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핀 루이 <커다란 꽃다발>
친구와 밥을 먹는데 옆자리 테이블의 목소리가 자꾸 들려옵니다. 젊은 남녀가 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어요. 남자가 여자에게 묻습니다. A는 잘 살고 있대? 회사 다니다가 그만뒀대. 그럼 뭐하고 살아 요즘? 사업을 시작했나 봐. 한 달에 몇 억을 번다던데. 여자의 대답에 순간 남자가 말을 멈춥니다. 아마 비슷한 또래 사람들 이야기인 것 같았어요. 남자는 한탄하듯 말합니다. 아~ 부럽다. 돈을 아주 펑펑 쓰면서 살겠구먼. 내 인생은 왜 이러냐. 이번엔 여자가 입을 다뭅니다. 둘은 A에 대한 대화를 좀 더 주고받다가 이내 조용해지더니 가게를 떠났습니다.
저는 젊은 커플이 말했던 A의 인생이 사실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젊은 나이에 엄청난 돈을 벌며 원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보이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A에 대한 이야기로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진 커플의 뒷모습이 눈에 밟혔습니다. 잠자코 있던 친구가 불쑥 말합니다. 이 세상에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몇 퍼센트도 안 된대. 넌 진짜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 친구의 질문에 순간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어요. 글쎄. 고민하는 척하며 제 마음속을 들여다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먼저 따른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멋지다고 생각하겠지?
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던 적이 수 없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해요. 친구에게 말했어요. 사실 내 마음을 따른다고 생각하면서 남의 시선을 엄청 신경 썼던 것 같아.
이번엔 제가 친구에게 물었어요. 넌 어때?
친구는 솔직하게 대답합니다. 사실 남들 볼 때 좋아 보이는 인생을 살고 싶긴 해. 그래서 무리하게 이것저것 산다거나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매달린다거나. 별 것 아닌 일도 부풀려서 자랑한다거나. 그런데 가끔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지쳐버렸다고 할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야. 그 일을 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데. 남들이 볼 때 하잘것없어 보일까 봐 그 꿈은 오래전에 버렸어. 이젠 하려고 해도 진짜 늦어버렸지. 고개를 들고 씁쓸하게 웃는 친구의 눈동자가 아득하게 빛납니다. 끝내 친구가 마음속에 담아둔 그 꿈이 무엇인지는 듣지 못했어요.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봤습니다.
남이 아니라 네가 좋은 걸 해.
남을 자꾸 신경 쓰면 이상한 걸 하게 돼.
친구가 그토록 신경 썼던 '남들'은 아마 그녀의 인생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지도 몰라요. 누구인지 특정할 수도 없는 추상적인 타인의 잣대가 언제부터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해진 걸까요. 남들이 뭐라건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왜 그리 어려워진 걸까요.
세라핀 루이(Séraphine Louis, 1864-1942)가 만일 남을 신경 쓰느라 전전긍긍하는 이들을 봤다면 한심함에 고개를 저었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해냈던 프랑스의 화가입니다. 그녀의 캔버스에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따른 그림들이 가득합니다.
세라핀의 부모는 가난했습니다. 그 부모마저도 그녀를 일찍 떠났죠. 세라핀이 한 살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일곱이 되기 전에 아버지도 세상을 등지고 말았어요.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잡일을 하며 생활해오던 세라핀은 열일곱이 되어 한 중산층 가정에 식모로 들어갑니다. 꿈 많은 십 대 소녀 시절, 그녀의 일상을 가득 채운 것은 온갖 허드렛일이었어요. 의지할 곳 하나 없던 세라핀이 위안을 얻었던 곳은 성당. 성당에 갈 때마다 보았던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는 세라핀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녀의 예술적 열망이 꿈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죠. 단 한 번도 미술 교육을 받아본 적 없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어요.
가정부 일로 번 돈은 미술 도구를 사기에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어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요. 타들어가는 촛불에 의지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푼돈으로 사모은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들 때마다 세라핀은 숨통이 트이는 듯했어요. 원색적이고 원시적인 이미지들. 무섭도록 싱싱한 꽃송이와 과일들. 성당에서 본 스테인드 글라스를 닮은 형상들이 그녀의 손 끝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세라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어요.
그것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행위, 자기 치유이자 자기 위안을 위한 행위였던 거예요.
재능은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아요. 그림 교육은커녕 당대 예술계의 유행조차 알지 못했던 가난한 여자였지만 세라핀은 무언가에 홀린 듯 계속 그림을 그렸고 결국 그것을 알아보는 이가 나타납니다. 독일 출신 컬렉터였던 빌렘 우데(Wilhelm Uhde)는 친구 집을 방문한 날 우연히 한 장의 그림을 보게 되죠. 그림의 독창성에 놀랐던 우데는 그림을 그린 이가 친구 집의 가정부란 사실을 알고 더욱 놀라고 맙니다. 세무관이었던 앙리 루소(Henri Rousseau)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적극 지원했던 이도 바로 우데였어요. 우데에겐 원석을 알아보는 재능이 있었던 거죠.
우데와의 만남 이후 세라핀의 생활은 점차 나아집니다.
1929년 우데가 기획한 '성심의 예술가들(Painters of the Sacred Heart)' 전시회에서 세라핀의 작품들이 처음으로 대중을 만났습니다. 우데는 전시회를 위해 세라핀의 작품들을 많이 사들였고 이 덕분에 세라핀은 난생처음 풍족한 생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값비싼 미술 도구를 마음껏 살 수 있었으며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이런 시간조차 오래가지 못했죠. 1930년,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에 우데 역시 큰 타격을 입어요. 이후 우데는 예전처럼 세라핀의 작품에 투자를 할 수 없었고 세라핀은 단 하나였던 지지대조차 잃고 말았습니다. 이때부터 세라핀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졌으며 극도로 불안정해졌어요.
정처 없이 산길을 헤매고, 이상한 말들을 혼자 읊조리기도 했어요. 세라핀은 점점 혼자만의 깊은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래도 그림을 멈추지 않았어요. 세라핀을 곁에서 지켜본 이웃 사람들은 미천한 여자가 무슨 예술이냐며 혀를 끌끌 찼어요. 예술에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쉽게 누군가를 비난하고 가치를 짓밟아 버립니다.
세상은 그녀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자연은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어요.
비천한 인간에게도 자연은 똑같은 빛깔과 향기를 보여주었으니까요. 날 때부터 달콤한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던 세라핀에게 자연은 달콤한 것을 건네주는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어쩌면 세라핀은 그런 자연의 아름다운 것들을 캔버스에 풀어내며 부디 자연만은 그 너그러움을 자신에게서 거두지 않길 기도했을지 몰라요. 그녀에게 그림은 돈을 위한 것도,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닌 살아내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소명이었어요. 그림은 세라핀이 가졌던 가장 순수한 욕망의 결정체였던 거죠.
세라핀은 영원히 시들지 않을 꽃다발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그녀가 그린 꽃송이들은 아름답거나 예쁘게 보이지 않을지도 몰라요. 꽃송이이라기엔 어딘지 투박하기도 하고 형상과 색채가 너무 선명해 불에 타는 듯 뜨거워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라핀의 꽃다발은 선뜻 품에 안거나 만지기 어렵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세라핀에게 그런 사실은 그다지 중요치 않았어요. 타오르는 듯 만개한 꽃다발을 받을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었을 테니까요. 자기가 좋아하는 모습의 꽃, 그거면 된 거죠. 오직 그녀만이 저 생생한 꽃다발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세라핀의 꽃다발이 내게 자꾸 묻습니다.
타인의 욕망이 내 것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나는 내 삶에 충실한 사람인지.
대답을 한참 망설이며 그녀의 꽃들을, 생생한 초록 잎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