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팅달 Nov 16. 2021

아버지의 땅을 상속받다

EP15. 믿음의 유산

늦은 저녁,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남녀 셋이 서로 큰 소리로 싸우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귀를 기울였더니만.

어머님의 유산을 어떻게 정리할 지에 대한 삼 남매의 격한 토론이었다.


생전에 어머니가 각각에게 용돈을 송금했던 모양인데,

유독 막내 남동생에게만 더 줬었나 보다.

누나들은 그 돈의 행방을 캐물었고,

남동생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누나들에게 따지고 있었다.

억억억! 고액의 돈을 얘기하는 그들의 언행은

주변인들의 눈살을 찌푸렸다.

돈 앞에서는 핏줄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 딱 맞아 보였다.

상속 취득세와 등기는 누구 낼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는데.

난 읽고 있던 책이 집중이 안돼 밖으로 나와버렸다.      


달빛을 보며 난 생각했다.

이럴 땐 외동이 좋은 것 같다고.

형제들에게 상처 줄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없으니까.     




아빠가 지난 3월 초에 돌아가시고,

3월 말까지 주민센터에 가서 아버지의 사망신고서를 냈다.  

이제 가족관계 증명서에서 아빠의 자리엔 ‘사망’이라는 표시가 뜨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된 것이다. 참 쓸쓸하다.


이 슬픔은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에서 주인공이 딸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하는 부분이 나온다. 내가 막상 그 사망신고서를 쓰는 순간이 되니, 그 장면과 크로스가 되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추적자 THE CHASER> 3화 중에서


아버지의 주민등록증을 반납하고,

상속 안심서비스를 통해 아빠의 재산을 일괄 통지받겠다는 서류를 작성했다.

이후 아버지의 통장, 부동산, 주식 채권 등에 관한 문자들이 들어왔다.

아빠가 엄마와 나에게 남겨주신 유산은

x협의 적금 하나, 충남 서산의 작은 논 하나였다.


<아빠의 재산조회에 대한 문자들>


상속절차는 6개월 안에 받아야 했다.

난 엄마가 집에 오실 거라는 기대로 최대 9월까지 기다렸지만

엄마는 그동안 중환자실 2번, 응급실 3번을 다니시며 건강이 매우 불안하였다.

재활운동도 10월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으니,

엄마가 얼마나 지금까지 힘겹게 버티고 계셨는지 알 것 같다.


난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뒤늦게 상속절차를 밟았다


  

은행에 제출해야 할 서류


은행의 적금을 찾기 위해서는 상속받는 사람들이 모두 가야 한다.

엄마를 만나지도, 엄마가 은행에 가시지 못하니,

난 엄마의 인감증명서와 위임장을 적어서 가져가야 했는데...

우선, 엄마의 인감증명서를 떼는 그 자체도 매우 힘들었다.


엄마의 경우엔 응급차로 침대 채 주민센터에 들어가야 했다.

내가 먼저 사전 답사를 하기 위해 주민센터에 들러서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집주소와 전화번호. 생년월일만 기억하시면 된다고 했다.           

난 당연히 엄마가 개인정보를 잘 외우실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충격이었다.  

엄마가 하. 나. 도... 기억을 못 하셨다.

종이에 적어서 보여드렸는데.

엄마가 하. 나. 도... 읽지를 못하셨다.     

뜨악....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엄마가... 글을 잊어버리실 수 있지?

성경을 매년 6독을 하시고. 성경필사를 하셨던 분이 어떻게....

죽을 만큼 아팠고, 뇌를 다치셨고. 또 그동안 글은 본 적도 없으니 당연할 수 있었다.

      

어쨌든. 급하게 주소와 생년월일을 외우게 하는 방법뿐이 없었다.      

그때 깨달은 것이지만.

개인의 인적사항에 숫자가 참 많다는 것이다.

몇 년도 몇 월 몇 일에 태어났는지. 아파트 몇 동 몇 호에 사는지, 010-몇몇몇몇-몇몇몇몇...

와... 숫자가 왜 이리 많은가....

엄마는 기억이 조금씩 어렴풋하게 나셨는지.

삼일 정도 계속 되뇌어서야 생일과 주소를 가물가물 외우셨다.   


겨우겨우 주민센터에 응급 사설 차를 대절해서 침대채 이동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주민센터의 불친절과 공무원의 원칙주의였다

     

직원       “할머니. 왜 인감 떼러 오셨는지 알아요?”

엄마         “은... 행”

직원         “할머니 성함이 뭐예요?”

엄마         “000”

직원         “할머니 주소는요?”

엄마         “서울 00동....(한참 생각하셔서)

                00 아파 트....(한참 생각하셔서) 0동.... 0호”

직원         “뭐라고요? 안 들려요? 다시 한번 말씀해주세요!”

나            “저기요, 죄송한데요. 어르신이 아프시잖아요.”

직원         “(내 말을 무시하고) 할머니. 인감은 중요한 거라서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주소가 뭐예요?”

엄마         “(당황해서) 기억이 안 나...”
 직원         “할머니. 그럼. 생년월일은요?”

엄마         “35년. 0월......(한참있다가)”

직원         (갸웃거리며) 할머니. 지문을 찍어보겠습니다.      


직원은 코로나 방지를 위해 만든 가림막 너머로 지문을 찍는 기계를 내밀었다.

엄마의 손이 닿질 않았다. 이동침대가 테이블에 바짝 다가갈 리 없었다.     


직원         (앉아서) 침대를 가까이 가까이! 전선이 짧으니까 최대한 붙여주여요!     


엄마는 힘들게 힘들게 손을 끝까지 뻗어서 엄지손가락을 기계에 댔다.

인식이 잘 안됐다.

연이어 둘째. 셋째. 다 안됐다. 왼손도 마찬가지였다.     


직원          인감 못 떼 드립니다. 성년후견인 받아오셔야겠는데요?

나             (버럭) 본인이 직접 왔는데.. 본인 이름도 주소도 생신도 말씀도 하셨잖아요?

직원          잘 안 들려서 본인 확인이 안 됩니다. 다음에 오세요.

나             당신 뭡니까? (열 받아서 고함치며) 뭐하시는 거냐고요?

                이 주민센터. 너무 불친절하네?     


2:8 가르마에 늦깎이 공무원인 듯 보이는 원칙주의자 직원에게 소리를 쳤다.     


나             민원 넣을 테니까 그리 알아요. 중환자가 왔는데 도와주지도 않고,

                짜증 내면서 성년후견인을 받아오라고요? 미친 거 아닙니까?

직원            ....

나             본인 확인이 왜 안 돼요? 우리 엄마가 왜 인지 능력이 없어요?

                엄마 말씀하시는 거 다 들리잖아!! 들었잖아요!

                (명패 보며) 당신 이름이 000군? (메모하며) 딱 걸렸어!     


이때 급하게 팀장이 쫓아 나왔다. 연신 죄송하다면서. 빨리 인감 떼어 드리라고 했다.

직원은 팀장 말에 그제야 투덜거리며 원칙이 뭐네마네 하며 인감을 떼어주었다.

새삼 느끼지만 사람은 큰소리를 쳐야 일이 되나 보다.

법적으로 다 가능한 일인데도.

어떤 공무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복불복. 옥신각신을.... 이런 일들을 여러 번 겪어야 했다.    


엄마            다 된 거냐?

나               응. 수고하셨어. 엄마 주소가 뭐지? 꼭 외워야 해? 알았지?

엄마            내가 왜 이러나 몰라....

나               회복하고 있는 중이잖아. 아빠 통장의 있는 돈은. 엄마 병원비로 쓸 거니까.

                  아빠를 봐서라도 꼭 일어나셔야 해. 알았지?

 

누구의 논 인지도 모르지만.... 그냥 찍었다.


충남 서산 논의 상속은 법무사의 도움으로 서류를 준비했다.

서산시청 세무과에 가서 세금을 내야 했는데,

논의 규모와 가격이 크지도 비싸지도 않아서 얼마 안됐다.

엄마와 실시간으로 영상통화를 하면서 가을 추수를 기다리는 논 앞에 갔다.

      

“엄마, 엄마 아빠 논에 벼알이 엄청 많다. 너무 멋지다”


라며 카메라로 노랗게 물든 논을 보여드렸다.     


“올해는 작년보다 낫대냐?”

“모르지. 추수를 안 했는데.”     


사실. 난 엄마 아빠 땅이 어딘지 모른다.

저 넓은 논들 사이에, 어딘가 작게 끼어 있겠지...


이모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아빠는 1980년대에 아는 동료에게 속아서 이 논을 사셨다고 했다.

연고지도 없는 이 서산에 왜 사셨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농지정리와 토지개량으로 인해 논은 더 작아졌고.

여하튼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한 옆 논의 사장님의 도움으로 매년 쌀을 조금씩 얻어먹는 정도의 땅이었다.

      

노랗게 익은 벼가 가득한 논을 보며 엄마는 한숨을 쉬셨다.     


“내가.. 꿈이 있었다.”

“꿈?”

“네 아빠가 목사가 되면, 거기다가 작은 교회를 지어주려고 했다.

설교를 할 곳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엄마도 참. 이 작은 논에다가 무슨 교회를 지어? 법적으로 안돼!”

“...... 꿈..”

“엄마의 꿈을 아빠한테 말했어?알았다면 엄청 좋아하셨을 텐데. 맨날 뒤늦게 신학 공부한다고 구박만 하셨잖아”     


엄마는 웃다가 바로 눈물을 흘렸다.     


“아빠가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럼 나는?”

“너 걱정돼서 내가 못 가고 있어”

“... ”

“무슨 일을 하든 어디서든지, 매 순간 기도하며 살아. 교회 열심히 다니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거야”

“또 그 소리... ”

“엄마는 너한테 남겨 줄 게 그거뿐이다. 믿음 말이야...”     


엄마는 믿음의 유산을 주시겠다고 했다.

다시 깨어난 건.... 나에게 믿음을 가르쳐주기 위한 거라고.

난 예수님 잘 믿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마음에 묵직한 돌덩어리가 눌렀다.

엄마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드려야 안심을 하실까......


엄마가 그렇게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다시 깨어나신 목적.

힘들게 살아계신 목적을 알았다.  

바로 나에게 물려줄 "믿음"때문이란 걸...


이전 14화 엄마에게 새로운 신분증이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