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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Nov 09. 2021

나의 목사님. 나의 아버지 이야기

EP 6. 아버지는 꿈을 이루신 멋진 분이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찾아낸 봉투가 있었다.


제작사에서 계약금을 받아서 아빠에게 드린 봉투에 쓰인 아버지의 글

내가 열심히 드라마 공부를 해서. 제작사와 계약하고 받은 계약금의 일부를 용돈으로 드렸는데.

그 게 너무 좋으셨나보다.


'그게 뭐라고 봉투에 적어놓고 고이 간직하셨는지....또 왜 그게 성금이야...!!'


봉투를 부여 잡고 한참을 울었다.


제대로 효도도 못했는데...

왜 이럴 때,

또 이렇게나 빨리 가신 거야...

늘 죄송하고,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아빠...

     







아빠는 늘 자신의 인생을 늘 후회했다.

이번 생은 실패했다고 생각했는지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집 밖에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빠도 한때 남자였고 사내로 살고 싶었던 사람이었을 텐데,

난 아빠를 그냥 아버지로만 보았고, 매번 불평만 늘어놓았었다.


그런 아버지가 하도 특이해서,

선배 작가에게 아빠에 대한 에피소드를 얘기했는데

그게  KBS <별별가족>에 방송되기도 했다.

집안에선 맥가이버이지만 집 밖엔 나가지도 않는 철부지 고집불통 노인네로 말이다.




그랬던 아빠가

어느 날 꿈을 위해 방 밖을 나오게 되셨다.

72세!

성경의 ‘갈렙’처럼 ‘모세’처럼 인생에 후회 없는 공부를 하고 싶다며 선포를 하셨다.


"아빠는 얼마나 사신다고 그 나이에 공부를 하셔?"

"다 늙어 공부해서 뭐해? 죽을 때 신학생 졸업장 가지고 가면 뭐할 거야?"


나뿐만 아니라 친인척들까지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험한 말을 늘어놓으며 말렸었다.

그러나 누가 아버지의 고집을 말릴 것인가.


"저 똥고집을 누가 말려, 밥이 나와 쌀이 나와!"


비싼 등록금 때문에 집에선 엄마와 매일 전쟁이었다.

학업을 중단하라고 달달 볶였던 시간은 어느새 지나가고 아빠는 83세에 목사님 안수를 받으셨다. 




신학공부를 시작하시더니, 점점 사람이 변하기 시작했다.

젊은 대학생들과 소통하고, 체육수업에서 골프랑 테니스, 수영도 배우면서 꽃청춘으로 살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하던 날,

총장님이 학교 사상 최고령의 학생이며, 전교 3등의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장학생으로 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꿋꿋이 총신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아 지금 국회도서관에 가면 아버지의 논문이 검색될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셨다. 평생 숙원이었던 ‘목사’의 꿈도 이루셨다. 82세 박사학위과정을 밟으며 노트북 앞에서 돋보기를 쓰고 워드 치는 모습, 히브리어, 헬라어, 영어를 공부하며 핸드폰을 들고 지내셨던 모습들... 꿈을 잃지 않는 그 인생이 얼마나 멋진 것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여든다섯!! 아버지는 꿈을 이루고 천국에 가셨다.

함경남도 고원이 고향인 아버지는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비록 통일이 되지 않아 북한 땅엔 가지 못했지만, 목사가 되셔서 천국에 가신 것이다.

아빠는 결국 행복한 사람이었다.

평생 이루고자 했던 꿈을 이루셨으니까....


총신대학교 강당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아버지 그리고 축하 해 준 어머니.



'꿈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

'이상과 꿈을 버리지 마라. '


아버지가 늘 하셨던 말씀이다.


넷플릭스까지 섭렵하며 ‘핫’한 할아버지가 되었었는데...

에어팟도 사용하며 손자뻘 되는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꼰대가 아니라 ‘멋진’ 할배가 되었었는데...

강의실에서 공부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그려본다.


어깨가 아파서 마트용 끌차에 책과 노트북을 싣고 지하철과 학교 교정을 오르내리셨던 모습.

식비 아낀다고 김치 냄새 폴폴 나는 도시락을 싸가서 홀로 강의실에서 드셨던 모습.

교수님 말씀을 하나라도 빠트릴세라 교탁 맨 앞에 앉아 핸드폰에 녹음하고,

집에 와서 듣고 또 들었던 모습.

틀니 때문에 발음도 제대로 안되면서도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공부했던 모습.

아버지의 지난 십 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자랑스럽게 졸업가운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힘들었던 과거보단.

꿈을 위해 달렸던 아버지 해맑은 미소가 더 기억에 남는다.   

        

피는 못 속인다고

나도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 마흔이 넘은 나이에 드라마 공부를 하고 있다.

꿈은 이뤄지는 것이며,

그 꿈을 위해 매일 노트북 앞에 앉는다.

비록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글일지언정. 오늘도 웃프지만 “아자!” 기합을 넣고, 하루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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