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뇌졸중 전문치료실에서의 일기
엄마는 매일 전화를 걸어왔다.
바쁘다고, 나중에 얘기하자고, 너무 알려 하지 말라고 했었던
그 귀찮았던 감정들이...
그 단순했던 전화들이...
이젠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일이 됐다.
내 핸드폰에 늘 찍혀있었던 엄마의 전화번호는 이제 없다....
엄마가 쓰러진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받아들일 수가 없다.
영원한 내 편은 오직 친정 엄마뿐인데,
현타가 오는 말을 직격으로 퍼부으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식으로써 짜증내는 건 당연한 거 아님?
그 전화가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좀 더 따뜻하게, 좀 더 오래 통화할 걸... 너무너무 너무 후회가 됐다.
뇌졸중 전문 치료실에서의 첫 날.
엄마는 섬망이 심하게 왔다.
갑자기 무슨 감자탕이람...
감자탕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엄마가 계속 감자탕을 끓여준다고 했다.
나한테 이 말 밖에 할 게 없어? 왜 감자탕 얘기만 하는데....
그래.. 이런 대화일지라도 희망을 잃지 말자.
온 몸이 뚱뚱 부은 불쌍한 엄마를 보며 눈물이 났다.
의사는 당연하게 오는 증세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줬지만,
이런 엄마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난 무섭고 떨렸다.
또 다시 잠이 든 엄마. 얼마나 깊게 잠을 주무시는지 깨질 않으셨다.
흔들어 깨워봐도 엄마의 의식은 잠깐씩만 돌아올 뿐 계속 주무셨다.
심장박동이 120을 넘어가고 있었다. 열은 떨어지지 않아 해열제를 처방받았고,
혈압도 높아서 강압제를 하루에 3-4개씩 맞았다.
하지만 혈압이 조절이 안되어 혈압약을 콧줄로 주입했다.
혈당도 조절이 안된다. 평소 100-130이었던 당은 급기야 360까지 찍었고,
인슐린을 배에다 맞기 시작했다. 하루에 4대까지!!
새벽엔 부정맥이 의심된다면서 심전도 검사를 세 번이나 하고. CT 찍고 피도 수시로 뽑았다.
난 밤이 되어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 이래서 중환자실이구나...
엄마의 몸엔 온갖 선들이 부착되기 시작했다.
연하장애(삼킴 장애)가 있기 때문에 코에 비위관(일명 콧줄)을 연결해서 경관영양식을 했다.
심전도를 재기 위해 오른쪽 빗장뼈 밑에, 왼쪽 중간 겨드랑이 선에 패드를 붙여놨고,
귓불에 심박과 산소포화도를 재기 위한 줄을 붙였고, 오른팔엔 자동 혈압계를 연결해놨다.
거기에 또 왼쪽 손엔 항생제와 수액을 맞는 주사가 꽂혀있고,
유치도뇨관(소변줄)을 사용하기 때문에 소변줄이 연결된 소변주머니가 침대 밑에 달렸다.
이러니 당연히 엄마의 온몸은 탱탱 불을 수 밖에...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찢어졌다.
왼쪽이 마비가 와서 그런지 왼손이 오른손에 두 배나 될 정도로 부어서 커졌고,
찌르면 터질 것 같이 붓다 못해 멍이 시퍼렇게 들었다.
뭐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마의 모습은 처참했다.
나는 하루 종일 벽에 붙어있는 모니터만 바라보면서 마음을 졸였다.
혈압, 산소포화도, 심박수가 정상이 아니면 바로 계속 간호사를 불러댔다.
그러다 혈압 기계가 고장 난 것을 알았다. 으이C.
엄마의 팔이 검푸를 정도로 압박해서 가뜩이나 부어오른 손이 터질 것 같았다.
난 당장 교체를 요구했다.
다른 중환자를 돌봐서 피곤한 간호사가 짜증을 내며 이동식 모니터로 교체를 해줬다.
기계를 바꾸니 혈압도 순식간에 잘 재지고. 심박수도 줄넘기하던 애가 차분하게 정리되어 일직선을 유지했다. 간호사들의 고충도 이해는 가지만, 보호자 입장에선 더 불안하니 계속 요구할 수 밖에...
만약 내가 없었으면, 이런 상황에 엄마는 어찌됐을가. 내가 엄마 옆에 있길 잘한 것 같았다.
의료진이 해주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결국 피해는 환자와 보호자만 본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이 좌우한다고 하지만
요청할 건 요청해야 하고, 절박한 사람에겐 분명히 해결책이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래... 엄마가 필요한 것을 내가 적극적으로 표현을 해 줘야 하는게 보호자다.
계속 쪽잠을 자며 엄마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다가
야간 담당 간호사에게 커피를 한 잔 사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물어봤다.
엄마의 왼손과 왼다리에 신경이 살아 있으니, 재활만 잘하면 다시 걸어 다니실 수 있다는 말을 해줬다.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희망이 되던지...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중환자실에서 열 흘을 있었다.
첫날은 한 시간도 제대로 못 잤다. 잠자는 것도 미안했기 때문이다.
배고픈 것도 미안하고. 화장실 가는 것도 미안했다.
둘째 날은 쪽잠으로 2시간 잤던가?
셋째 날은 인간적으로 잠은 자야 했다.
진땀을 흘려서 냄새가 나니 도저히 버티기가 힘들어, 보호자 샤워실에 가서 씻었다.
샤워를 하는데, 물을 맞으면서 주저앉았다.
엄마가 너무 그리운 거라... 과거의 엄마가... 안아주고 웃어주고 얘기하던 엄마가 너무 그리운 거라...
엄마가 계속 말씀을 하지 않는다.
눈동자가 11시방향으로 오른쪽으로 몰렸고, 반대편을 아예 보시지 못했다.
열은 계속 오르락내리락한다.
의사는 열을 빨리 잡기 위해 강한 항생제를 투여해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동의서 사인...(나중에 알았다. 지금 투여하는 이 많은 항생제들이 결국 무섭게 돌아온다는 걸...)
중환자실에서 나는
엄마의 대소변을 치우는 법을 배웠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체위를 변경하는 법도
식사를 주는 방법, 양치를 해주는 방법들도 하나 씩 배워갔다.
* 뇌졸중센터와 전문치료실 *
각 병원마다 신경과 안에 생긴 센터다.
그리고 뇌졸중 전문치료실은 뇌출혈 뇌경색 환자들만 모아 놓은 중환자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