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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자유인 Jun 28. 2021

이상주의자가 그리운 세상

맹자의 왕도정치

《맹자》는 열네 편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 첫머리에 맹자와 양혜왕의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양혜왕 : 선생께서는 천 리를 마다하지 않고 오셨으니 오직 우리나라에 이익이 있겠지요?

맹자 : 왕은 어찌하여 입을 열자마자 꼭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단지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만일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 이익이 되겠는가?’라고 말씀하시면 대부는 ‘어떻게 하면 나의 봉지에 이익이 있을까?’라고 말하고, 백성들도 ‘어떻게 하면 나 자신에게 이익이 될까?’라고 말할 것이니 이와 같이 위아래가 서로 이익만 탐한다면 국가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인의를 중요시하는 맹자의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며 《맹자》의 편찬자들도 그 중요성을 파악하여 책의 가장 첫머리에 배치했을 것이다. 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시대로서 전쟁을 통해 다른 국가를 공격하여 겸병하는 일이 다반사이었다. 전쟁 수행능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맹자는 인의를 주창하고 다녔으니 여러 국가의 군주들이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사마천은 “양혜왕은 맹자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맹자의) 생각은 크지만 현실과 거리가 멀어서 실제와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고 적었다. 한 마디로 사마천은 맹자를 시대에 동떨어진 인물로 간주했다.     


맹자에 대한 사마천과 같은 평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맹자가 전쟁 자체를 중시하지 않고 인의를 내세운 왕도정치를 주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민생 안정과 부국富國이 국가의 경쟁력을 제고하여 다른 국가들보다 앞설 수 있다고 보았다. 쉽게 말해서 맹자는 백성이 잘 먹고 잘 살면 다른 나라의 백성들도 찾아와서 인구가 늘고 부강해진다고 보았는데 자세히 생각해 보면 맹자의 생각이 그르지 않다. 백성이 전쟁에서 싸워야 하는데 인구가 적거나 평소 굶주림과 병에 시달렸다면 제대로 싸울 수 없거나 사기가 낮을 것이다. 또한 나라의 재정이 빈약하면 막대한 전쟁 비용을 감당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맹자의 왕도정치 주장이 당대의 군주들에게 먹히지 않았을까? 여러 군주들은 즉각적으로 효과가 드러나는 길을 원했는데 맹자의 관점은 시간이 오래 걸리며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맹자가 허울뿐인 ‘인의’만 주장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백성을 가장 중시한 민본주의자로서 민생을 안정시켜 강국을 도모하는 길을 열려고 했다. 그렇다고 맹자의 이런 관점이 그 시대에 딱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나라의 부유함이 강국의 전제조건이기는 하지만 부유하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강국이 되지는 않는다. 전국시대처럼 분열되어 전쟁이 일상화된 시국에는 전쟁, 군대의 일을 국가 정책의 중요한 영역으로 간주하여 의식적으로 군사적 역량을 비축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부국과 강병은 동시에 추진해야 할 과제이면서도 부국이 근간이 되어야 한다. 백성과 나라가 가난한데 전쟁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맹자는 기본에 충실하자고 주장했으며 시간이 걸리지만 확실하고도 오래 사는 길을 주창한 점에서 맹자는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때로는 이상주의가 시대와 역사를 앞으로 추동해 나간다. 자신이나 집단의 이익만 추구하는 일은 언급할 가치도 없으며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근시안적인 처방과 대책만 늘어놓으면 사람들의 폭넓은 지지를 끌어낼 수 없다. 이 시대에도 이상주의자 맹자처럼 ‘그래, 정치인이라면 그 정도의 가슴 벅찬 비전은 제시해야지.’라고 공감할 수 있는 정치인이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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