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뿐사뿐 걷는 태도를 위하여
자발적인 휴식 기간,
이것저것 해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스멀스멀 불안이라는 감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그 감정은 내 인생에 항상 동반해 왔던 것 같다.
놀랍게도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한주에 하나씩 감정을 흘러 보내듯 글을 쓰는 이 행동이
출처 없는 불안감을 없애주는데 한 몫한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떤 에피소드를 만나
누구를 만나 또 어떻게 흘러갈까?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나에게 앞으로 주어진 남은 선택사항들을 하나하나씩
처리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미룬 일들도 있고,
급작스럽게 닥쳐지는 것도 있다.
30대 후반 퇴사는
20대 때의 퇴사보다는 꽤나 묵직한 것들이 동반한다.
예를 들면,
마통 만기일 문자
전세 만료 이후 계획들
노산이라는 큰 산
어김없이 또 새로운 걸 원하는 바람들
무겁게만 생각하면 무겁지만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뒤집어 생각해보려 한다.
어쩌면 새로운 문이 열리기 전 현상들이다.
뉴스에 새로운 부동산 정책들에 쫑긋이며
서울 살이를 끝낼 때가 왔다고 다짐하면서도,
또 어쩌면 새로운 방법들이 이곳에 머물 이유를 주진 않을까 하며
머리를 굴려보기도 한다.
금세 잊고 딴청을 피우지만...
한국 사회에서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것 힘들다.
그렇지만 아직 나이를 핑계로
나를 가두고 싶지는 않다.
아직 새롭게 배우고 탐색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나는 몇 년 전까지 정(연민, 동정, 관심 같은 마음들 포함)이 유난히 많아
일을 할 때 끊고 맺음이 힘든 사람이었다.
이런 특성이 사회생활에서 스스로 피해의식을 만들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 모습이 싫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모습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나의 한 조각임을 인정해버리고 나니
마음 한편이 편해졌다.
20대 후반 불안과 피해의식이라는 부정적 감정의 늪에 빠져 본 적이 있다.
늪에 빠졌던 그 시기를 이야기하기엔 아직 부끄럽다.
가족들들에게 큰 걱정을 안겨 줬다.
인생 처음 닥친 '방황' '밑바닥'같은 경험.
나의 미약함과 망가진 모습을 마주한 순간들이었다.
증상은 다양했다.
우울, 불면증, 식음전폐 등
다행히도 나는 내 옆에 나를 지켜준 부모와
그때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
친한 친구들의 관심으로 점차 회복되었다.
두려웠던 병원에도 가서 2-3달간 약도 먹었던 것 같다.
1주일에 한 번씩 1년 정도 미술 치료도 병행했다.
그러면서 다시 일을 찾아서 할 수 있게 되었고,
결혼도 했고,
다시 활발해지고,
정상궤도를 찾아갈 수 있었다.
그때 미술 치료사 선생님이 해주었던 말들 중에 가장 용기 되었던 말이 있다.
나의 마음의 병은
'잠시 급성으로 찾아온 감기 같은 것'이라고 말해주었던 것이다.
'감기, 그래 훌훌 털고 일어나자'
그렇게 감기를 자연스럽게 이겨냈다.
'회복'이라는 이 인생의 강렬한 경험은 나의 큰 원동력이 된다.
그 깊고 어두운 늪이 있었기에
또 빠져나올 수 있었고
새로운 길을 지속적으로 걸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일상생활 속 감정이 불안해지고 우울해질 땐
그때를 그 회복의 과정을 떠오르면 용기가 난다.
생채기 하나쯤은 나만 간직하는 훈장이 되어
그렇게 사뿐사뿐 걸어 나갈 것을 오늘도 조심스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