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주친

by 김유리

이번 추석 연휴는 꽤 길었다.

휴일은 왜 이렇게 빨리 흘러가 버리는 것인지 참..

추석날 혼자인 사촌동생을 집으로 초대했다.


아버지는 혼자 시골에 가셨고, 동생은 약속이 있어 엄마와 나 둘이서 사촌동생을 맞이했다.


사촌동생을 데리고 동네에 새로 생긴 갈빗집을 갔다.

고기 굽는 건 내 몫이었다. 양념갈비라 태우지 않기 위해 자주 뒤집으며 고기를 구워야 했다.

명절에 새로 오픈한 가게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저마다 나누는 대화 속에 가게는 시끌시끌했다. 그러던 중에 귀에 꽂히는 말이 있었다.

“00이 숙모랑 일본에 같이 가면, 그런 게임 많이 할 수 있는데, 숙모랑 같이 갈래?”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그 말.


“이모네 가서 같이 살래?”

”삼촌네 가서 같이 살래?” 등등.


아직도 저런 말들을 쓰는구나 싶어서, 저 말을 내뱉는 사람은 누굴까? 궁금해서.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보는 순간.


‘아, 쟤 000이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것이다.

나는 알아차리자마자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날의 나는 하필이면.. 머리를 안 감았고.. 민낯이었고...

졸업한 지 십몇년이 지난 중학교 동창을 아는 척할 만큼 넉살이 좋지 못했다.


잠시나마 그 동창과 마주친 후, 나는 중학교 시절로 시간여행을 했다.

중학교 시절의 나. 중학교 때 있었던 추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살면서 이런 순간들이 꽤나 많았다.

아는 척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한 상대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 말이다.

유독 나에게 그런 순간이 많았던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은 비슷하게 겪으면서 사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의 이야기를 하면, 이렇다.


첫 번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인가 지났을 때였다.

버스정류장에서 고3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마주쳤다.

고등학교 당시에는 서로 가까운 자리에 앉았던 터라 얘기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쳤던 사이였다.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연락한 적이 없었다. 그 친구를 마주쳤을 때, 마음속에서 ‘어? 00이다.’ 단번에 알아보고 반가웠는데, 내색하지 못했다. 그리고, 외면했다. 내가 먼저 외면했는지, 그 친구가 먼저 외면했는지.. 나였나.. 모르겠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왜 반갑게 인사하지 못했을까를 자책했다. 그리고, 그 당시 싸이월드 일촌사이였던 그 친구에게 방명록을 남겼다. 아까 버스정류장에 마주쳤을 때 인사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뭐 그런 식의 내용이었던 거 같다. 그렇지만.. 그 친구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두 번째,

이번에도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를 마주친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사는 지역이 아닌, 서울에서 그것도 피부과에서 마주친 경우였다. 그것도 평일에 연차 내고, 친구랑 피부과를 갔던 날이었는데, 그 친구도 그날 하필이면, 그 피부과에 온 거다. 이번에도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어? 00이다.’ 그 친구도 나를 힐끔힐끔 봤다. 근데 내가 외면해 버렸다. 같은 반이었고, 서로 장난치던 정도의 사이였는데. ‘어머, 어떻게 이런 데서 보냐! 이게 몇 년만이야. 너무 반갑다. 어떻게 지냈어?’ 왜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마음속으로 진짜 반가웠고, 인사하고 싶었는데. 왜 그러는 걸까. 부끄러워 그런가.

세 번째,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를 마주친 일이다. 이번에는 약국에서 마주친 경우다.

음, 고등학교 시절 피아노를 잘 쳐서 음악시간이면 피아노 반주를 도맡았던 친구였다.

그 친구를 약국에서 마주쳤다. 그 친구는 별로 친하지 않았고, 그 친구는 나를 진짜로 모르는 듯했다. 이때는 그냥 마음이 가벼웠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때 반갑게 인사했으면 좋았을걸. 나는 왜 그렇게 외면했을까. 내가 아는 척했을 때, 나를 모른다고 할까 봐. 두려웠던 걸까.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시원하게 ‘아 나 기억 못 하는구나. 나 너랑 같은 반이었던 00이야. 여하튼 반갑다. 잘 지내.’ 할 순 없었을까.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마주칠까.

그중에 나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을 못 알아보고 지나칠 때도 있을 거고,

나를 아는 사람이 나를 못 본채 지나칠 때도 있을 거다.

누군지 알아봤는데, 모른 척할 때도 있고,

누군가 나에게 아는 척하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다음번에 또 어쩌다가 누군가 과거 인연이 있었던 사람을 마주친다면, 시원하게 아는 척, 반갑게 인사하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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