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라 Feb 26. 2019

"이번 생은 망했어"

프리다 칼로 <엘로서 박사에게 보낸 자화상>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새삼 깨닫습니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될 거라 믿은 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말이에요.

그리고 혼자 생각합니다. "이번 생은 진짜 망했어."

소녀 시절을 지나, 사춘기를 겪고 이제 웬만큼 살았노라 자부하지만 매번 똑같은 믿음에 똑같이 배신당하는 게 우습기도 해요.




열여덟쯤엔 일기를 꽤 열심히 썼었어요. 손바닥보다 약간 큰 스프링 노트들. 인디고 블루 잉크가 부드럽게 나오는 펜으로 많은 것들을 끄적였었죠. 일기장 커버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쪽빛 바다 위에 새하얀 집들이 늘어서 있는 사진이 떠오르네요. 표지 오른쪽 아래에는 'Live your life', 'You can do anything' 같은 고무적인 문구가 박혀있었어요. 그때 썼던 일기들은 놀라울 정도로 열정적입니다.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고 내가 하지 못할 일은 없었죠. 꿈꾸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어요. 괜스레 과거의 나에게 미안해집니다. 지금의 평범한 내가 너무 보잘것없게 느껴지곤 하니까요.



그래도 별 탈 없이 잘 살아왔습니다. 크게 다치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았어요. 하지만 가끔씩 몰래 꿈을 꿉니다. 열여덟 즈음의 내가 믿었던 세상 속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꿈이요. 감성적이고 때론 예민했지만 당차고 뜨거웠던 소녀가 살고 싶었던 세상 속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요.



그 세상은 내 뜻대로 흘러갑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졌어요.   








프리다 칼로의 애인이었던 사진 작가 니콜라스 머레이(Nickolas Murray)의 뉴욕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 1939



여기, 그런 꿈을 가졌던 또 한 명의 여인이 있어요.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이미 그녀의 이름을 알거나, 그녀의 얼굴을 알고 있을 거예요. 너무도 독특하고 강렬한 외모와 아름다운 그림 덕분에 프리다 칼로는 쉽게 잊히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본 뒤 매혹당한 이들은 그녀의 인생이 지독한 비극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매혹당했을 테죠.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프리다 칼로의 고통은 6살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소아마비에 걸려 장장 아홉 달 동안 집에 갇혀 있어야 했죠. 이 병으로 오른쪽 다리가 왼쪽보다 짧아졌어요. 장애를 숨기려 오른쪽에만 양말을 여러 겹 신었으며 오른쪽 굽이 높은 구두를 신어야만 했어요. 그러나 지독한 비극은 결코 1장 1절로 끝나는 법이 없죠. 그녀의 삶에서 이 정도 고통은 약과였습니다. 16살의 어느 날, 칼로는 남자 친구와 버스를 타고 있던 중 끔찍한 사고를 당해요. 전차와 버스가 충돌하고 만 거예요. 사고 이후 그나마 정상이었던 왼쪽 다리 열한 곳이 부러지고 오른발이 탈골되고 맙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전차에서 튀어나온 철골이 그녀의 자궁을 관통합니다. 이 때문에 칼로는 세 차례나 유산했으며 35번에 달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어요.  



프리다 칼로, 부러진 기둥(The Broken Column), 1944



칼로가 서른 일곱에 그린 <부러진 기둥> 속에는 그녀의 모든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온 몸에 크고 작은 못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어요. 척추 대신 차가운 철골 구조가 그녀의 몸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 마저도 허리 부분에 금이 가 있네요. 몸을 제대로 고정하는 압박 밴드 안에 갇힌 칼로는 애처로운 눈물로 두 볼을 적십니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이 괴로워집니다. 조각조각 바스러진다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똑똑하고 자신감 넘쳤던 여자, 칼로의 인생은 그렇게 끝장나 버리는 듯했죠. 세상 모든 일은 모조리 그녀의 계획에서 벗어난 채 흘러갔으니까요.



침대에서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 칼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어요. 무료함은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법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병실 천장에 거울을 달아주고 딸이 자기 얼굴이라도 그릴 수 있게 해주었어요. 평소에도 자화상을 그려 친구들에게 나눠주곤 했던 그녀는 막다른 골목에서 자신과 오롯이 마주하게 됩니다.   



프리다 칼로, 엘로서 박사에게 보낸 자화상(Self Portrait Dedicated to Dr. Eloesser), 1940



이 시간들을 거치며 칼로는 세상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들을 탄생시킵니다.

1940년에 그린 <엘로서 박사에게 보낸 자화상>도 그런 작품들 중 하나예요. 그림 안에서 그녀는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나무에 감겨 붉은 피를 흘리고 있어요. 예수의 머리를 고통스럽게 짓누르던 가시관이 떠오릅니다. 칼로에게 삶은 고난 그 자체였겠죠. 암울한 잿빛 하늘은 그런 그녀의 심정을 대변합니다. 따사로운 빛이라곤 없는 하늘을 배경으로 칙칙한 잎사귀들이 빼곡하네요.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닫혀있는 하얀 꽃봉오리들에선 미약한 생기만이 느껴질 뿐입니다.



입을 꼭 다문 채 정면을 굳게 응시하고 있는 칼로의 머리 위에 놓인 꽃들만이 만개했어요.

오직 그녀에게 닿은 꽃들만이 활짝 피어날 수 있다는 듯이 말이에요.



그리고 눈길을 사로잡는 것, 바로 그녀의 귀걸이입니다.

도톰한 귓불에 창백한 사람의 손 모양을 한 귀걸이가 매달려 있어요. 평소 칼로는 화려하고 특이한 액세서리를 즐겨했습니다. 자신을 어떻게 꾸며야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여자였죠. 그럼에도 손 모양 귀걸이가 아름다운 장신구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오히려 기괴하다 하는 편이 맞을 거예요. 이 귀걸이는 그녀를 미적으로 꾸며준다기보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손'일까요.




상징적으로 손은 힘, 지배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의 손은 권능을 상징해요. 부처의 손 또한 힘을 의미하죠. 가부좌한 부처가 손으로 땅을 가리키는 동작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라 부르는데요. 모든 악마를 굴복시켜 없애버리는 수인(手印)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명한 미다스(Midas) 또한 손이 가진 힘을 보여주는 인물이죠. 미다스는 엉뚱한 소원을 비는 바람에 손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해버리는 행운을 얻어요. 물론 얼마 가지 않아 이 행운은 불행이 되고 말지요.








멕시코 보그(VOGUE)에 실렸던 사진 속에서 칼로는 짧아진 담배를 들고, 여유롭게 서 있어요.

그리고 그녀의 귀에는 <엘로서 박사에게 보낸 자화상>에서와 똑같은 손 모양 귀걸이가 달려 있습니다. 힘과 권능을 상징하는 또 다른 오브제, 독수리까지 함께 했네요.  칼로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도 당당해 보입니다.



세상이 그녀를 괴롭힐수록, 그녀는 더욱 강해졌어요. 수많은 상처를 안고도 대담하게 삶과 맞섰죠. 소아마비의 흔적과 수술 자국 때문에 긴 옷을 입어야 했지만 칼로는 누구보다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하며 독특한 아름다움을 얻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남편이 여자 문제로 속을 썩이면 칼로는 똑같이 갚아줬어요. 남편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더 열정적으로 뭇 남자들과 사랑에 빠지곤 했으니까요.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칼로 역시 삶이 지긋지긋해 죽고 싶은 날들이 수없이 많지 않았을까요. 그녀가 그런 슬픔을 오롯이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캔버스였어요. 남들에게 내보이지 않았던 내면의 슬픔이 담긴 칼로의 그림은 그래서 저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아, 저렇게 강인해 보이는 이에게도 털어놓지 않고는 못 배길 괴로움이 있었구나. 칼로의 손 모양 귀걸이를 처음 보았을 때도 비슷한 위안을 얻었어요. 그녀도 '더 강해지고 싶은 날'이 있었구나, 싶어서요.     



칼로는 강해지고 싶은 날,

거울 앞에 앉아 이 귀걸이를 꺼냈던 것 아닐까요.

마치 싸움터에 나서기 전 자신을 무장하는 전사처럼요.



어쩌면 우리도 하나씩 갖고 있지 않나요. 칼로의 보석함 한쪽에 놓여있었을 저 손 모양 귀걸이 같은 것 말이에요. 나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을 때 찾게 되는 그런 조그만 무기 같은 것 말이죠.  


정말 힘든 것은 겪어보지도 못한 주제에 "이번 생은 망했다", 절망하곤 하는 저를 본다면 칼로는 이렇게 말할지 몰라요.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야.

네 인생은 아직 시작도 안했는걸. 
꽃처럼 살아 너답게. 그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전 04화 "네 나이를 생각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