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아버지와의 마지막 임종면회
매정하게 말하는 응급실 당직의가 야속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 어쩜 저렇게 쉽게 나올까?
아빠와 이별한 것이 3주도 안되었는데....
또 다시 연명치료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금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가 위독하다는데, 치료 한 번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었다.
엄마를 치료하는 게 먼저다. 그러다 위험해지시면... 더 위험해지면...
3주 전 아빠 때 그랬던 것처럼.....연명치료를 포기하겠다고 하면 되니까...
연명치료에 동의를 해도 내가 하고,
연명치료에 포기를 해도 내가 하면 된다.
엄마의 가족관계 증명서엔 이젠 외동딸인 나 밖에 없으니까...
난 연명치료에 관한 모든 치료를 하겠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그렇게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올라가신 엄마.
한 달 뒤,
대학병원에서 패혈증 치료를 잘 받으셨고, 다시금 요양병원으로 가셔서 재활치료를 하게 되었다.
솔직히 의문이다.
왜 병원의 의사들은 최악의 상황부터 이야기를 하는 걸까?
보호자들은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눈앞에 하얘지는데 말이다.
"제발. 아빠를 살려주세요"
아빠 때의 일이다.
2021년 2월 15일. 설 연휴가 끝난 월요일 밤 10시.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의사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전화기 너머로 여기저기서 전화벨이 울리는 걸 봐서는 의사가 급하게 의료 스텝들을 모으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전화통화를 했었는데 갑자기 긴급수술이라니... 남편과 함께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라는 소리에 1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병동에 전화를 걸었더니
황당하게도...
코로나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빠가 고열이라서, 코로나 음성 확인이 나와야만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판정 나면? 시술도 못 받고 그대로 돌아가시라는 거야?
아....순간 화가 났다.
엄마도 코로나 검사한다고, 골든타임을 놓쳤는데,
아빠도 코로나 검사한다고, 폐에 물이 찼음에도 그냥 기다려라?
병원 측은 코로나가 위험하니 어쩔 수 없다는 설명만 할 뿐, 그 고통은 아빠혼자 져야 했다.
미치고 팔짝팔짝 뛰겠더라.
음성이 나온 걸 확인한 뒤 아빠는 의식을 잃은 채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비닐통에 쌓여서 무슨 전염병 환자인것처럼.... 그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찢어지더라.
하나님께 기도가 절로 나왔다.
'평생 소원이었던 목사님까지 되셨던는데, 하나님 아빠에게 제발 아픔을 주지 말아주세요.'
30분 정도 지났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수술실에서의 당직의사 전화였다.
울리는 전화가 너무 무서웠다. 떨리며 받았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빠가 돌아가실 걸 생각도 못했던 터라.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가족이면 엄마와 나뿐인데... 누구에게 또 전화를 해야 하는 거지?
옆에 있던 남편이 손을 꼭 잡아주었다.
한 참 뒤에 의사가 땀을 닦으며 수술실에서 나왔다. 정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이었다.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걸까? 아니면 사셨다는 걸까?....
또 마음의 준비? 뭔 준비!!
의사는 자신의 시술한 영상을 핸드폰으로 보여줬다.
최근에 엄마가 쓰러진 충격에 아빠가 힘드셨나보다고 했다. 의사는 노인들에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위로해주었다. 그렇다면 과거에 막힌 동맥은 왜 몰랐냐는 물었다. 분명히 힘들어했을텐데 빨리만 왔어도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아빠는 5년 전, 전립선암을 너무 늦게 발견한 나머지 전신의 뼈까지 골육암을 선고받은 상태셨다.
의학 프로그램을 하던 선배작가의 소개로 유명한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다행히 의사의 극진한 치료와 긍정적인 격려로 금방 돌아가실 것 같았던 아빠는 생명을 더 연장하실 수 있었다. 호르몬 제거수술을 하고, '도세탁셀'로 항암치료를 했으며, 의료보험 덕에 고가의 ' 엑스탄디' 약을 드시며 회복을 하고 계셨다. 그러나 두 달전, PSA 수치가 다시 높아지게 되면서 교수님은 약의 효능이 없다고 판단 했는지 엑스탄디 처방을 중단했다. 그때 정말 막막했는데... 의료진료기록을 확인해 보니. 아빠는 전립선항암제를 드시면서 담당교수에게 숨쉬기 곤란하다는 말을 했었다고 적혀있었다. 그때마다 교수는 항암약의 부작용이라고 넘겼는데, 그것이 심근경색인 건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시술한 의사는 안타까워 하며 자리를 떠났다. 며칠을 더 견디실지 모르겠다는 말만 남기고.
"부모님과 사전 연명치료에 대해 얘기해 본 적 있습니까?"
당황스러웠다. 연명치료가 뭐지...?
의사가 얘기하는 여러 항목 중에서 한 개는 해야 자식으로서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몇 초 안 걸렸다.
엄마가 병원에 누워계시기 때문에 내가 가족 대표로 "인공호흡기 부착"에 대한 아빠의 사전 연명치료 동의서에 사인부터 했다.
건강하실 때 '사전 연명치료 의향서'에 대해 부모님과 조금이라도 상의를 했었더라면...
내가 자식으로서 뭘 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지는 않았을 텐데... 내 선택이 맞는 걸까?
며칠 뒤 아빠가 깨어나셨다며 병원에서 면회를 오라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게 임종 면회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사실 1분도 안되는 잠깐의 대화였지만. 아빠는 괴로워서 몸을 이리저리 가누질 못하셨다.
간호사가 들어와, 나가 달라고 커튼을 쳤다.
그랬는데... 그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날 저녁에 아빠는 의식을 잃으셨고,
연명치료동의서에 동의사인을 했기 때문에,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셨다.
"아빠의 연명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을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난 고민이 됐다.
아버지는 이미 의식이 없으신지 삼 일이 지났고,
의료의 힘으로 아빠를 이 세상에 붙들어둔들 이게 아버지가 원하는 것일까?
교회 다니는 사람이 무슨 연명치료인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천국으로 가는 것을...
의사는 2019년 김 할머니 사건 이후로
가족의 연명치료 동의를 포기할 수 있는 법이 생겨서, 포기는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취소 과정은 나에게 매우 많이 힘들었다.
엄마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야 했던 것이다.
연명치료 포기 동의서에는 가족 개개인의 자필 사인을 받아와야 하는 절차가 요구됐다.
아빠가 엄마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엄마가 알게 되면, 엄마마저 삶을 포기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연명치료 동의에 대한 포기각서를 손에 쥐고, 밤새워 고민을 했다.
'아빠를 이대로 고통스럽게 누워계시게 할 것인가.... 엄마가 고통스럽더라도 포기 동의 사인을 해서, 아빠에게 평안을 드릴 것인가'
쉬운 선택이 아니었지만, 엄마에게 말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새벽 4시 23분. 전화가 왔다.
30분 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아빠는 호흡기를 떼고 누워 계셨다.
이미 벽의 모니터에는 맥박과 심장 그래프가 일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 말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그대로 무너졌다.
아직 아빠의 손에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내 얼굴을 비비며 속삭였다.
눈물 콧물 범벅...마지막으로 아빠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마지막으로 아빠가 평소 좋아하시던 요한계시록 끝장 끝 절의 "마라나타"에 대한 말씀을 읽어드렸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계 22:20-21)
아빠는...
나를 위해서...
아니...
엄마를 위해서...
아니...
우리 모녀를 위해서...
내가 고민하는 그 시각...
천국길을 선택하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