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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Mar 12. 2019

"우린 안 된다니까"

알베르토 자코메티 <걷는 사람>

                          

'우리'라는 말은 참 듣기 좋습니다.      

홀로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말처럼 들리니까요. 물론, 기댈 곳이 필요한 상대에게 내 어깨를 빌려줄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혼자보다는 함께할 '우리'가 있다는 건 안심이 됩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요. 아주 좋은 말이라도 어떤 상황에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는 점이에요.                       


   

얼마 전, 친구와 전시를 보러 갔어요.       

가을이 막 시작할 즈음의 선선한 공기와 날씨 덕분에 우린 만난 순간부터 행복했습니다. 청명한 하늘은 어느새 저만치 높아져버렸고 알싸한 낙엽 냄새가 온 거리에 잔잔히 가라앉아있었죠. 전시 내용도 너무 좋았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시각을 경험할 수 있어 즐거웠어요. 친구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한껏 들떠있었고요. 맛있는 저녁만 먹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은 날이 될 예정이었죠. 그리고 전시실을 나오던 중, 우연히 지인을 만났어요. 오랜만에 만난 분이라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한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소소한 말들이 오갔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 분이라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더라고요. 친구와 저는 너무 빈둥거린 것 같아 부끄럽다는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자꾸 심각한 쪽으로 흐르는 거예요. 현 세태에 대한 비판부터 자기 비관까지 쉴 새 없이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전할 수 없지만 그분의 요지는 이거였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절대 안 된다니까요."               





이러저러한 이유들과 좋지 못한 상황들 때문에 당신과 나는 가망이 없다는 식의 말이었습니다. 듣는 내내 친구와 저는 너무 불편했어요. 왜 자꾸 우리를 묶어서 이야기하는 거지? 각자 알아서 잘하면 될 일인데 한통속으로 몰아넣어 깎아내리는 말을 왜 하는 걸까? 비관적인 분위기는 즐거운 분위기보다 빠르게 전염됩니다. 행복한 하루를 맛있게 마무리하려던 저와 친구는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그만 기분이 다운돼 버렸어요.           



                    

분명 모두 자기 나름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어려운 일은 노력하죠. 그래도 안 되는 일엔 미련을 버립니다. 혹은 끝까지 도전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힘들 때 '우리'들은 서로 의지합니다. 하지만 어둡고 질척이는 수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우리'라는 말은 참으로 고약해요. 며칠 동안 그분의 부정적인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괜히 잘하던 것도 손에 잘 잡히지 않고 무기력해지기도 했죠.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말 한마디가 생각보다 오래 여운을 남기니 저도 의아했습니다. 아마 제 안에 저도 모르던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노력하는 일들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 말이에요. 그 날 그 사람의 말이 위태롭게 닫혀있던 제 마음속 어두운 문을 활짝 열어버린 거죠. 이럴 땐 다들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저는 반 고흐(Van Gogh)의 말을 떠올립니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더욱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마음속 불안한 목소리가 차츰 사라진다."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의 작품 역시 저에게 큰 힘을 줍니다.           



앞을 향해 꿋꿋이 걸어 나가는 한 사람. 

그는 결코 타인의 부정적인 말에 주저앉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걷는 사람(L'Homme Qui Marche), 1960

                          


바싹 마른 몸에 마치 철골같이 길고 윤기 없는 팔다리. 

풍만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좁은 어깨와 가느다란 목덜미. 

눈코입의 형상조차 선명하지 않지만 지금 그가 앞을 바라보며 걷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자코메티의 대표작 <걷는 사람(L'Homme Qui Marche)>은 188센티미터에 달하는 조각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시원시원하면서도 강인한 보폭이 단연 눈에 띕니다. 자신만의 굳은 의지로 걸어가는 이 사람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여요. 그는 걸어야겠다, 다짐했고 그래서 지금 걷고 있는 중입니다.                          




스위스에서 태어난 자코메티는 이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 뒤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어요. 흔히 자코메티를 '실존주의 철학을 조각으로 구현한 예술가'라 부릅니다.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사무엘 베케트 등의 지적인 친구들과 교류했던 자코메티는 '철학하는 조각가'라 불리기도 하죠. 그는 모든 불필요한 덩어리를 떼어낸 듯 한 형상을 빚어내는 데 몰두했습니다. 자코메티의 조각에는 생의 정수(精髓)만이 남아있어요. 그는 이렇게 말한 적 있죠. 살면서 갖게 되는 온갖 욕망들은 마치 헛된 꿈과 같다고요. 어찌 보면 회의론자의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자코메티는 진정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던 예술가였어요.                     





자신의 조각 작품 앞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은 뒤 폐허가 된 유럽 속에서 자코메티는 도대체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었어요. 아무런 의미도 찾지 않고 그대로 죽은 듯이 살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깨닫습니다. 잔혹한 사건을 겪고도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나갈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을요. 곧 쓰러질 듯한 몰골이지만 결의에 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걷는 사람>은 바로 그토록 강인한 인간에 대한 자코메티의 경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인간의 모습은 왠지 모를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주어진 상황을 불평하며 '나는 안 돼', 자조하는 이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숭고한 감정이죠. 자코메티 역시 상황을 탓하는 인간이 아니었어요. 그의 걸작들이 탄생한 곳은 일곱 평 남짓한 스튜디오였습니다. 수도와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이 허름한 작업실에서 자코메티는 인간의 실존을 고민하고, 역사에 남을 작품들을 만들어냈던 거죠. 자코메티는 말합니다.                          





"처음 이 작업실을 갖게 됐을 때, 나는 이 곳이 너무 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곳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졌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 작은 공간에 넣을 수 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이 스튜디오에서 작업했습니다.                   



  

스위스 영화감독 에른스트 샤이데거(Ernst Scheidegger)가 찍은 자코메티의 스튜디오




그저 묵묵히 걸어가는 것. 정말 쉬운 일 같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미래의 불안을 감내하며 묵묵히 걸어 나가려면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용기가 필요할 테니까요.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은 죽음의 공포와 도무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둠 앞에서도 꿋꿋이 걸어 나갑니다. 그의 앞에 어떤 미래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그에게는 분명 새로운 가능성이 다가올 겁니다. 주저앉아 상황을 부정하기만 하는 이는 그런 가능성을 결코 만날 수 없겠죠.             


             

자코메티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딛으며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 찍은 알베르토 자코메티

                   



저도 마음을 다 잡습니다. 

누군가의 부정적인 말 한마디에 힘이 쏙 빠지는 건 참으로 나약한 태도니까요. 

용기를 갖고 계속해서 걸어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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