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에 대한 환상이 있다. 사회과부도에서 보곤 했던 광활한 초원. 영화로웠던 실크로드. 밤이면 별이 가득한 곳. 호탕하고 순수한 사람들. 세계를 호령하던 투르크 유목민들의 말타기 솜씨. 그리고 케밥과 샤슬릭. 보통 좋아하는 게 하나만 있어도 꽤나 행복한 날이라 할 수 있는데, 중앙아시아에는 내가 동경하는 것들이 그득그득했다.
동대문 우즈베키스탄 식당에서 먹은 샤슬릭. 왜 이렇게 안나오나 했더니 팔뚝만한 걸 구워오셨다
하지만 갈 수 있을까? 아마 가지 못할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겁이 좀 많다. 어디든 훌쩍 떠날 처지도 안 되고(이건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무뚝뚝한 보안 요원들의 시선을 회피하며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건 어떤가.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며 지하철을 탄 뒤 다시 공항철도로 환승해 한 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는 건 어떻고.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 덩치 큰 택시기사들은 어떻게 뿌리치지? 현지에서 여권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는? 내가 외국인임을 안 현지의 장사꾼들이 바가지를 씌울 때는? 하소연하기 어려운 행정적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느 식당이 제일 맛있을까? 빵 냄새를 맡자!
언제든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과 장사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최근에는 배달 대행업체의 관제 시스템이 마비돼 장사를 망쳤다). 매일을 불확실 속에서 일하며 살아가므로 휴식만큼은 예측 가능한 영역 안에 있기를 원한다. 내가 모험을 싫어하는 이유다. 그렇기에 간접경험은 나름 열정적으로 하는 편이다. 만약 서울에 우즈베키스탄 식당이 있다면 어떨까? 어찌 안 갈 수 있겠는가! 지인으로부터 동대문 DDP 뒤편 골목에 중앙아시아 골목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때마침 팀 버튼 전시회를 보기로 날을 잡아 놓은 터라 나는 그 간접체험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중앙아시아 골목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음침했다. 1990년대 힙합 뮤직비디오에 나올 법한 느낌의 골목에 들어서니 덩치 큰 중앙아시아 아저씨들이 모국어로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거기서 조금 더 들어가니 몽골과 우즈베키스탄 식당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까? 몽골의 양고기 찜 허르헉인가, 중앙아시아 숯불 꼬치구이 샤슬릭인가. 갈등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는 찜보다 구이를 더 사랑하니까. 게다가 가게 이름도 무려 사마리칸트다. 실크로드 한복판에서 중계무역으로 천년 간 번영을 누렸던 도시 아닌가!
문제는 이 사마리칸트라는 이름의 식당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상표등록이 허용되지 않는 고유명사 때문일까, 아니면 가족 경영의 결과물일까. 전자라면 대체 어디가 원조란 말인가. 후자라면 이 가게의 가장 어른이 담당하는 매장은 어느 곳인가. 여기저기 서성이다 막 구운 빵을 밖에 쌓아 놓은, 가장 구석진 곳의 ‘사마리칸트’로 향했다. 가게 문 앞을 지나치는데 빵 냄새가 범상치 않았다. 한국은 깍두기가 맛있어 보이면 그 식당은 더 볼 것도 없지 않은가. 분명 빵이 맛있다면 그 집은 뭐든 잘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었다.
크고, 푸짐하고, 묵직한 우즈베키스탄 요리
묵직한 슈르파 한 접시
자리에 앉자마자 사장님으로 보이는 여사님 한 분에게 양고기 수프인 ‘슈르파’와 빵 하나, 그리고 샤슬릭 한 세트를 시켰다. 말이 통하지 않아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켰다. 슈르파에는 당근과 양파가 들어간 맑은 국물에 뼈가 붙은 고기 한 덩이가 들어있었다.
단출한 재료 구성이지만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어느 부위의 뼈인지 묻고 싶을 정도로 뼈가 굵고 고기가 큼직했다. 싱가포르에서 먹은 돼지갈비 수프 바쿠테가 라이트급이라면, 우즈베키스탄 양고기 수프는 헤비급, 아니 무제한급에 가까워 보였다.
국물을 떠서 맛을 봤다. 어떤 기교도 없이 단조로운 조리법에서 나온 재료의 단맛들이 느껴졌다. 오래된 고기에서 나오는 큼큼한 냄새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양고기의 육향이 국물에 기분 좋게 스며 있었다.
양고기에서 나는 육향을 잡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 음식에서 약간의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그 향을 좋아하는 편이다. 신선한 고기에서 느껴지는 육향과 오래된 고기의 누린내는 분명 다르다. 고깃집에서 고기 굽는 냄새를 누린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잘 조리된 양고기의 향은 식욕을 끌어올린다.
뼈에 붙은 고기는 겉으로 봐선 굉장히 뻑뻑해 보였지만 포크를 대 보니 잘 삶은 돼지 등뼈 같이 부드러웠다. 고기를 전부 발라 먹은 뒤 추가한 빵에 국물을 찍어 먹었다. 따뜻하고 든든했다.
완벽한 굽기, 터지는 육즙. 자존심이 상하는 맛
문제는 샤슬릭이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왜 샤슬릭은 안 나오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부질없어 보였다. 말이 아예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고충을 갖고 있는 배달 기사님이 시계를 가리키며 ‘왜 안 나오냐’며 하소연을 했으나, 사장님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우즈베키스탄 말로 대답해 줄 뿐이었다.
그렇게 샤슬릭은 장장 40분 만에 나왔다. ‘아니! 이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샤슬릭의 크기가 나의 입을 가로막았다. 이 정도 크기면 그 누구라도 늦은 주문을 이해시키는 데 충분해 보였다. 크기가 내 팔뚝만 했으니까. 저기, 이거 샤슬릭 맞죠? 양고기 스테이크 아니죠? 이게 고작 7000천 원(2021년 가격)이라니, 남는 게 있는 걸까?
이미 양고기 수프와 얼굴만 한 빵 하나를 다 먹었기 때문에 배가 터질 것 같았음에도 샤슬릭은 맛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원초적 맛의 바비큐였다. 은은한 불맛, 폭발하는 육즙, 커민과 향신료의 적절한 조화.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내 납득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 마찬가지로 고기도 구워 본 놈이 굽는다. 수천 년 간 고기를 구워 먹은 민족의 꼬치구이란 한층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상기했다. 이 요리가 5세기 경 사회과부도 속 세계지도를 파랗게 물들였던 이들의 것임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은 모두 투르크족의 후손으로 서로를 ‘여섯 나라 한 겨레’로 칭한다. 당연히 음식과 접대 문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샤슬릭이 우즈베키스탄에도 있고 카자흐스탄에도 있다. 모두 화덕에 단단한 빵을 구워 수프와 함께 먹고, 식사에는 늘 고기 요리와 요거트가 등장한다. 중앙아시아의 그 넓은 땅이 전부 투르크족의 활동반경이었기 때문이다.
아아, 이것은 자유의 맛
이는 그들이 군사적으로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목민으로서 국경이 없는 삶을 살아온 때문도 있다. 투르크족은 하늘 아래 땅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곳을 자신의 나라라 믿으며 살았다. 유목민족이니 양과 말이 살기 좋다면야 그곳이 어디든 중요치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영토라는 단어는 그들의 삶과 문화를 제대로 표현하는 데 무리가 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영토라는 단어는 근대적 개념이며 구성원들에게 경계선 내의 정주를 강제하기 때문이다. 유목민의 삶이란 얄팍한 국경선과 철조망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곳을 향해 말을 달리든 그들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으리라. 그곳이 어디든. 무엇이 있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식사를 자유의 맛이라 규정했다. 러시아 아무르강부터 터키 아나톨리아를 아우르는 유목민족의 맛! 그들의 음식을 마주하고 있는 경기도 거주 농경민족! 식사 내내 내 위장은 유라시아 초원을 유랑했다. 칼로리가 높은 식사 때문인지 가게 문을 나설 때 발걸음에 힘이 실린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