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종의 읍참마속
조선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있을 때 일이다. 상왕으로 물러나 있지만 국가 중대사는 실질적으로 태종이 처리하던 때였으므로 그의 권위와 권력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태종이 총애하던 후궁의 부친인 김점이 평안도 관찰사로 가면서 장사꾼을 앞세워 재물을 끌어 모으고 재임 시에는 뇌물도 받고 벼슬도 팔아 부정축재를 일삼았다. 「세종실록」에는 “(김점이) 교체되어 돌아올 때에는 짐이 150여 바리나 되어 세 차례로 나누어 운반했는데, 수레의 왕래가 끊이지 않아서 보는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김유간이라는 사람이 김점의 비리 이야기를 듣고 차마 상소는 올리지 못하고 정승 이원에게 알렸다. 이원이 조용히 태종에게 보고하자 태종은 승지와 병조를 시켜 김유간에게 묻게 했으나 그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자 하옥했다. 태종은 대간과 형조와 의금부에 진상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는데 김점의 비리가 사실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태종은 김유간을 즉각 석방하고 김점의 딸인 후궁 김씨를 궁 밖으로 쫓아내며 “김점이 범한 죄를 지금 관련 기관이 국문하고 있는데 그 딸이 그대로 궁중에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지금 출궁시켜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김점을 대할 것이니 관련 기관도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예로 다스리라.”고 했다. 정승 이원이 만류했지만 태종은 “탐오한 사람의 딸을 궁중에 둘 수 없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의금부에서 조사하니 장물이 엄청 나왔고 태종은 빼앗긴 사람들에게 전부 돌려주게 했다. 김점은 사형 위기까지 몰렸다가 목숨은 건졌지만 가세는 완전히 기울었다.
태종은 비리가 드러나기 시작한 김점의 죄상을 밝히는 도중에 총애하던 후궁을 미리 내쳤으며 김점은 엄벌에 처했다. 남자에게 특히 최고 권력자인 남자에게 사랑하는 여인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무엇일 수 있는데도 태종은 총애하던 후궁을 쫓아내면서까지 법 집행의 엄정함을 보이고자 했다. 왕조 시대 지고무상한 최고 권력자가 이처럼 추상같이 법 집행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여느 권력자라면 그냥 사건 전모를 덮어버릴 수도 있고 아비는 벌을 주더라도 총애하는 후궁은 계속 곁에 둘 수도 있는데 최종 판결 전에 후궁을 축출하여 사심 없는 법 집행 의지를 보여준 사실에서 비범한 권력자 태종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나는 남한에서 성인군자만이 위정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단지 위정자들이 최상은 아니더라도 평균보다는 높은 능력과 도덕성을 갖추기를 바랄 뿐이다. 위정자들은 세금으로 급여를 받고 그들의 행위는 사회 및 국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우리 시대 정치인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들도 자신이나 가족 그리고 최측근이 연루된 부정부패 및 비위 사건에서 태종과 같은 엄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진나라 개혁가 상앙은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