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 가족은 남편의 일본 유학을 계기로 2016년 3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약 1년 6개월 정도 도쿄에서 생활하다가 돌아왔다. 나름 길다면 길고 또 짧다면 짧을 그 시간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리는 틈나는 대로 도쿄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고 일본의 많은 지역을 여행했으며 또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들로도 여러 번의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내게는 너무도 낯설던 일본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만나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또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무척이나 뜻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일본에서의 그 1년 6개월 동안 가장 잊지 못할 기억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럼 일본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그때도 나는 역시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이었다고 답할 것이다. 또 누군가가 내게 그럼 일본에서 가장 유익했던 기억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그 역시도 나는 또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현재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아들 쌍둥이를 키우고 있다. 일본으로 갈 당시 7살이었던 우리 아이들은 일본의 한 구립 유치원이었던 와세다 유치원에서 1년을 보내고 그 후에 일본의 구립 소학교(초등학교)를 6개월 정도 다니다가 돌아왔다.
처음 아이들을 현지 유치원에 보내기로 결정했을 때는 물론 걱정되는 면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국 유치원도 아니고 프랑스 유치원도 아니고 중국 유치원도 아니고 다름 아닌 일본 유치원이 아니던가. 한국의 유치원과 달라 봐야 뭐 얼마나 다르겠는가 싶었다. (물론 아이들이 일본어를 전혀 못하긴 했지만 어차피 영어도 전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국제 유치원에 보낸다고 해도 언어적인 면에서는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나의 완벽한 오산이었다.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은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하루하루 신선함과 놀라움, 그리고 배움과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사실 나에게 일본은 너무도 낯선 나라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영어를 좋아해서 대학에서도 영어교육을 전공했고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구권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자는 무식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잘 알지 못했고 내 나이 또래라면 중고등학교 때 누구나 한번쯤은 빠졌었다는 J-pop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에도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원체 성향이 그러하다 보니 남편을 따라 일본에 오면서도 일본에 있는 동안 일본어를 배워서 가야겠다거나 혹은 일본 문화를 깊이 접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었다. 그저 아이들이 유치원에 간 동안 여행하듯이 도쿄를 누비며 맛집을 찾아다니고 쇼핑이나 해야겠다는 생각만 잔뜩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1년은 나의 이런 계획을 시작부터 완전히 바꾸어 놓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해외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특히 아이를 그 나라의 현지 유치원에 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일본의 현지 유치원에 보내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대의 아이들은 딱히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규정하기 힘든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한국에서 자라면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자라면 일본인으로 또 미국에서 자란다면 미국인으로도 클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유치원이 바로 그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일본의 현지 유치원에서는 아직 완전한 일본인이라고 말하기 힘든 어린아이들에게 앞으로 일본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들, 일본인으로서 배워야 할 지식들, 그리고 일본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가치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아주 자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을 와세다 유치원에 보냈던 그 1년 동안 나는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일본 사회에 대해 꽤 깊숙이 파고들게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켜본 일본 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었다. 특히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무척이나 중시하는 사회였기에 각각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인 틀이 꽤나 견고해 보였다. 이를테면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고, 또 가게 점원은 가게 점원다워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런 보수적인 문화가 한국인인 내게는 대체로 답답하고 구시대적이라 느껴질 때가 많았지만, 흥미롭게도 100%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중에는 꽤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사고가 그러했다.
우리 아이들은 와세다 유치원에 다니던 그 1년 동안 7살짜리 아이로서 누릴 수 있었던 수많은 것들을 원 없이 누리다 돌아왔다. 공부에 대한 부담은 다 내려놓은 채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장과 놀이터를 뛰어다녔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진흙 놀이에 빠지는가 하면 공원의 수풀 속에서 방아깨비를 찾고 개울가의 가재와 개구리를 잡느라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책보다는 놀이, 키즈카페보다는 동네 공원의 수풀 속, 컴퓨터 게임보다는 색종이와 가위에 푹 빠져 지내다 온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7살이기에 누릴 수 있었던 아이답고도 또 아이다운 시간들이었다.
부모의 참여를 무척이나 중시한다는 점도 꽤 인상적이었다. 엄마가 아이와 함께 유치원을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만큼 유치원 자체 내에서 모든 활동에 엄마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했는데, 특히나 우리 가족의 경우에는 내가 초반에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관계로 남편까지 합세하여 그야말로 온 가족이 1년 내내 유치원 생활에 푹 빠져 지내다 돌아왔다.
물론 그러한 생활이 늘 즐겁기만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일본이라는 그 낯선 땅에서 온 가족이 똘똘 뭉쳐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은 꽤나 값진 경험이었다. 가족이 정말 진정한 가족다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아이는 아이답고 가족은 가족다울 수 있었던 시간들, 와세다 유치원에서의 그 1년을 통해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꼬마 곤충학자들이 되었고, 남편은 틈만 나면 두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세상 다정한 아빠가 되었으며, 나는 일본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만나 이전보다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이 가족으로서 수많은 추억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한발씩 더 다가설 수 있게 된 것이 분명 가장 값진 소득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우리 가족이 와세다 유치원에서 1년을 보내며 겪었던 소소한 일상들,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작지만 소중한 행복과 감동, 배움과 깨달음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들이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의 마음속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의 씨앗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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