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우스와 세이렌
공자는 군자와 소인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 보지 않으며 소인은 인간의 이상형인 군자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으로 규정할 뿐이다. 요즘 세상은 소인이 난무하고 소인을 양산해 내고 있다. 개인 스스로의 문제도 있지만 집단의 압력도 사람들을 소인으로 만드는데 크게 작용한다. 의견이나 철학의 다름이 차별의 원인으로 작용하다 보니 뜻있는 인사들도 입을 다물거나 다물 수밖에 없도록 유•무형의 강제력이 발동한다.
규모의 크기에 상관없이 획일적 집단의 생명력은 짧을 수밖에 없다. 양질의 의사결정은 여러 의견과 생각들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나오기 마련이며 복잡다단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소수의 획일적인 사고에서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토론 및 브레인스토밍이 중요한 이유이다. 물론 토론 문화가 정착한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매번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는 없지만 획일적 집단보다는 훨씬 더 양질의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의사결정의 천재가 있다면 올바른 판단을 할 가능성이 높지만 천재는 매우 드물 뿐 아니라 천재라 하더라도 모든 의사결정이 시의적절할 수는 없다.
삼국 시대 영웅 조조는 본인이 천재였음에도 끊임없이 인재를 구하고 실제로 인재들에게 의견을 묻고 수용하여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졌다. 한 집단의 건강성과 생명력은 그 집단의 리더가 얼마나 개방적인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최악의 리더는 ‘나는 무조건 옳으니 잔말 말고 따르라.’는 사람이다. 무오류와 전지전능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리더는 어떠해야 자신이 거느리는 집단을 획일적 사고에서 건져낼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 스스로 오류나 잘못을 범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모르는 것이 있다고 규정해야 책이나 사람을 통해 배울 준비가 된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여기면 독단에 빠져 유아독존 할 수밖에 없다.
‘트로이아의 목마’라는 지략으로 트로이아를 멸망시킨 일등공신인 오뒷세우스는 전쟁이 끝난 뒤 귀환 과정에서 세이렌의 섬을 지나게 된다. 세이렌은 매혹적인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했으며 노래에 홀린 선원들은 뱃머리를 세이렌의 섬 쪽으로 돌렸다가 배가 난파되어 목숨을 잃거나 또는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오뒷세우스는 부하들 귀에는 꿀벌 밀랍을 바르고 자신은 돛대에 묶인 채 부하들에게 “내가 그대들에게 풀어달라고 애원하거나 명령하거든 그때는 그대들이 더 많은 밧줄로 나를 꽁꽁 묶으시오.”라고 명령한다. 오뒷세우스는 자신과 부하들 모두가 안전하게 귀향해야 한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으므로 유혹에 넘어간 자신의 명령이나 애원조차도 거부할 권리를 부하들에게 부여했다. 실제로 오뒷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유혹되어 눈짓으로 밧줄을 풀어달라고 사정했지만 부하들은 묵묵히 노를 저었으며 몇몇은 그를 여러 겹 더 묶었고 세이렌 섬을 멀찍이 벗어난 뒤에야 오뒷세우스를 풀어주었다.
지도자는 오뒷세우스처럼 자고로 자신의 실수나 오류를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줄 여지와 권한을 남겨두어야 한다. 자신을 전지전능하다고 믿는 지도자 곁에는 두 손을 앞으로 포갠 채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는 예스맨들만 득실거리며 이런 조직, 집단 및 국가는 도태하거나 사라진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무오류의 인간은 자신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최악의 의사결정은 최악의 첫 의사결정이 아니라 그 최악의 판단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다.
「주역계사전」에 “허물이 없다는 것은 잘못을 잘 보완하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