리스트 빌 버포드가 쓴 책 <앗 뜨거워!>에서도 똑같은 표현이 나온다. 잡지 <뉴요커>의 기자였던 그가 평소 친분이 있던 마리오의 이탈리아 식당 '밥보'에서 일한 경험을 옮긴 책이다.


거기서 그는 그릴파트에서의 노동을 단테의 <신곡>에 묘사된 지옥에 비유했다. 미끄럽고 축축하고 음침하고 뜨거운 공간. 날고기를 만진 손은 늘 비계로 미끈거린다. 그 손을 세제로 닦아야 하기에 바닥은 늘 축축하다. 불꽃의 색으로 오븐의 온도를 판별해야 하기에 조명은 늘 어둡다. 그리고 모든 것을 태워버릴 만큼 뜨겁다.


그 조건에서 요리사는 수십 개의 고기와 생선 스테이크를 시간 내에 조리해야 한다. 웰던 미디엄 웰던, 미디엄, 미디엄 레어, 레어, 블루 레어로. 저자 빌 버포드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팔뚝을 홀라당 그슬린다. 그곳에서는 고기도 태우고 자신의 팔뚝도 태운다. 이 책을 처음 읽은 때가 2019년 여름이었는데, 한여름에 힘들 때면 늘 책에서 묘사된 파인다이닝의 그릴 파트를 생각한다.


내가 간사한 인간이라는 걸 이따금 느끼는 게, 그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일하는 곳이 조금은 시원하게 느껴진다. 분명 기름 옆에서 일하는 게 불구덩이 앞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이런 일상 탓인지 한여름에 그릴 치킨을 사 먹을 때면 마음이 좀 복잡하다. 그냥 밥을 사 먹을 뿐이고, 그 식당에서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가끔 마음 속 어딘가가 무겁다. 이따금 찾는 집 앞 그릴 치킨집에 가면 특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건강을 담보로 만드는 바비큐


최근에도 집에서 먹을 치킨 한 마리를 소금 양념으로 포장 주문했다. 사장님이 물 한잔을 들이켜더니 이내 마스크를 끼고 내가 먹을 닭을 석쇠에 올려놓고 굴리기 시작했다. 닭 껍데기의 지방이 불길에 닿을 때마다 하얀 연기가 일었다. 기름을 떨구며 익는 치킨의 향은 훌륭했다. 하지만 저 냄새를 매일 맡는 사람도 그 향이 맛있게 느껴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치킨이 나왔다. 열기가 식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정성들여 구워낸 그릴 치킨은 적절한 소금간에 불 향이 적절하게 섞여 있었다. 씹을수록 닭의 감칠맛과 불 향에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영 불편했다. 아마 급식노동자들의 폐암 발병률이 다른 직군에 비해 높다는 기사를 본 직후여서 그런것 같았다. 그들의 일이 곧 나의 일이기도 하니까.


프라이팬이든 숯불이든 굽거나 볶는 조리법은 상당히 많은 미세먼지를 내뿜는다. 그래서인지 주방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 중에는 비염이나 축농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내 코도 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 세상은 넓고 뜨악! 할 만큼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직군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식당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며 '전국 고생자랑'을 하려는 건 더욱 아니다.


남이 해 주는 요리는 맛있지만


하지만 분명 요식업이 만만한 일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하다. 후안 모레노가 쓴 <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 에는 후안 아마도르라는 미쉐린 3 스타 셰프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는 밀키트에서부터 생수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제품에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있었는데, 이렇게 독하게 돈을 버는 이유는 단 하나, 빌어먹을 주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같이 일했던 동료가 화덕 앞에서 과로사로 쓰러져 죽는 걸 지켜본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남이 해 주는 요리는 맛있다. 특히 그게 바비큐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대가는 결코 작지 않다. 정당한 거래라지만 그 대가에 공급자의 건강이 포함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잘 아는 사장님들에게 덕담으로라도 '오래오래 번창하세요!' 라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 바짝 벌었으면 털고 나가는 것도 슬기로운 방법일 수 있다. 아무리 즐거워도 결국 일은 일이니까.


모두가 그러지 못해서, 또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여러 사연으로 지금까지 일 하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몸을 허물어 수지타산을 맞추는 사장님은 부디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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