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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Jun 12. 2024

습격하고 싶은 맥도날드 빅맥

그린사람: ㅅㅂ


가끔 일이 아주 늦게 끝날 때가 있다. 창고 정리나 환풍기 청소 때문인데, 새벽에 일찍 나오거나 자정이 다 돼서 퇴근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잠이 많아 새벽에는 도저히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게 집에 간다. 여름에는 모두가 창문을 열고 자기 때문에 이 시간에 냄새를 피우며 요리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가게서 먹고 오면 되지 않냐고? 마감이 끝난 가게 주방을 다시 어지럽히는 건 더 싫다. 


그럴 때면 아주 가끔 맥도날드에서 빅맥 세트를 사 먹는다. 지난주가 그랬다. 새벽 한 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키오스크에 원하는 메뉴를 고르고 카드결제를 마치고 나니 5분 안에 음식이 나왔다. 새벽 두 시에도, 새벽 네 시에도 누군가가 주문을 하면 주방으로 주문서가 출력되고, 5분 안에 음식이 나올 것이다. 흠잡을 것 없이 구축된 시스템이지만, 이를 유지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나는 자연히 주방 안의 모습에 이입된다. 하루 중 힘이 나는 때가 딱 두 번 있다. 점심 먹을 때랑 마감 시간을 알리는 블랙보드를 밖에 걸어둘 때다. 끝이라는 게 존재해야만 힘이 나고, 그 힘으로 하루를 간신히 넘긴다. 그제야 나도, 수백 번씩 문을 여닫아 내부 온도가 올라간 냉장고도, 하루 종일 불을 밝힌 매장의 조명들도 잠시 쉴 수 있다. 


맥도날드는 그런 리듬과는 거리가 멀다. 24시간 끊임없이 일하는 사람과 기계들, 그리고 자정이 넘어 일을 마치고 햄버거로 배를 채우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하는 일의 흐름을 알 수 없어 아득하다. 그래도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 덕분에 지금 내가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것이겠지. 지친 사람들 고단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햄버거를.


그렇게 평소대로 받은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세상이 좋아진다고 말하면서 왜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답은 꽤 간단했다. 인류 최후의 블루오션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면 되니까. 


사람들이 잠드는 시간을 일하고 소비하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취할 수 있는 이득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물건들은 좀 더 빠르고 신선하게 소비자 앞에 도달할 수 있고, 잠들지 않는 군인들은 피곤한 상대를 쉴 새 없이 몰아붙일 수 있다.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과 수입을 맞바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런 구상은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침투했다. 이제 새벽배송은 없으면 불편함을 느낄 정도다. 72시간 무수면 훈련을 도입하는 부대들도 늘어나고 있다. 중단 없는 생산. 멈추지 않는 시스템. 끊임없이 몸집을 불리려는 자본에게 잠이란 점령되지 않은 마지막 식민지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빵가게 재습격>은 이런 시각에서 보면 꽤나 전복적인 발상의 작품이다. 늦도록 일을 마치고 집에 온 주인공 부부는 배고픔을 참지 못한 나머지 새벽에 맥도날드를 습격한다. 무려 산탄총으로 무장한 그들은 영화 속 은행강도처럼 직원들을 기둥에 묶어놓고 점장을 위협한다. 그들의 요구조건은 빅맥 서른 개. 주인공들은 가게 문을 닫고 정해진 시간 안에 빅맥을 내놓으라고 점장을 윽박지른다. 


그때 점장은 돈은 있는 대로 드릴 수 있지만 가게 문을 닫는 건 문책을 받을 수 있기에 곤란하다고 말한다. 이상하게도 점장은 하루 매출을 날리는 것보다 영업이 몇 시간 중단된다는 사실에 더 난감해한다. 그러나 부부의 위협에 질려버린 점장은 매장 셔터를 내리고, 그들에게 빅맥 서른 개를 만들어준다. 


소설에 묘사되진 않았지만 소설 속 회사의 방침과 점장의 태도로 미뤄보건대 그것이 아마 해당 지점의 첫 영업중단이었을 것이다. 24시간 영업으로 악명 높은 다국적기업을 멈춰 세운 상징적인 사건(?)이 벌어질 동안 하루키는 직원들의 대해서는 따로 서술하지 않는다. 기둥에 묶인 그들은 당시에 뭘 하고 있었을까? 이후 그 어떤 저항도 없었던 걸 보면 곤히 잠들어 있지 않았을까. 그동안 야간근무가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괜히 기분이 좋다. 사람은 낮에 일하고 밤에는 쉬어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는 이토록 당연한 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잠이라는 행위 자체가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간주되는 시대는 점차 일상 일부가 되어간다새벽 한 시에도 맥도날드는 찾아오는 손님들로 바쁘다. 새벽에 잠에서 깨면 새벽 배송 차량들이 부지런히 아파트 단지를 오간다. 그만큼 사람들의 평균 수면 시간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잠이 사라진 세계에서 모두는 지금보다 더 일하고 더 소비할 것이다. 너절한 현실을 피해 자신의 무의식 속으로 도망치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숨을 곳 하나 없는 세상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자신이 소진되어 가는지도 모른 채. 하지가 다가오는 6월의 첫째 날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눕기 위해 서둘러 햄버거를 먹고 자리를 떴다. 자정 넘어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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