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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Aug 29. 2024

사실 저는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 사실 우동을 진짜 싫어해.”

“에?”

“아, 말하니까 살겠다. 그럼 난 라멘 먹으러 간다. 넌 그래도 우동 꽤 좋아하더라. 수고해.”     


이로 작가가 쓴 돈가스 여행기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의 구절 중 하나다. 말 그대로 돈가스 가게를 들른 소회를 쓴 기행문이다. 주문한 돈가스를 기다리는 사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작가는 의식의 흐름대로 자유롭게 자신의 감상을 늘어놓는다. 너무 자유로워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작가는 찾아간 돈가스집의 너무나도 완벽한 서비스에 탄복하는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이윽고 4대째 우동 명인이 5대째 자식에게 넘겨주며 고백하는 장면까지 떠올리고 만다. 분명 원치 않게 가업을 이어받는 사람이 한 명 쯤은 있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저 동네 구석의 돈가스집에서 일하고 있을 따름이지만, 그 구절을 읽고 순간 뜨끔했다. 수년 간 안고 살아왔던 비밀을 들켜버린 느낌. 이제는 말해야겠다. 단골 여러분, 죄송합니다. 사실 저는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온몸으로 사랑해도 모자랄 판에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서 송구합니다.


그렇다고 성의 없이 요리를 하는 건 아니다. 온 가족이 달라붙어서 하는 장사인 만큼 최선을 다해 만든다. 우리는 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돈가스를 미리 튀겨본다. 새 기름에 막 튀긴 돈가스를 제일 먼저 먹어보는 건 요리하는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특권이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음, 맛있네. 밥이랑 같이 떠서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제야 돈가스는 손님 상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다.


돈가스를 판다고 꼭 돈가스만 좋은 건 아니다


다만 나로서는 삼시 세끼 매번 돈가스가 먹고 싶...지는 않다. 너무 자주 먹으면 속도 더부룩하고 몸도 무거워진다. 맛은 있지만 365일 함께하긴 어렵다(매일 아침마다 먹고 있어서 그런 걸까). 흔히 말하는 '처돌이'급은 아니라는 얘기다. 자신의 취향과 소비자의 필요가 완전히 일치하면 참 좋겠지만, 어떤 직군에 있든 그런 행운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할 터. 아쉽게도 현재의 나는 돈가스를 삼시세끼 먹고 쉬는 날에도 돈가스맛집을 찾아가는 그런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사실 저는 구이가 더 좋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뭐가 좋냐고? 사실 나는 튀김보다 구이가 더 좋다. 불맛이 느껴지는 음식이라면 뭐든 오케이. 이건 삼시세끼 줘도 먹을 수 있다. 참숯으로 구워도 좋고, 연탄으로 구워도 좋고 볏짚으로 구워도 좋고, 오븐으로 구워도 좋다. 정 안되면 토치도 좋다. 재료도 상관없다. 채소도 좋고, 고기도 좋고, 생선도 좋다. 양념을 발라도 좋고, 소금간만 해도 좋다. 밥에도 어울리고, 술에도 어울리고, 탄산음료와도 어울린다.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도 구이는 재료의 맛을 끌어내는 가장 확실한 조리방법이다. 굽기만 적당히 조절한다면 음식이 실패할 이유도 없거니와 일단 모양새도 그럴듯해진다(물론 그 안의 '디테일'을 어떻게 채우는가에 따라 맛은 하늘과 땅 차이다). 혹자들은 튀김 요리를 두고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말은 사실 구이에도 통한다. 확신한다. 분명 신발을 구워도 맛있을 것이다.


식재료가 불에 닿는 순간, 질긴 조직은 연해지고, 수분은 날아가며, 조직 속의 당분과 지방이 녹아 나오면서 감칠맛이 극대화된다. 그 맛은 늘 직관적이고 원초적이다. 구이가 인류 최초의 조리법인 건 다 이유가 있다.


이것은 어느 구이 처돌이의 고백


하지만 살인적인 인구밀도의 대한민국에서 구이 요리는 지극히 한정된 공간에서만 즐길 수 있다. 집 안에서 연기를 피웠다간 이웃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고, 아끼는 옷과 침대 시트에 온통 냄새가 밸 것이다.


가게에서 그릴 요리를 선보일 때도 그렇다. 이웃한 상점과의 협조는 필수다(같은 장사꾼끼리 척을 지면 매일이 지옥 같다). 운이 좋지 않다면 환풍 시설을 보강하는데 추가로 비용을 치뤄야 한다. 연기를 피우는 가게들이 좀처럼 자리잡기가 힘든 환경이다. 나 같은 구이 러버들은 미처 채우지 못한 갈증에 시달린다. '아아, 그때 한 점이라도 더 먹을 걸' 하면서.


그러니까, 안타깝게도 이 연재는 돈가스에 관한 것이 아니다. 튀김에 질린 요식업 종사자 겸 구이 처돌이가 털어놓는 개인적 취향에 관한 이야기다. 대단하진 않지만 불을 피우지 못하는 공간에서 불맛을 내기 위한 다양한 요리와 조리법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자 한다.


돈가스나 썰고 있는 일개 자영업자의 취향 따위 뭐 궁금하겠냐만. 그래도 후련하다. 여러분, 그래도 다른 식구들은 돈가스를 좋아합니다. 그럼 이제 저는 닭꼬치 먹으러 다녀올게요. 수고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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