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 심근경색의 골든타임은 9시간
아빠는 엄마가 쓰러진 것에 큰 충격을 받으셨다.
사랑하는 사람이
50년 가까이 살았던 동지가
내 앞에서 쓰러진 것을 직접 보았으니
그 힘듬은 아무도 알지 못했으리라.
아버지가 숨쉬기가 힘들다고 했을 때,
그 때 빨리 병원에만 모셔갔어도...
아빠를 그렇게 빨리 천국에 보내드리지 않았을 텐데...
"아빠.... 너무 보고 싶어..."
엄마가 쓰러진 날은
사실 아빠의 틀니를 교체하기 위해 치과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틀니가 헐거워져서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틀니 교체는 시급했다.
엄마는 (급하게 구한) 1인 간병인에게 맡기고, 사촌오빠가 하는 치과에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치과를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우리는 엄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엄마의 병원비에 걱정을 많이 하셨다.
뜬금없이 농협에 있는 적금통장을 깨야겠다며 비밀번호를 알려주셨다.
돌아가실 걸 미리 예감이라고 하셨을까? 엄마와 아빠의 통장 비밀번호를 모두 알려주셨다.
어느새 치과에 도착했고, 아빠는 나에게 자상하게 웃으시며.
치과는 2층이었고, 내가 주차하는 동안 아빠는 혼자서 먼저 계단을 올라가셨다.
주차를 하고 병원에 올라갔는데, 아빠가 틀니의 본을 뜨는 걸 매우 힘들어 하셨다.
숨 쉬기 힘들다고 하니 쉬었다 하고, 또 쉬었다 하고 시간이 꽤 오래걸렸다.
사촌오빠는 이모부가 오늘 컨디션이 좀 안좋으신가보다며, 여러 번 망친 본뜨기를 보여주는데.
난 오빠한테 미안한 마음에 아빠한테 오히려 숨을 좀 참으시라고 했다.
아빠의 상태를 이해 못했던 내가...아빠는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우리 모두가 미처 심근경색일 거라곤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다.
집에 차안에서...아빠는 계속 식은 땀을 흘리셨다.
날은 추운데 왜 땀을 흘리냐고 물었더니, 치과가는데 마지막 계단에서 가슴을 조이는 심한 압박감을 받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숨 쉬는게 많이 어렵다고...
그때! 바로! 응급실로 갔어야 했다.
그런데 난 철 없이, 내가 좋아하는 양념게장을 먹고자 아버지를 음식점으로 끌고 갔다.
아빠는 밥을 나에게 덜어주며, 힘들었을텐데 더 먹으라며 자상하게 웃어주셨다.
라며 겨우 식사를 하셨는데.... 그게 아빠와 나의..... 마지막 식사였다.
난 아직도 그 게장집을 못가겠다. 아버지가 생각나서...
맞은편에 앉아서 웃으시며 이런 저런 얘기 했던 아빠가 너무 보고싶다.
다음 날 전화를 했더니, 아빠가 잠을 제대로 못주무셨다고 했다.
누으면 숨이 차올라서 숨이 안쉬어 지니까 앉은 상태로 뜬 눈으로 지새우셨다는 거다.
걱정이 되어 동네 정형외과에 모시고 갔다.
심근경색 발발 24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서 병원에 간 것이다.
심전도검사를 해보던 의사는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라며 진단서를 발급해줬다. 지금 당장 가라고...
그래서 엄마가 누워 계신 대학병원을 택했다.
어느 병원이든 유명한 명의가 있을 텐데, 두 분이 한 병원에 계시면 내가 돌아보기 쉽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아빠는 2주나 보지 못한 엄마의 얼굴이 보고 싶으셔서, 엄마의 병실부터 가보자고 하셨다.
코로나19에 대한 병원감시는 삼엄했다.
특히나 엄마는 VRE 때문에 격리병동에 있었기 때문에 외부인이 들어가기란 쉽지 않았다.
간병인에게 망을 좀 봐달라고 하고, 아버지와 함께 들어갔다.
두 분은 엄마가 쓰러진 날 이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빠는 온 몸이 붓고 수많은 선에 휘감긴 엄마를 보고 놀라신 듯 보였다.
엄마는 아빠의 손의 온기가 느껴졌는지 잠시 눈을 떴다.
아빠는 엄마의 두 손을 다독여주셨다.
그 순간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서는 어찌나 펄쩍 뛰면서 빨리 나가라고 하는지, 난리였다.
코로나시기엔 환자한테 보호자는 한 명 있어야 하는 거 모르냐며, 병원 규칙을 어겼다며 큰 호통을 쳤다.
그렇게 쫓겨난 것이, 말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헤어진 것이
두 분의 마지막 인사였다..
오십 년을 함께 한 인생에 정말 30초?
아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줬지만. 아빠는 죄책감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다.
"심근경색의 골든타임은 9시간"
검사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간호사가 교수진료실로 우릴 불렀다.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심각하게 보더니, 폐에 물이 차고 있어서 숨쉬기가 많이 힘들었겠다며
지금 당장 응급실로 입원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이모부에게 전화가 왔다. 심장전문병원을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엄마도 VRE걸려서 격리된 그 병원을 믿을 수 있겠냐고 말이다...
아빠는 이모부 말씀에 동의를 하셨고, 하루를 더 미룬 뒤 심장전문병원에 입원을 했다.
하지만 설 연휴가 기다리고 있었고, 아빠의 스탠트 시술은 발병 일주일을 지난 뒤에나 하게 되었다.
라며 웃으며 입원하셨는데, 아빠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긴급수술을 하셨고,
이 후에도 경과가 좋지 않아 폐에 물을 빼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혼수상태가 되셨다.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뇌졸중이 왔고,
바로 신장도 망가져서 투석을 해야 하는 최악을 상황까지 발생했다.
그리고
내가 아빠를 조금 더 위로하고,
아빠와의 마지막 시간들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을 많이 후회한다.
엄마가 쓰러지시고 한 달 만에 아버지의 장례를 치를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