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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자유인 May 30. 2021

책 읽어서 어디에 쓸래?

독서의 목적은 일상의 변화다

두보는 “사내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에 실을 만큼의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했지만 만 권, 십만 권의 책을 읽고도 세상을 보는 눈은 흐리고 일상에서의 올바른 변화가 없다면 부질없는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소위 지식인 중에 알량한 지식으로 혹세무민하고 시류에 영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설령 두보의 말처럼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들 그렇게 얻은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단 한 권의 책을 읽지 않았어도 세상을 보는 안목이 혼탁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와 연대의식을 가지며 사리사욕에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이 훨씬 값어치가 있다.    

 

지식 수집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쌓은 지식과 지혜의 도움을 받아 일상에서부터 다른 사람들보다 남다른 면모를 보여야 된다. 비근한 예로 지하철 플랫폼에서는  내리고 난 뒤 타야 하지만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이 내리기도 전에 몸을 들이민다. 우산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신의 몸 앞쪽에 들고 전후좌우로 움직이지 않도록 간수해야 하는데 마치 무술인이 칼을 휘두르듯 사방으로 흔들며 걷는 사람들도 많다. 버스, 전철 및 열차 등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있는 공간에서는 낮은 목소리로 짧게 통화를 해야 하는데 큰 목소리로 안방에서 통화하듯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행동들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 편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의 발로다. 책을 어느 정도 읽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실생활에서부터 다른 면이 있어야 한다. 책을 많이 읽었지만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되지 않는다면 읽은 책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독서는 시간 및 경제적 낭비일 뿐이며 사치에 불과하다.      


중국 북송北宋 중기의 유학자인 정이천은 독서 후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아래와 같이 설파했다.     


“《논어》를 읽는다고 할 때, 다 읽은 뒤에 전혀 느낌이 없는 사람도 있고, 다 읽은 뒤에 그 가운데 한 두 구절을 터득하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으며, 좋아할 줄 아는 사람도 있고, 너무 즐거워 곧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뛰는 자도 있다.

요즘 사람들은 책을 제대로 읽을 줄을 모른다. 예를 들면, 《논어》를 읽었는데 읽기 전에도 그 모양이요, 다 읽고 난 뒤에도 또한 단지 그 모양이면 이것은 읽지 않은 것이다.

나는 나이 17, 18세 때부터 《논어》를 읽었는데 당시에도 이미 글 뜻을 알고 있었지만 읽기를 더욱 오래 함에 다만 그 의미가 심장함을 느꼈노라”     


책을 많이 읽었지만 행동은 뒷받침되지 않은 채 입으로만 고담준론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흔하다. 남들보다 공부를 많이 했다면 일상에서부터 귀감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지탄의 대상인 사람이 많다. 한 시대가 정신적으로 건강하려면 보고 따라 배울 스승이 많아야 한다. 그리 멀지 않은 조선시대 및 일제 강점기 때에는 생사여탈권이 있는 왕이나 서슬 퍼런 일제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옳은 길을 걸어간 선비들이 제법 많았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에는 선비정신으로 무장하여 멘토가 될 만한 명실상부한 지성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참다운 지성인이 없다며 한탄만 할 일이 아니고 스스로 등불이 되고 길잡이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시민의 불복종》에서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대중은 아직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전이 느린 진짜 이유는 그 소수마저도 다수의 대중보다 본질적으로 더 현명하거나 더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처럼 선하게 되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단 몇 사람만이라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그 어디엔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배운 사람이라면 더더욱 조선 시대 선비 황현 경술국치를 당하여 자결하며 “가을밤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나간 천년 세월 돌아보니, 인간으로서 배운 사람 노릇하기가 정말 어렵구나.”라고 읊은 절명시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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