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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Feb 19. 2019

"네 나이를 생각해"

앙리 마티스 <나디아의 선명한 옆모습>



저는 한 번도 무언가를 '제 나이'보다 빨리 해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문득 든 생각입니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몸이 살만 해지니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곤 해요. 아무튼 제 인생은 조금 천천히 흘러온 듯합니다. 남들보다 앞서 달려 나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한두 걸음 늦더라도 바닥을 단단히 다지며 걸어가는 게 체질에 맞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그런 삶의 방식에 대체로 만족합니다. 어떤 바람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을 튼튼한 뿌리를 갖는 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그런 저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은 답답할 때가 있나 봅니다. 그들은 종종 말합니다. "너무 늦게 가는 거 아니니?" "인생에는 제 나이에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법이야." 



그런 말 앞에서 가끔 저는 평정심을 잃습니다. 

"맞아, 나이를 생각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너무 늦어버린 건가."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마치 거센 해일처럼 '조급함'이 엄습합니다. 잔잔했던 저 만의 바다는 이내 이리저리 휩쓸리며 아름다운 빛을 잃어버려요. 조급함이라는 태풍이 몰아치고 나면 그동안 제가 해 온 선택은 모조리 엉터리가 되고 제가 살아온 시간은 온통 텅 비어버린 껍데기가 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살기 위해 스스로 계속해서 되뇌이죠. 




"네 나이를 생각해!" 




아직 펼쳐보지 못한 꿈들이 서랍 가득한데, 어쩌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런 글귀를 보았어요. 




다들 나이를 먹으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하기 때문에

나이를 먹는 거라고 생각한다.




미국 정치인 시어도어 그린(Theodore Francis Green, 1867-1966)이 남긴 말입니다. 저에게 하는 말 같아서 한참을 읽고 또 읽었어요. 맞아요. 다들 나이를 먹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죠. 하지만 누군가 그런 법이라도 만들었나요? 시어도어 그린은 스스로가 만든 제약에 빠져 더 이상 도전하지 않고 나이 먹어가는 이들에게 일침을 날립니다. 어쩌면 본인을 위한 다짐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고 보면 끊임없이 성장하고 자신의 인생을 원하는 대로 살아나가는 이들은 '나이'라는 한계를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던 열정을 바쳐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런 이들의 얼굴은 충만한 기쁨으로 반짝입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생기와 힘이 넘칩니다. 




앙리 마티스, <나디아의 선명한 옆모습 (Nadia au profil aigu)>, 1948



간결한 선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여백. 

기름기라곤 없는 몇 번의 붓놀림에 선한 얼굴의 여인이 하얀 종이 위로 두둥실 떠오릅니다. 둥근 눈썹과 눈꼬리, 약간 아래로 굽은 듯한 긴 코,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이토록 쉽게 그리다니요. 그 무심함은 이 그림에 굉장히 세련된 감각을 더해줍니다. 현대 작가가 그린 일러스트라 해도 믿을 만한 이 작품은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Émile Benoît Matisse, 1869-1954)가 그린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의 그림과는 사뭇 다른 풍이죠. 야수파(Fauvisme) 화가로 알려진 마티스는 선명하고 원색적인 색감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운 강렬한 그림으로 유명하니까요. 



<나디아의 선명한 옆모습>은 마티스의 상징적인 작품들과는 전혀 닮지 않았어요. 어딘지 엉성해 보이기까지 해요. 그렇다면 이 그림은 마티스가 초창기에 그린 습작 같은 것일까요. 놀랍게도 이 작품은 그의 나이 일흔아홉에 완성한 것이랍니다. 화가로서의 명성은 더 쌓을 곳도 없이 높았던 시기, 팔순을 바라보던 마티스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줍니다. 어깨 잔뜩 들어갔던 힘과 현란한 색채는 잠시 내려놓고 오직 짙은 선 만으로 사람의 얼굴을 슥슥 그려내기 시작한 거죠. 



앙리 마티스 <부드러운 머릿결의 나디아(Nadia aux cheveux lisses)>, 1948.


  

이번엔 나디아의 길고 부드러운 목선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그녀의 검고 짙은 눈동자와 속눈썹에서 청순하고 담백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이 그림 역시 마티스가 일흔아홉에 그린 것이에요. 나디아라는 여인은 대체 누구였길래 노년의 마티스를 사로잡은 걸까요. 



마티스는 70대 초반, 관절염으로 고생했습니다. 연이은 암 수술로 상황은 더 악화되었지요. 병마가 훑고 지나간 몸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어요. 젊었을 때처럼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까지 잃은 건 아니었어요.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안목, 아름다움에 진심으로 감응하는 천성은 병든 몸에도 아랑곳 않고 마티스를 깊이 흔들고 있었죠. 그런 마티스에게 어느 날, 나디아 세드나위(Nadia Sednaoui)라는 여인이 찾아옵니다. 그녀를 마티스에게 보낸 인물은 다름 아닌 마티스의 사위였어요. 



그는 파리의 어느 거리에서 마주친 나디아에게 묻습니다. 



"혹시 앙리 마티스의 모델이 될 생각 없으신가요?" 

"그 유명한 화가, 앙리 마티스 말인가요? 좋아요." 



흔쾌히 승낙한 나디아는 마티스의 화실에서 1948년 여름을 보냅니다. 그 해 여름 동안, 마티스는 전에 시도해본 적 없던 화풍으로 또렷한 이목구비의 사랑스러운 아가씨를 여러 장 그려냈어요. 



나디아 세드나위(Nadia Sednaoui)의 사진


앙리 마티스,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는 나디아(Nadia au sourire enjoué)>, 1948



마티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균형이 잡힌 무구(無垢)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지쳐버린 사람에게 조용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그림을.





제 생각에 마티스의 작품 중 가장 균형 잡히고 순진 무구한 그림은 그가 생의 막바지에 그린 작품들이 아닐까 해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어떤 기교도,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편안하게 그려낸 저 그림들 말이에요. 병고를 치르고 쇠잔해진 마티스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말했을지도 몰라요. 이제 그만하면 됐지 않아요? 나이를 생각해서라도 좀 쉬지 그래요. 그러나 마티스에게 무언가를 멈춰야 할 '나이'라는 건 별로 중요치 않았을 거예요. 언제나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마티스에게 '새롭게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 또한 없었을 테죠. 




그래서 저는 혈기왕성한 시기의 마티스보다 노년의 마티스를 더 좋아합니다. 

왠지 모를 여유로움과 재치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나이 들어 시작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깊이 있고 참신한 시각이 담뿍 묻어나기 때문이기도 해요. 만일 마티스가 "당신 나이를 생각해요!"라는 남들의 간섭을 "그래, 내 나이가 몇인데. 이쯤 해야겠지?" 라며 수긍해버렸다면 나디아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겠죠. 1948년 여름 또한 별다른 일 없이 흘러가버렸을 테고요.  




새로운 뭔가를 시작할 때마다 남들보다 늦은 건 아닐지 걱정하는 저도 이제 마음을 바꿔봐야겠습니다. 그냥 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살아야겠어요. 결국 실패하더라도 시작해봤으니 후회는 없을 것 같아요.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1892)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얼마나 따분한가. 멈춰서는 것. 끝내는 것.

닳지 않고 녹스는 것. 

사용하지 않아 빛을 내지 못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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