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 백수
지난달 아는 지인 분을 통해 지자체 영화 행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왔다.
일하다 중간중간 오랜만에 젊은 친구들과 섞여 대화를 할 기회가 생겼다.
열정과 생기 넘치는 20대 초중반 취준생들이었다.
그중 한 친구는 영화배급사에서 일을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내가 관련 직종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보니,
이것저것 힘들었던 나의 푸념과 비슷한 일 얘기해 주었는데 그 친구는 요새 고민이 너무 많다고 한 번 따로 연락드리고 찾아와도 되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물론 좋다고 했다.
'나와의 대화가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20대 초중반 정말 막막했던 앞날에 대한
고민 많았던 시기가 생각나기도 했고 진로 혹은 꿈에 대한 진지한 태도에 내 20대를 투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몇 주 후 그 친구는 나를 찾아와 고민되는 것들을 몇 개 늘어놓고 진로 상담인 듯 수다인 듯 애매모호한 대화를 우리는 시작했다.
좋은 영화들을 해외 세일즈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싶어 했고 영어 실력이 필요해서 해외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지 또 본인이 갖은 스펙 중 더 하면 좋을게 무엇일지 궁금해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1년이 안되었으며 인턴십과 봉사활동을 채워가며 거기에 더해 언어 시험(토익과 오픽)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곳을 바라보며 참으로 열심히 달리고 있었지만
밤마다 부족한 이력서를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늦기 전에 해외 경험을 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 반면
나이가 벌써 20대 중반으로 한국 회사 신입으로서 취직이 늦어지고 있음에 초조함을 함께 느낀다고 했다.
내가 취직할 그 당시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취준생들의 고민의 틀이 변하지 않았다는 이 초조함을느끼게 하는 사회와 현실에 괜한 반항심도 들었다.
그 반항심을 최대한 자제시키고 힘을 모아
그녀에게 온 정성을 다해 현 상태를 이해시켜 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었다.
30대 후반 백수가 어처구니없이 20대 중반 앞으로 더욱더 밝고 창창한 그녀에게
주저리주저리 생각을 늘어놓는다. 예를 들면..
첫 직장이 꼭 원하는 곳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곳을 돌아갈 문들이 열릴 수 있다.
현재 말랑말랑한 호기심들을 자극시킬만한 경험을 용기 내서 무엇이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나이 때 무엇을 하든 하루하루가 찬란할 때다.
모든지 흡수도 빠를 때기에 방에서 토익공부만 흡수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궁금한 업계 현장 하루 알바를 구해보던지, 영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 커뮤니티 직접 만들어 외국 친구를 만들어보고는 것도 좋고, 해외 경험을 원한다면 나이 제한이 있는 워킹 홀리데이도 너무 좋을 것 같다.
그 경험을 토대로 어떠한 것들을 본인만의 콘텐츠나 기록으로 또 새롭게 창조해 볼 수 있다면 특별한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새로운 경험 자체로 또 다른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참 거창하게 으쌰으쌰 말을 해주었지만,
속은 사실 씁쓸했다.
나 스스로가 참 모순적이었다.
일을 10년 이상 해왔더라도
나 역시 답을 모르는 진로이다.
내가 뭐라고... 나는 이런 조언에 떳떳할 수 있는 인간일까?
하지만 질리게도..
그녀에게 못한 말이 더 남아 있다.
토익 성적, 관련 인턴십, 면접의 스킬과 튈만한 어떠한 경험이
당장 그녀가 원하는 직장으로 골인하게 해 줄지 아닐지는 아무도 알 수없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지금 그녀가 여기서 어떤 방향성으로 한 발을 나아가든
앞으로 닦칠 고난(?)과 영광 안에서
굳은 심지를 잃지 않는 것.
매일 변화하는 환경 속에 유연함을 유지하는 것
원하는 직장에 골인했을 때 꿈꿨던 그 이상향이 아수라난장판이더라도 타협한 직장에 일을 시작했을 때 좌절감이 밀려와도 그녀 스스로 꺼지지 않을
그녀만의 심지말이다.
직업을 갖지 않는 초년생들의 불안, 초조, 조급함을
나 역시 뼈저리게 느껴본 나였다.
대학 처럼 직장 역시 원하는 업계안에서
서열(?)대로 쭉 리스트업할 수 있었는데
이 회사 중 원하는 업계에서 밥벌이하자라는
목표가 간절했다.
몇 번의 도전 끝에 정말 운 좋게도 대기업 소속
엔터 영화배급사 마케팅팀으로 첫 정규직 직장을 얻었다. 하지만, 내가 상상해 오던 영화 업계는 허상이었음을 입사한 지 1개월도 안되어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특히 나를 괴롭혔던 건)
내가 좋아했던 영화와 업으로써
특히 영화의 장점을 과대 포장하거나
단점을 숨겨야 하는 마케팅의 속성과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영화라는 본질과 일말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
대형 배급사들의 목표는 경쟁작과 더 많은 예매율과 관객수를 무슨 수를 써서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었고,
영화 개봉일에 대부분 성적이 판가름이 나기에
정해진 시간 안에 초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주어지는 업무(무대인사, 시사회, 온라인 프로모션 등)들을 온몸으로 쳐내야만 했었다.
그 흐름에서 나는 매일매일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을 실패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 심지가 꺼지고 있음을 느낀 나는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2년 반이 걸렸었다.
매일 야근 후 좀비가 된 얼굴로 불이 꺼진
고층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함께 내려올 수 있는 동기와
서로의 푹 꺼진 얼굴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20대 끝자락에 '생지옥'을 억지로 버텨내고 있었다.20대 끝자락 젊음이 한창인 나이에
누구보다 빠르게 너덜너덜 보릿자루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내가 혹은 남들이 원하는 직장에 골인했어도
어느 날 나는 명확했다.
나는 길을 잃었다는 것을.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알 수 조차 없었다.
그렇게 어찌 저지 난 회복을 했었고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또 최근 백수가 되어있다.
부끄럽지만.. 그때와는 조금 다른 백수이다.
지금은 행복하고 싶은 백수를 자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조금의 여유가 생긴 이유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걸 알기에
그 단단한 긍정성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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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 취준생들은 스펙을 쌓으며
새로운 문을 두드리며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그러다 누구는 원하는 곳에 정말 운 좋게 취업을 할 것이고
누구는 몇 번의 타협 끝에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
혹은 창업을 도전을 하고자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아예 한국을 뜨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방안에 은둔자를 자처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어디에 있던 내가 어디에 속해 있던 아니던
그 환경은 또 변화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이 상황을 적응을 하기 위해
혹은 탈출을 위해 애쓰며 변해갈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이 내가 원하는 것들이 아님을 깨닫고 실망하기도 한다.
또 그러다 보면 내가 원했던 것은 또 다른 형태로 변화한다.
이런 삶의 모순에 너무 당황하지는 말자.
그 예상 못할 모순의 연속과 흐름을 유연히 흘러갈 수 있는 내가 되자.
외적으로 보이는 이력서 내 스펙들은 절대적으로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하지만,
소중한 젊은 시절 찬란한 순간들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틈틈이 젊음의 그 순간을 더 즐길 줄 알아야 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이력서
남과 나를 비교하며 부족함을 찾아내는 것 같은
내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동은 삼가하자.
무언가를 도전하는 나 자체로 지금 너무 나는 너무 충분히 멋지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를 찾는 여정의 세 번째 미션은
겉치레인 보이는 것들이 아닌
진정한 내면의 나,
'지금의 나'를 더욱 아껴주자!
그게 오늘과 미래의 나의 단단함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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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글은
짠하고 처절해서 좋아 했던 드라마 주인공 <또 오해영>의 대사가 생각난다.
이 명대사로 급 마무리를 해본다.
'나는 여전히 내가 애틋하고
누구보다 잘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