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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Mar 05. 2019

"애는 왜 안 낳아요?"

타마라 드 렘피카 <모성>


결혼한 지 십 년 가까이 된 부부가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다고 말하면 아마 이런 질문이 가장 먼저 튀어나올 거예요. 부부 둘이서 외롭지는 않냐,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거냐, 그래도 나이 들면 자식이 있어야 든든하다 등의 말들도 꼬리를 물테고요.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다'는 순서가 더 이상 공식이 아닌 세상이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이들을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곤 합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한 부부의 결정에 따른 선택이기에 누구도 강요할 순 없는데도 말이죠. 



그리고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를 열거하는 이들의 말속에 정작 '아이를 위한 세상'은 없다는 거예요. 아이가 이 세상을 살고, 경험할 수 있게 해주어라. 한 생명으로 태어나 살 수 있는 아름다운 기회를 주어라. 이렇게 말하는 이들을 아직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너희가 외롭지 않겠니', '나이 들어 의지할 곳은 있어야지'라는 말은 아이가 태어나야 할 근본적인 까닭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찌 됐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문제는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많은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일이기도 하죠. 누군가가 대신 선택해 줄 수 있는 사안도 아니에요. 저는 항상 아이를 낳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들어 마음이 바뀌었어요. 단순히 아이들이 귀여워서가 아니라, 한 생명을 제대로 키워보고 싶다는 욕구에 가까울 거예요. 백지처럼 순수한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것에 따라 어떻게 성장해가는지 보고 싶기도 하고요. 또 하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갖게 되었을 때 인생을 대하는 저의 태도가 왠지 달라질 것 같거든요. 좀 더 책임감 있고 진지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역시 아이를 낳게 되면 독립적인 생활을 하긴 어려울 거예요. 사회에서의 경력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할 테고요. 



그런데 정말 엄마가 되면 저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요?





 

타마라 드 렘피카, <녹색 부가티를 탄 자화상Self portrait in the green Bugatti>, 1929




몽환적이고 섹시한 눈빛으로 운전대를 잡은 여자가 보이네요. 

그녀가 몰고 있는 차는 이탈리아 고급 스포츠카 부가티(Bugatti)예요.  짙은 화장에 세련된 옷차림. 육감적인 입술을 감싼 매트한 레드 립스틱. 머리에 꼭 맞는 에르메스 모자와 고급스러운 장갑.  거침없이 질주하는 스포츠카에 몸을 실은 이 여인은 자신의 매혹적인 모습을 보란 듯이 내보이고 있어요. 녹색 부가티를 탄 이 여자는 바로 폴란드 출신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 1898-1980) 입니다.  렘피카는 독일 여성잡지 <디 다메 (Die Dame)> 의 표지 그림을 주문받고 이 작품을 그렸어요. <녹색 부가티를 탄 자화상>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자신을 모델로 20세기 초반의 신여성들이 꿈꾸던 모습을 완벽히 구현해냈답니다.




렘피카는 부유한 폴란드인 어머니와 러시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본명은 마리아 고르스카 (Maria Górska). 러시아 상류사회에서 성장한 렘피카는 풍족하고 화려한 생활에 익숙한 소녀였죠. 열네 살에 불과한 나이에 러시아 귀족 청년과 결혼했으며 이 젊은 부부의 앞날은 남부러울 것 없이 펼쳐질 것이 분명했어요.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어요. 1917년,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을 맞아 귀족 체제가 완전히 몰락하고 맙니다. 이에 따라 렘피카 부부는 상류층이라는 이유로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죠. 그들은 보다 안전한 곳으로 도망쳐야만 했어요. 그렇게 선택한 곳이 프랑스 파리였습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도착한 낯선 땅. 당장 먹고살아야 했어요. 그러나 평생 힘든 일을 해본 적 없던 렘피카의 남편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계의 위기에 렘피카 역시 당황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과거 부유했던 시절의 환상에 사로잡혀 현실을 외면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렘피카는 돈을 벌기 위해 어릴 적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낡은 꿈을 끄집어냅니다. 

화가라는 꿈. 그녀는 그림을 그려 생활고를 이겨내기로 결심해요.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사진



이국적이면서도 세련된 렘피카의 그림은 금세 프랑스 사교계에 눈도장을 찍습니다. 러시아 상류층 출신으로 망명을 선택했다는 특이한 이력도 그녀의 유명세에 한몫했지요. 그에 못지않게 렘피카의 아름다운 외모 또한 프랑스인들의 흥미를 자극했어요. 늘씬한 몸매와 화려한 옷차림, 도도한 태도까지. 렘피카는 마치 은막의 여배우 같은 외모로 자신을 대중에 각인시켰어요. 이렇게 렘피카는 스스로를 하나의 아이콘으로 만들어갔습니다.  비상한 머리를 가진 담대한 여인이었던 거죠.   









렘피카는 파리에 정착한 지 십 년쯤 지나 남편과 이혼했습니다.

혼자가 된 그녀는 자유롭게 파리 사교계를 즐겨요. 수많은 남성들이 그녀의 타고난 미모와 우아한 분위기에 사로잡혔어요. 프랑스의 시인이자 영화감독 쟝 콕토(Jean Cocteau)부터 이탈리아 출신의 미래주의 화가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까지 당대 이름 높았던 남자들이 그녀와 사랑을 나눴습니다. 타지에 와서 겪게 된 가난, 그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렸던 그림, 그러나 그 그림으로 파리 예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 한 여자. 작품만큼이나 멋있었던 스타일과 자유분방한 생활. 렘피카는 한 없이 무너져내릴 수도 있었을 상황을 완벽하게 헤쳐 나와 다시금 상류층의 빛나는 보석이 된 거예요.



타마라 드 렘피카, <장갑을 낀 젊은 여자Young Lady with Gloves> ,1930






그러나 그녀는 이처럼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 또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렘피카는 하루 약 9시간에서 10시간가량을 그림 그리는 일에 바쳤던 워커홀릭이었어요. 성공을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셈이죠.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려가면 사람은 팽팽했던 고삐를 풀고 느슨해지기 쉬워요. 하지만 렘피카는 다시 얻은 부유한 삶을 결코 놓아버릴 수 없었어요. 그녀가 이토록 열심히 살았던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밖에 없는 딸,  키제트 (Kizette) 때문이었죠.  러시아에서 파리로 망명하던 때, 렘피카의 한 손에는 남편의 손이 다른 한쪽에는 키제트의 손이 꼭 쥐어져 있었어요.



  1925년 파리 불로뉴 숲(Bois de Boulogne). 키제트와 타마라 드 렘피카.



숱한 남성들과 염문을 뿌리며 거칠 것 없이 살던 렘피카를 다시 아뜰리에로 돌아오게 만드는 힘은 아마 그녀의 딸, 키제트가 아니었을까요. 녹색 부가티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여자, 직업적으로 성공해 막대한 부를 거머쥔 여자, 샤넬 드레스를 입고 파티장을 누비던 여자. 그러나 그녀는 장밋빛 새틴 드레스를 한껏 젖혀 어린 딸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이기도 했습니다.


  

타마라 드 렘피카, <모성maternity>, 1928



엄마의 젖으로 고개를 돌린 아기의 통통한 두 볼. 엄마는 그런 아기에게 능숙하게 젖을 먹이고 있어요. 잘 관리된 손톱과 완벽한 메이크업, 당시 유행을 따른 헤어스타일.  이런 그녀의 모습은 우리가 아기를 돌보는 엄마의 이미지로  떠올리는 통념적인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듯합니다.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가네요. 렘피카를 대표하는 여러 작품들 중 독특하게도 '엄마'로써의 여자가 등장하는 이 작품의 제목은 <모성>입니다. 사회적 성공과 독립적인 생활 못지않게 엄마라는 역할은 렘피카에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독립적 삶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아이는 구속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요. 아이를 돌보느라 내 생활이 모조리 망가져버리는 건 아닐지, 내가 꿈꾸던 미래는 그냥 접어버려야 하는 건 아닐지. 그러나 엄마가 되는 것과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 사이에 이 같은 고민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슬픈 일입니다. 하나를 희생해야만 하나를 얻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 과연 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진정 원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을까요?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요즘의 생각이 또 얼마 뒤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어요. 아이를 키우면서도 행복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인생 선배들이 많아진다면 저의 고민 또한 쓸데없어질 테죠.




그림을 그리고 있는 타마라 드 렘피카




성공한 화가이자 모성애 가득한 엄마였던 여자, 렘피카.

하지만 그녀에게도 괴로움과 눈물로 지새운 수많은 날들이 있었을 거예요. 유명한 엄마를 둔 딸, 키제트 역시 엄마에게 서운한 일들이 왜 없었을까요. 그래도 삶의 꼭짓점을 돌 때마다 어떤 일이 생겨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렘피카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자신만큼이나 소중한 딸이 있었기에 그녀는 어떤 힘겨운 날들도 이겨낼 수 있었을 거예요. 



새삼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누구보다도 강인해질 수 있는 그녀들이 존경스러워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이토록 큰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었네요. 그러니 함부로 "애는 왜 안 낳아?" 물어보는 건 좀 자제했으면 해요. 무릇 선택권이란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하는 당사자에게 있는 법이니까요. 



우리는 그저, 조금이나마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쓰면 될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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