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를 이루되 똑같아지지 않는 경지가 중요하다
조류 인플루엔자와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수많은 닭과 돼지가 살처분되었으며 달걀 값은 폭등하고 환경오염 문제도 발생했다. 밀집 사육으로 닭과 돼지가 각종 질병에 취약하게 되었는데 인간들의 선택 사육도 문제를 심각화 시킨 원인이다. 달걀을 많이 낳고 고기의 질이 좋은 품종만 선택적으로 개량하다 보니 유전적 다양성이 심각하게 낮아졌다. 따라서 한 마리의 닭이나 돼지가 병에 걸리면 거의 쌍둥이나 다름없는 곁의 닭이나 돼지는 거의 예외 없이 질병에 쓰러지게 된다. 유전적으로 다양하다면 어떤 개체는 죽더라도 유전적으로 다른 개체는 살아남을 수 있는데 그런 기회가 원천적으로 사라져 버렸다. 인간의 이익만 염두에 둔 필연적 결과로 인간과 동물 그리고 자연이 피해를 입고 있다.
비즈니스나 국가를 경영할 때도 다양성이 중요하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은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이다. 집단이나 조직 및 국가의 용렬한 지도자는 자신과 마음이 통하고 편안한 사람만 곁에 둔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 지도자 곁에서 극심한 긴장을 풀어주고 재충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역할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도자가 무능력하지만 편안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의 말에만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주로 채택한다면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도자가 전지전능하여 매번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지도자의 곁에 있는 무능하지만 편안하고 마음이 통하는 측근들은 지도자의 잘못된 의견에도 무조건 옳다고 맞장구를 쳐서 오판이 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춘추좌전》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춘추시대 제나라 경공이 신하들을 이끌고 사냥을 갔다가 돌아올 때 재상인 안자가 뒤를 따랐는데 신하 양구거도 마차를 몰고 와서 경공을 알현했다. 경공이 안자에게 “양구거만이 나와 마음이 맞는(和) 사람 같소”라고 말했다. 그러자 안자가 “제가 보기에 두 사람 사이에는 ‘같음(同)’만 있을 뿐 ‘어울림(和)’은 없습니다. 양구거는 군주의 뜻에 무조건 따르기만 할 뿐인데 무엇이 잘 맞는다는 말씀인가요?”라고 말했다. 이 얘기를 들은 경공은 의아해하며 “같음과 어울림의 차이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안자가 “잘 어울린다는 것은 양념이 조화를 이뤄야 맛있는 탕을 끓여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싱겁지도 않고, 짜지도 않으면서 적절하게 재료들이 어우러져야 제 맛이 납니다. 군신 관계도 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군주의 의견이라고 해서 무조건 옳고 완전무결할 수가 있겠습니까?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신하가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나라를 평안하게 이끄는 길입니다. 하지만 양구거가 군주의 뜻을 무조건 받드는 것은 부화뇌동과 다르지 않습니다. 군주가 좋다고 하면 그 또한 좋다고 하고, 안 된다고 하면 그 또한 안 된다고 합니다. 만일 맹물을 이용해 맹물의 간을 맞춘다면 누가 이 물을 마시겠습니까. 또 금슬로 어느 한 가지 소리만 탄주하면 누가 이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같음(同)’이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유전자의 닭이나 돼지가 공존하여야 각종 질병에 견딜 수 있듯이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공존하는 조직 및 집단의 생명력이 길다. 지도자가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고 보다 양질의 의사결정을 하려면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래서 현명한 지도자는 직언을 하는 사람을 곁에 둘 줄 안다. 같은 사람끼리 만나면 편하고 쉽게 섞일 수는 있지만 자극과 영향이 적어서 발전은 거의 없다. 조화를 이루되 똑같아지지 않는 경지가 중요하다.
스캇 페이지는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