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떠나는 첫 번째 여정

복잡다단한 나에 대한 고찰

by Amelie

매일매일 변덕스러운 나, 그 가볍고 복잡함에 대해


나라는 사람을 간단히 설명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시작하려고 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매일 감정과 생각들이 변화무쌍하게 요동치는 내 안의 현상들을 지긋이 바라보다 보면,

가끔은 웃기기도 하고, 또 질리기도 한다.


오늘 꼭 처리하려던 주민센터 일을 또 내일로 미뤘을 때,

작심삼일 운동..운동가는 횟수보다 운동복이 갯수가 더 많아 보일 때,

한껏 샐러드가 먹고 싶어서 냉장고를 채워놨는데 정작 삼겹살이 땡길 때,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란 사람… 정말…’


최근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7년 전, 조금 더 나은 조건으로 이직에 성공했을 때는 그 회사가 내게 조금 더 밝은 미래를 보장해 줄 거라 믿었다. 잔머리 부리지 않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 그런데 회사는 종종 조직 개편과 대형 프로젝트로 내 삶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 회사는 늘 빠짐없이 월급을 주는 권위가 있었기에,

나는 최대한 그 변화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업기획/마케팅 경력으로 입사했던 나였으나 꽤 드문 케이스로 '드라마 프로듀서’라는 명함을 줬고,

네다섯 번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내 커리어에 새롭고 좋은 기회임을 인지하고 있었고 꿋꿋하게,

큰 불평 없이 열정적으로 일을 해나갔다.

그 변화 안에서 오래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 결혼하여 틈틈이 신혼도 즐기며

유능한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하기도 하고, 긴 지방 출장과 촬영에 몸을 맡기며,

눈에 띄진 않지만 아주 조금씩 오르는 연봉에 만족하기를 다짐하며 나름 충만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점점 명명하기 어려운 부정의 감정들이 엄습해왔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몇년 새 내 모습은..

연쇄적으로 맡게되는 프로젝트들, 상사나 동료와 관계(or 비위), 매달 월급의 안정감

이 틀안에서 균형을 맞춰가려 애쓰며

위태롭게 곡예하는 피에로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추후 자세한 퇴사 사유는 따로 면밀히 기록해보려 한다.)

물론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니다.

1년정도 진지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정했다.



많이 망설여진 것도 사실이다.

회사를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너무 다른 모습이 되어 버린 것 같은 내 모습 때문이었다.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정성을 다해 일을 한 만큼

마음 언저리 어딘가에 실타래처럼 뒤죽박죽 엉킨 마음의 찌꺼기들이 남아 있는 듯 싶다.

하지만 이제 그 실타래를 풀어볼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 뿐인걸 알고 있다.

남는게 시간인 용기내어 이 과정을 기록해본다.



나를 찾는 첫 번째 여정,
미션 1. 주관적 핵심 기억(Core Memory)들을 통해 요즘의 나와 연결해 보기


#1. 부모님이 맞벌이셨기에 나는 혼자 있거나,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한 기억이 많다.

90년대 바보상자였던 TV는 누가 뭐래도 내 유일한 낙이었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어린이 시절 일찍이 서태지의 ‘난 알아요’와 신승훈 '처음 그 느낌처럼' 같은

노래에 매료되었었고 이병헌 주연의 '해피투게더'라는 청춘 가족 드라마에 폭 빠졌져

설레었던 기억도 아직 선명하다. 그 외롭지만 또 외롭지 않았던 TV 시청의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져 결국 나를 이 파란만장한 엔터 업계로 이끌었었다고 생각을 한다.


#2.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교내 동시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고,

내 시가 복도에 걸려 있는 걸 보며 부모님이 무척 기뻐했다.

아직도 그 시는 우리 집 냉장고에 붙어 있다

엉금엉금 기던 어린 동생을 여러 동물(거북이? 오리?)에 비유해 쓴 동심 가득한 시였는데,

지금은 웃기지만 그 동생과 남보다 못한 관계이다.



#3. 20대 후반, 2년간 처음으로 회사를 퇴사하고

교양 방송국에서 홍보 프리랜서로 일했을 때 기억이 참 좋다.

페이는 많이 낮았지만 일터의 분위기가 참 좋았다.

공기업 같은 여유로움, 적당한 책임감, ‘내부인인 듯 외부인인 듯’한 어설프게 속해있는

그 적당한 소속감이 좋았다.

그때 늘 스스로 다짐했다.

‘이 심적인 행복을 오래 누리긴 어렵겠지만, 이 감정의 행복을 절대 잊지 말고 살자.’

그러나 나는 경제적인 이유로 다시 회사 소속으로 들어가야만 했고 운 좋게 면접이 붙어

다시금 내가 아닌 직장인이 되어야 했다.

인생의 결정과 흐름에 따라 그게 당연한 결정이었지만,

심적인 안정감을 주었던 첫 일터를 떠난다는 사실이 매우 서글펐다.


#4.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단다.

몇 달 전 퇴사 전 일에 대한 큰 회의감에 대해 조감독

한참을 털어놓았더니 그녀가 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근데 그거 알아요? 피디님은 누구보다 이 일을 즐겁게 또 정성스럽게 하는 사람이었어요.

일 되게 좋아하시는 분이에요”

처음엔 부인했지만, 사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뒤돌아 보니 사실 나는 현장에서 감독, 배우, 스태프 모두를 돕는 역할에 진심을 다했다.

작은 스쳐가는 미술 소품 하나도 정성스럽게 검증하고

대학생 단역배우들과도 짧지만 기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았고

현장의 박자감을 맞춰가며 사람들과 협업해서 완성하는 과정을 즐겼다.

한 장면 한 장면에 작지만 내 손이 닿았다는 뿌듯함, 으아 그걸 느끼는 나… 어쩌면 좀 변태 같기도.

그럼에도 그 ‘성취감’은 나의 번듯해 보이는 직장을 유지시켜 주기엔 부족했다.


나는 바보처럼 또 새로운 나를 맹렬히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쉬기로 했다.

지친 관계와 노동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나를 놓아주고 싶었다. 복잡한 실타래 처럼 엉켜버린 감정들과 관계들에서 벗어나야만 할 것 같았다.

일과 인생의 많은 부분을 동일시했던 이제는 아주 조금씩 후회가 되기도 했기에 나를 다시 돌보고 싶었다.


.

.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현실은 자발적 백수.

미래는 또 나는 무엇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



‘나’라는 복잡 다난한 인간을 조금은 단순화하고, 해체해보고자 한다.

그 기록을 이 브런치 연재를 통해 시작하고자 한다.



내 마음 속 지어 놓은 감성 스튜디오에서 아래 방향성으로 저의 여정을 기록해 볼 계획입니다.

저의 여정에 어딘가 공감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기쁠 것 같아요.


-감수성을 억제하지 않고 핵심 경험을 지속적으로 축적하기

-일상의 행복을 주는 것들에 대해 관찰하기

-일상 속 감정의 흐름을 주목하며 나만의 리듬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슬로 라이프를 추구하며 나를 그리고 누군가에게 회복성을 제공할 만한 콘텐츠 기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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