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주방은 끔찍하다. 가스레인지의 불길이 주방을 달구면 다른 한쪽에서는 튀김기의 유증기가 습도를 끌어올린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아이스팩도 더위를 식혀주지 못한다. 냉면이나 막국수 같은 차가운 국수를 같이 판다면 습도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그곳에 관상용 식물을 두었다면 아마 하루도 못가 시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름에는 매일 내가 시들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일한다.
날이 따뜻해지는 4월이 되면 벌써부터 여름 생각에 잠을 못 잔다. 단골 손님들과의 추억이나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보며 느끼는 쾌감 같은 건 떠오르지도 않는다. 이걸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생각할 뿐. 손님 상에 나간 물병에 물이 맺히기 시작하면 '올 게 왔구나' 싶다. 왜 하필 지구는 점점 더워지는가. 언젠가는 반드시 식당 밖을 나와 다른 일을 하겠다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자주 시켜먹는 그릴 양념치킨. 이 세상 모든 그릴러에게 사랑과 존경을!
내 주방도 뜨겁지만, 그릴 앞은 더 지옥이다
그래도 엄살은 속으로 부려야지 바깥에 티를 내면 안 된다. 세상에는 그보다 더 뜨거운 주방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일식? 중식? 한식? 아니, 내가 아는 한 진짜 지옥은 그릴 앞에 있다. 물은 100도씨, (조리에 적합한 온도를 기준으로) 기름은 165도씨지만 그릴은 최소 온도가 400도씨다.
그릴 앞이 지옥이라고 말하는 게 사실 나뿐만은 아니다. 요리 저널리스트 빌 버포드가 쓴 책 <앗 뜨거워!>에서도 똑같은 표현이 나온다. 잡지 <뉴요커>의 기자였던 그가 평소 친분이 있던 마리오의 이탈리아 식당 '밥보'에서 일한 경험을 옮긴 책이다.
거기서 그는 그릴파트에서의 노동을 단테의 <신곡>에 묘사된 지옥에 비유했다. 미끄럽고 축축하고 음침하고 뜨거운 공간. 날고기를 만진 손은 늘 비계로 미끈거린다. 그 손을 세제로 닦아야 하기에 바닥은 늘 축축하다. 불꽃의 색으로 오븐의 온도를 판별해야 하기에 조명은 늘 어둡다. 그리고 모든 것을 태워버릴 만큼 뜨겁다.
그 조건에서 요리사는 수십 개의 고기와 생선 스테이크를 시간 내에 조리해야 한다. 웰던 미디엄 웰던, 미디엄, 미디엄 레어, 레어, 블루 레어로. 저자 빌 버포드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팔뚝을 홀라당 그슬린다. 그곳에서는 고기도 태우고 자신의 팔뚝도 태운다. 이 책을 처음 읽은 때가 2019년 여름이었는데, 한여름에 힘들 때면 늘 책에서 묘사된 파인다이닝의 그릴 파트를 생각한다.
내가 간사한 인간이라는 걸 이따금 느끼는 게, 그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일하는 곳이 조금은 시원하게 느껴진다. 분명 기름 옆에서 일하는 게 불구덩이 앞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이런 일상 탓인지 한여름에 그릴 치킨을 사 먹을 때면 마음이 좀 복잡하다. 그냥 밥을 사 먹을 뿐이고, 그 식당에서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가끔 마음 속 어딘가가 무겁다. 이따금 찾는 집 앞 그릴 치킨집에 가면 특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건강을 담보로 만드는 바비큐
최근에도 집에서 먹을 치킨 한 마리를 소금 양념으로 포장 주문했다. 사장님이 물 한잔을 들이켜더니 이내 마스크를 끼고 내가 먹을 닭을 석쇠에 올려놓고 굴리기 시작했다. 닭 껍데기의 지방이 불길에 닿을 때마다 하얀 연기가 일었다. 기름을 떨구며 익는 치킨의 향은 훌륭했다. 하지만 저 냄새를 매일 맡는 사람도 그 향이 맛있게 느껴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치킨이 나왔다. 열기가 식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정성들여 구워낸 그릴 치킨은 적절한 소금간에 불 향이 적절하게 섞여 있었다. 씹을수록 닭의 감칠맛과 불 향에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영 불편했다. 아마 급식노동자들의 폐암 발병률이 다른 직군에 비해 높다는 기사를 본 직후여서 그런것 같았다. 그들의 일이 곧 나의 일이기도 하니까.
프라이팬이든 숯불이든 굽거나 볶는 조리법은 상당히 많은 미세먼지를 내뿜는다. 그래서인지 주방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 중에는 비염이나 축농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내 코도 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 세상은 넓고 뜨악! 할 만큼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직군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식당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며 '전국 고생자랑'을 하려는 건 더욱 아니다.
남이 해 주는 요리는 맛있지만
하지만 분명 요식업이 만만한 일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하다. 후안 모레노가 쓴 <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 에는 후안 아마도르라는 미쉐린 3 스타 셰프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는 밀키트에서부터 생수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제품에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있었는데, 이렇게 독하게 돈을 버는 이유는 단 하나, 빌어먹을 주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같이 일했던 동료가 화덕 앞에서 과로사로 쓰러져 죽는 걸 지켜본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남이 해 주는 요리는 맛있다. 특히 그게 바비큐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대가는 결코 작지 않다. 정당한 거래라지만 그 대가에 공급자의 건강이 포함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잘 아는 사장님들에게 덕담으로라도 '오래오래 번창하세요!' 라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 바짝 벌었으면 털고 나가는 것도 슬기로운 방법일 수 있다. 아무리 즐거워도 결국 일은 일이니까.
모두가 그러지 못해서, 또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여러 사연으로 지금까지 일 하는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몸을 허물어 수지타산을 맞추는 사장님은 부디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