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로 Apr 04. 2024

커피를 온전히 마셔본 적 있나요?

커피나 차를 마시는 곳.      

          

카페의 사전적 정의다. 하지만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른 테이블에 시선을 돌리면 때때로 보험 계약서에 사인을 하거나, 과외를 하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시켜 놓은 커피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들도 종종 봤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속 얼음이 다 녹아 커피인지 보리차인지 구분이 안 되는 지경인데 여전히 잔은 가득 차 있다. 그 모습들을 보면 카페에서 커피란, 모든 일의 후순위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도 그랬다. 내게 커피는 잠을 깨기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집에 있으면 한없이 게을러지는 내게 카페란 생산성을 제고시키는 장소였다. 카페에 오면 늘 책을 읽거나, 배달 앱 공지를 올리거나, 그 외의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이 카페가 맛있는 커피를 주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직원이 친절하고, 화장실이 청결하며, 테이블 밑에 콘센트가 설치돼 있으면 됐다. 이것만 다 갖춰져 있다면 맛없는 커피를 내려줘도 상관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이 가치관에 변화가 생긴 건 보름 전이다. 정말 모든 게 완벽한 카페인데 커피에서 담뱃재 맛이 났다. 불맛을 좋아해서 그릴 치킨만 먹는 인간인데도 이 탄 맛은 견디기 힘들었다. 분명 이 공간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카페란 좋은 커피를 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이 카페 또한 그 역할에 충실한 것이리라. 그 어떤 가게도 완벽할 순 없다. 그동안 내가 훌륭한 커피를 내려 주는 카페를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정말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에 가 보기로 결심한 건 그래서였다. 시그니처 블렌딩 메뉴가 있으며, 다양한 원두를 적정 온도에 로스팅해 바디감을 살릴 줄 아는 곳. 정확히는 그런 리뷰가 많은 카페를 검색해 찾아갔다. 기준에 부합하는 카페가 자주 가는 도서관 근처에 하나 있었다.


찾아간 카페는 다양한 두종(豆種)을 취급하고 있었다. 오렌지 브릭, 파나마 가이도 게이샤 내추럴, 인도 아라쿠 내추럴 등 스무 종 가량이었다. 이 두종을 고른 다음 커피의 종류를 또 골라야 했다. 수십 가지의 선택지. 살짝 어지러웠다. 생전 처음 중국집에 온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대체 뭘 골라야 실패하지 않는단 말인가! 뒷페이지를 보니 취급 원두의 산미와 향미가 함수 좌표처럼 표현돼 있었다. 그 덕에 가까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과일향이 난다는 엘살바도르 산타 로사 파카마라를 필터 커피로 차갑게 부탁했다. 제일 산미가 강한 두종이었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으로 파카마라 원두를 검색했다. 엘살바도르가 원산지이며 ‘파카스’와 ‘마라고지페’ 라는 커피나무를 접목해 만든 품종이란다. 그러니까 파카마라는 파카스와 마라고지페의 합성어였던 셈. 이 원두는 굉장히 크기가 큰 편인데, 신경 쓰지 않으면 겉은 타버리고 안은 덜 익는단다. 해서 적정 온도로 오랜 시간 로스팅 해야 맛과 향을 살릴 수 있는 품종이라고도 했다. ‘커피의 세계란 심오하구나’ 싶었다.   


사실 모든 세계란 심오한 것이 아닐까. 내가 튀기는 돈가스의 세계도 마찬가지. 수만 가지의 레시피가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보통 콩기름에 튀기는 게 일반적이지만, 종주국 일본에서는 여러 가지 기름을 혼합해 쓴다. 라드(돼지의 지방)는 물론이고 땅콩기름, 참기름 등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당연히 이 비율은 가게마다 극비 사항이다. 쉬워 보이지만 발연점을 220도 선에서 맞춰야 튀김이 까맣게 타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가 따라온다. 원했던 맛과 향을 잡아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일일이 섞어보고, 일일이 튀겨봐야만 알 수 있다.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필터로 내린 커피와 컵이 따로 나왔다. 컵에는 공 모양으로 깎아낸 얼음이 들어 있었다, 얼음이 녹으면서 커피가 묽어지는 걸 최대한 막기 위한 방법 같았다. 한 모금 들이켰다. 산미가 느껴졌다. 시큼과 상큼의 중간 그 어딘가다. 근데 이게 과일 향이라고? 아직 커피의 심오함을 모르기 때문일까. 내가 평소에 먹던 그 어떤 과일의 향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산미가 지나간 뒤 찾아오는 향이 좋았다. 가볍고 경쾌하다. 여름에 마시면 딱이겠다 싶었다. 커피를 마시고 가게 내부를 구경하기를 반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건만 그 자체로 정신이 고양되는 기분이었다.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에 나오는 초등학교 교사가 떠올랐다. 주인공인 미사키가 고향으로 돌아와 오픈한 카페 ‘카페 요다카’의 첫 손님이다. 그녀는 가정방문 후 잠시 휴식을 취할 겸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신다. 한 잔 들이켜고 미간을 찡그리면서 후아! 숨을 내쉰다. 나는 그 장면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 커피가 그저 잠을 깨기 위한 액체인 삶을 살아온 탓인지 그 모습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 장면을 보며 남이 타 주는 커피를 만끽한다는 건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사실 이는 주인공인 미사키조차 미처 깨닫지 못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미사키는 카페 근처에 사는 여자 에리코의 내연남에게 성폭행 시도를 당한다(불행 중 다행으로 미수로 끝난다). 내연남을 경찰에 인계하고 몸을 추스른 그녀는 생전 처음으로 타인이 내려준 커피를 맛본다. "남이 타 주는 커피란 이렇게 맛있구나" 영화는 커피가 사람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매달 커피값으로 몇 만 원씩 쓰면서도 커피 향을 진심으로 느껴보려 했던 날은 얼마나 됐을까.     


겉핥기의 시대다. 뭘 쓰고 이용하든 자꾸 표면만 겉핥는 기분이다. 요리부터 법률 정보까지 쇼츠 영상으로 나오는 세상. 본질을 느끼려는 노력이 사라진 자리를 ‘배경’, ‘용도’ ‘꿀팁’ 같은 단어들이 채운다. 유튜브 뮤직에서는 운동할 때 듣기 좋은 음악, '공부할 때 듣기 좋은 곡들'이 늘 추천 알고리즘에 뜬다. 너무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모두가 하나라도 더 품에 넣기 위해 애쓰는 나머지 깊이와 몰입마저 포기하게 된 것은 아닐까.


삶의 충만함은 본질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으로 이뤄진다. 내가 누리는 서비스와 용역을 최대한 만끽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모두가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다 몰라도 괜찮다. 그저 한 걸음 더 다가가 만끽하려는 자세만 있으면 된다. 그래야 새로운 것이 보인다. 이는 사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소비자로서의 본질이기도 하다.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서려는 자세가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쉬는 날이라도 커피와 원두에 공을 들이는 카페들을 더 많이 찾아가 보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도서관에서 커피 관련 서적도 빌려 볼 생각이다. 커피 맛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았으니까. 사실 오늘이 그 첫날이다. 주문한 커피가 왔다! 읽던 책을 잠시 덮어야겠다.                        





      

이전 04화 왜 세상은 경쟁할 때만 집중을 요구할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