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숙제는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그럴 것 같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다.
그래도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기에 그려려니 했다.
오히려 요즘은 몸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한방진료에 대해 알아보았다.
보건소에 서류를 제출하고 한의원에서 첩약, 침, 뜸 등의 치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필요한 서류를 살펴보니, 남자의 정액 검사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한참 동안 잊고 지냈던 공간, 그곳을 다시 가야 했다.
오랜만에 그 방에 들어섰다.
어두 껌껌하고 음침한 느낌..
직원분은 아무렇지 않게 본인확인을 하고 정액을 담는 통을 주며,
"다하시고 통 나 두시고 그냥 가시면 돼요~"
라고 얘기를 한다.
괜히 민망하다.
허긴 저분들은 곧 내정자 통을 열어서 스포이드로 쪽 뽑아서
내 소중한 아이들을 살펴보겠지..
그저 본인들의 업무 일뿐이다..
중요한 의식을 치르기 전 청결을 위해 손을 깨끗이 씻고
조명을 어둡게 맞추놓았다.
그리고 원활한 정액 체취를 위한 영상이 있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직박구리 폴더를 열었다.
몇 달 전 보았던 영상들이 그대로였다.
업데이트는 좀 하지...
순간 쓸데없는 생각이 스쳤다.
'내가 다운 받아 올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고민을 할 필요 없이 그냥 빨리 해치우자는 생각으로 저번에 보았던 영상을 틀었다.
나의 소중한 녀석들이 모두 다 통에 담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하여 일을 보았다.
어두컴컴한 그 방에서 나온 후,
내 안의 어색한 감정을 애써 무시했다.
몇 번의 경험이 있지만 나올 때의 기분은 참 말로 표한할 수는 없다..
며칠 후, 아내가 알아본 한의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한의사는 먼저 나의 체질부터 살펴보았다.
나는 줄곧 소음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태음인.
그렇구나 싶었다.
돼지고기보다는 소고기를 먹고, 러닝을 많이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하필 비싼 소고기인지.. 그래도 소고기가 맛있긴 하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들은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모였다.
"체력을 키우셔야 해요. 지금은 너무 저질 체력이에요."
알고 있었다.
40대를 넘어서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피곤함이 더 자주 찾아오고, 예전에는 거뜬했던 일들도 버거워졌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직접 듣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인정하기 싫었던 진실이 눈앞에 펼쳐진 기분이었다.
임신 준비를 하며 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더 와닿았다.
그동안은 막연히 '노력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
체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준비라는 걸 깨닫게 됐다.
남편의 역할은 단순히 아내를 돕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