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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Nov 09. 2021

VRE? 그게 뭔데요?

EP3. 반코마이신 항생제 내성증.



“보호자님. 어머님이 격리병동으로 이송해야 합니다. VRE전염균에 감염되셨어요!”     


전염균이라니? 

갑자기 날벼락같은 음성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담당 레지던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꺼내는데, 심장이 내려 앉는 줄 알았다.


“VRE, 그게 뭔데요?"

“쉽게 설명을 드리자면, 코로나19가 전염균인 거 아시죠? 이 균도 마찬가집니다. 타인에게 전염이 될 수 있는 법정감염균이라서, 격리되셔야 합니다.”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말씀이세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보호자님이 병원으로 오셔서 동의사인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질 못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지 하루 됐는데...뭔 전염병에 걸렸다는 거야?


출처: 서울 아산병원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열흘간 있다가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됐다.

희망에 부풀어 일반병실에 내려왔지만, 그때부터가 생지옥이었다.

그 동안은 중환자실 전문 간호사들이 식사며 대변 치우기, 체위 변경 등등 모든 걸 관리해줬었지만.

이젠 보호자인 내가 스스로 관리를 해야 했다.      

특히 엄마의 기저귀를 바꾸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온 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정원아. 힘들지? 화장실 가자. 내가 할 수 있어. 슬리퍼 줘라"


엄마는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미안하셨던 지, 계속 화장실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게 가능하면 천 번 만 번도 해 드릴 수 있지.  제대로 앉지도 못하시는 엄마에게 가당키라도 한 말인가.

계속 모진 말만 나왔다.


"엄마, 당연히 내가 해야지. 불편하겠지만 좀 만 참으셔! 응?"


한바탕 기저귀 가는 일로 씨름을 하다가 엄마는 새근새근 아기처럼 주무셨다.

엄마가 재활만 열심히 하면, 지금의 이 고통은 지나갈 거니까. 그 희망으로 참을 만 했다.


교회 식구 중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가진 권사님이 코로나 검사 음성을 받고 들어오셨다.

권사님은 열흘 동안 고생했으니, 집에 가서 잠시 쉬고 오라고 하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나 혼자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 교회 식구들이 가족이 되어 도와주니 너무 좋았다.

하룻 밤만 자고 오겠다고, 권사님께 엄마를 맡기고 집으로 왔다.

그 동안 얼마나 긴장하고 울었던지. 몸무게가 3키로나 빠져있었다.


집에 있는 남편에게도 고2 딸에게도 참 미안하고,

그동안 엄마와 나 없이 잘 버텨준 아빠에게도 고마웠다.

열흘만에 아빠와 저녁식사를 하는데. 

걱정과 두려움에 식사도 제대로 못하신 듯 핼쑥해진 아빠가 더 안타까웠다. 


"아참, 아빠 틀니해야지?"


아빠의 훌렁훌렁 빠지는 틀니가 눈에 계속 거슬렸다. 

위아래 모두 통 틀니를 하셨는데. 7년이 지나니 잇몸이 줄어들어 틀니가 영 시원치 않았다.

게다가 엄마에 대한 충격으로 잘못 발을 접질러서 왼발엔 깁스까지 하고 계셨다.

그야말로 엄마가 병원에 계시니, 모두가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VRE균에 감염이 되어 격리병실로 옮길 것이니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였다.   

가슴이 철렁,

아빠도 식사 중에 얼어붙으셨다. 윗 틀니가 툭 떨어졌다.  

혈압이 오르셨는지 얼굴까지 벌개 지셨다.

아빠를 진정시키고 얼른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다.      



" VRE은 어떻게 나을 수 있나요?"

엄마는 이미 격리병동 2인실로 옮겨져 계셨고, 

엄마를 돌봐주시러 오신 교회 권사님이 너무 무서워하셔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얼른 집으로 돌려보냈다. 


대체 어디서 전염이 된거야?

격리된 엄마도. 보호자인 나도... 

병실 밖을 나가는게 자유롭지 못했다.

다른 환자에게 감염시킬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재활운동 계획도 모두 취소가 되어 버렸다.

너무 억울하고 미칠 것 같았다.

지금이 재활치료의 급성기라는데... 왜 하필 지금 이러는건데?


"대체 누구한테 감염된겁니까? 엄마도 누군가에게 감염이 됐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병원에서는 오히려 엄마의 면역이 약해서 그런 거라며 환자 탓을 했다.


"혹시 엄마가 소변줄 뽑던 날... 아니... 다시 소변줄을 꼽았던 날. 그때 간호사들 손으로 감염된 거 아닙니까?"

 

의료진들이 의심 가지만, 증거는 딱히 없었다.


"아.... 미치겠네. 대체 이럴 땐 누구랑 상의해야 하는거야."

 

아빠는 병원에 따져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친척들은 병원에 의료과실로 소송한다 하라 했다.  

결국 아는 의료관계들에게 물어물어 알게 된 건.

운이 없어서 그런 거였다. 

뇌졸중 환자 카페를 찾아보니 엄마와 같은 사례들은 많았지만 정말 운이 없었던 거다.


의사는 말했다

VRE는 환자는 잘 먹으면 면역이 좋아지고, 운동을 많이 하면 낫는다였다.

장난하나?

콧줄로 뉴케어 600ml뿐이 못드시고, 재활도 아예 못하는데 대체 어떻게 나아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엄마의 병환이 악순환의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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