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4. 장애등급신청하기
엄마가 쓰러지시고
정확하게 6개월, 하루가 지난 2021년 7월 26일.
나는 주민센터를 방문해서
장애등급 신청을 위해 필요한 모든 서류들을 제출했다.
엄마가 계시는 요양병원의 재활의학과 과장님이 "장애정도 심사용 진단서"와 "뇌병변 장애 소견서"를 써주셨고, 엄마가 쓰러진 당일날 촬영했던 CT와 MRI 등의 영상 자료들.
그리고 6개월간의 수 백 페이지에 달하는 검사결과지를 제출했다.
정말 묵직한 종이 뭉탱이였다. (이후 주민센터에 엄마 앞으로 나온 마스크를 받으러 갔다가 다시 돌려 받음)
의사의 소견서를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의 상태가 최악 중에 최악이구나...
타인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도 없고,
제대로 얘기도 할 수 없으며,
비위관을 통해 영양과 약을 주입한다는 내용이 체크되어 있었다.
의사의 냉정한 평가가 너무 속상했다.
정말 엄마에게 이런 상황이 올 거라는 건 상상치도 못했고,
매일 자책 속에 살아가던 차에 이 장애진단서에 체크된 객관적인 시선까지 보니
마음은 정말 참담했다.
주민센터에 내야 하는 서류를 준비하는데 고생을 좀 했다.
6개월 동안에 다녔던 병원들의 진료기록을 전부 제출해야 하는데.
지금의 병원은 괜찮지만.
거쳐온 병원들에 가서 결과지를 떼 오기란 좀 번거로웠다.
엄마가 그 대학병원에 입원했을 경우에는 '위임장' 필요 없이 내가 직접 뗄 수 있었지만,
엄마가 현재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기 때문에
[의료법 제21조 제3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13조의 3에 따라] 위임장을 작성한다는 엄마의 자필 서명이 필요했다.
코로나 시국이라 엄마와 면회도 안 되는 상황에서
얼굴을 맞대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병원 외래진료였다.
보호자만 가서 엄마가 복용할 약 2개월정도 분을 받아오면 되지만
굳이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건. 엄마가 너무 보고 싶기도 했고,
병원 밖을 한 걸음도 못 나오는 엄마에게
유일하게 콧바람을 넣어 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 여러 개인적인 사안들을 상의하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번 같은 사인을 받기 위해서도 말이다.
(코로나가 너무 번진 이후에는 보호자 혼자 다니는 것이 훨씬 안전해서, 약만 타다 드림)
엄마에게 펜을 쥐어줬다. 겨우 오른손만 움직일 수 있는 엄마는
잘 보이지도 않는 종이에 선만 그어대셨다.
엄마의 오른손을 잡고, 내 손의 힘으로 엄마의 사인을 함께 그려나갔다.
엄마의 침묵에는 소위 말하는 행간이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 하셨을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위임장은 수도 없이 작성해야 했다.
초창기에는 '성년후견인 제도'라고 해서,
가정법원 가서 후견인 판결을 받으라고도 했었지만.
엄마가 다행히 의식이 돌아오셨기 때문에, 그건 안 해도 됐다.
성년후견인이 아니니까.
번거롭고 절차가 복잡해도
엄마의 사인과 동의를 매번 구해야 했다. 그게 당연한 거니까....
위임장 하나도, 난 엄마와 함께 작성해갔다.
엄마를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하나하나 다 얘기해줬다.
이 모든 게 1인 간병인이 계시기 때문에,
매일 영상통화를 하면서 했기에 가능했다.
주민센터에 서류를 내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참 무거웠다.
당연히 장애등급은 나오겠지.
심한 장애로...
의식은 있는데,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의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할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웠다.
엄마가 찡그렸다.
2개월 뒤,
엄마에게 새로운 신분증이 나왔다.
장애인 복지카드다.
사진은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주민등록증에 있는 사진을 등록했다고 했다.
엄마는 이미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셨나 보다.
새 신분증을 영상통화로 보여드렸는데 웃으셨다.
생각하지도 못한 엄마에게 새로운 삶.
병원에서 견디고 있는 엄마의 시간...
이 시간이 지나면.
엄마와 나에게 좋은 날이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