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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Mar 26. 2019

"잘난 것 하나 없는 사람"

미켈란젤로

          

         

콤플렉스 하나 없이 완벽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완벽해 보이지만 남들은 모르는 콤플렉스를 한가득 품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요. 오늘 이야기는 제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편견'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정말 성공한 사람이라면 숨기고 싶은 콤플렉스 따위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거든요. 예를 들면 세계적 그룹 퀸(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같은 사람 말이죠. 부끄럽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와 이름은 알았어도 그의 얼굴은 잘 몰랐어요. 전설로 남은 퀸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를 보고서야 그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알게 됐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apsody)>를 보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보면 볼수록 멋진 남자입니다. 하지만 첫눈에 매력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죠.  



                        

아랍계 혈통을 물려받아 까무잡잡한 피부,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튀어나온 뻐드렁니.   


   

아마 저였다면 하얀 피부에 잘생긴 친구들이 가득한 곳에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다녔을 것 같아요. 프레디 머큐리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전설은 다른 누군가의 차지가 됐겠죠. 다행히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는 자신의 재능을 확신합니다. 언제나 재능을 펼칠 준비가 되어 있었죠. 타인의 비아냥과 비판도 그에겐 큰 의미가 없었을거예요. 자신이 누구보다 탁월하다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은 최정상에 선 프레디 머큐리에게 굳이 '콤플렉스'를 다시 상기시켜줍니다.  퀸의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프레디 머큐리 씨, 당신은 왜 치아를 왜 교정하지 않나요?                    

이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기자 양반, 당신 매너나 교정하시죠.                         




과연 프레디 머큐리다운 대답입니다. 그는 치아를 교정하면 목소리가 바뀌어 버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실제로 남들보다 돌출된 치아가 그의 풍부한 성량에 도움이 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그에게 있어 콤플렉스는 더 이상 숨겨야 할 치부가 아니었어요. 스스로 그것이 단점이라 생각할 때, 그것은 콤플렉스가 됩니다. 우리는 자꾸 그 조그맣고 못난 부분에 신경을 쓰게 되죠. 아무도 알지 못했는데 괜히 숨기려 들면 사람들은 그곳으로 시선을 고정합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본인의 단점을 단점이라 생각하지 않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결정해!"      



                   

저런 자신감, 보는 것만으로도 통쾌합니다.        




콤플렉스를 극복한 사람도 대단하지만, 거꾸로 지독한 콤플렉스 때문에 새로운 성과를 얻어낸 사람도 대단합니다. 어떤 의미로 콤플렉스가 성공의 원동력이 된 셈이죠.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예술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다니엘 다 볼테라(Daniele da Volterra),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544년경

                 


      

미켈란젤로는 인류 예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 창조>는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거예요. 바티칸 시국에 있는 시스티나 대성당(Aedicula Sixtina)에 그려진 천장화 중 일부인 <천지 창조>는 인간과 신이 교감하는 순간의 떨림, 장엄함, 아름다움을 고루 담은 역작입니다. 남자는 아담, 신의 품에 안긴 채 아담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바로 이브라고 합니다. 시대가 낳은 천재의 작품은 몇 백 년이 흐른 지금 보아도 완벽하기 그지없습니다.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화 중 천지창조>, 1508-1512




미켈란젤로는 1508년부터 장장 4년에 걸친 작업으로 이 작품을 완성합니다.      

천재는 고독하다 했던가요. 미켈란젤로는 누구와 함께 작업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홀로 모든 것을 시작하고 마무리했지요.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화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4년 동안 이 거대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천장화였기에 서서 작업할 수 없었고, 발판을 만든 뒤 누워서 그림을 그려야 했어요. 좁은 공간에서 경직된 자세로 일한 탓에 미켈란젤로는 관절염과 근육 경련으로 고생했습니다.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감 때문에 눈에도 여러 질병이 생겼죠. 이런 일화만 보아도 그가 어떤 성격의 사람이었을지 짐작이 됩니다. 매우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면이 엿보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불과 십 대 초반의 나이에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 가문(Medici)의 후원을 받으며 미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타고난 재능은 결코 숨겨지지 않는 법이죠. 소름 끼칠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 <피에타(Pietà)>를 완성한 나이가 불과 스물셋이었다 하니 그 재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피에타>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후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아들의 시신을 안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아들보다도 더 앳되고 말간 얼굴로 조각돼 있습니다. 어머니의 무릎 위에 부드럽게 늘어져있는 예수의 몸도 죽은 이의 것이라기엔 어딘지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이 모자(母子)의 비극 앞에서 비통함과 더불어 고요한 적막을 느낍니다. 절제된 슬픔이 이토록 극대화된 작품이 있을까요.         




미켈란젤로, <피에타(Pietà)>, 1498-1499.

              



이처럼 미켈란젤로는 완벽에 완벽을 기하는 예술가였습니다.      

어느 한 부분도 대충 만든 구석이 없어요.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균형과 조화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신들처럼 흠잡을 데 없는 외모와 인체 비례를 자랑합니다. 미켈란젤로의 그런 취향은 특히 조각에서 눈에 띄게 드러납니다. <피에타>의 성모 마리아와 예수는 앞서 보셨으니 아실 거예요. 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다비드> 또한 말 그대로 조각 같은 외모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흔히 잘생긴 남자 배우를 '다비드 조각'같다고 할 때의 바로 그 '다비드'입니다. 1501년에서 1504년까지, 3년에 걸쳐 조각한 이 대리석상은 높이가 5.17m에 달합니다. 이스라엘의 왕, 청년 다윗을 당당한 자태로 묘사했지요.               




 

미켈란젤로, <다비드(DAVID)>, 1501-1504

               



한 마디로 미켈란젤로는 '아름다움(美)'에 완전히 홀려버린 사람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미켈란젤로 또한 그래서 미에 집착했던 걸까요?      

그는 그런 단순한 이유로 아름다움을 추구한 게 아니었어요. 흥미롭게도 미켈란젤로는 아름다움과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미를 좇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에겐 숨기고픈 치부가 있었어요. 그는 어린 시절, 함께 미술을 공부하던 친구와 크게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큰 부상을 당하고 코가 주저앉아 버립니다. 미켈란젤로는 평생 그 상처와 함께 살아야 했죠. 그의 초상화를 보면 뭉툭하게 내려앉은 콧대를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창조해낸 이에게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다니 신기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입니다.                          




아무튼 그는 자신이 갖지 못한 아름다움을 손끝에서 빚어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림에, 조각에 아름다움을 불어넣은 것이죠. 본인이 가질 수 없었던 아름다움을 미워하기보다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거예요.     

 

어쩌면 자신의 콤플렉스에 별로 개의치 않았던 프레디 머큐리도 멋진 사람이지만, 미켈란젤로는 더 대단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독한 콤플렉스에 괴로워하면서도 그 콤플렉스를 다른 방향으로 승화시켜 냈으니까요. 시련을 결코 시련으로만 두지 않고 그것을 가슴에 품든, 말끔히 씻어버리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가 봅니다.                       



   

사실 우리도 알잖아요. 다른 어떤 외부적 슬픔과 고난보다도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응어리들이 가장 무겁고 끈질기다는 사실을요. 남들 눈엔 잘 보이지도 않는 단점 덩어리를 마음속에 품고, 때에 맞춰 꼬박꼬박 먹이를 주고, 크게 크게 살찌우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에요. 과거를 돌아보면 저를 '단점 투성이에 잘난 것 하나 없는 사람'이라고 깎아내리고 비난했던 것도 결국 저였더라고요.                          




혹시 지금, 그때의 저처럼 본인을 못살게 굴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       

저도 여전히 그럴 때가 많지만, 우리 이렇게 생각해보는 거 어때요.     

나를 가장 사랑해줘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요. 다른 이들이 다 나를 욕해도 나 하나만큼은 나를 믿고 사랑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안 그럼 내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잘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만 잘난 것 하나 없어 보일 때, 하찮아 보일 때면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이렇게 생각해 봐요.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결정할거야.          



               

커다란 앞니조차도 귀여워 보이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남,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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