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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lim Mar 10. 2017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난 삶을 데리고

<괴물의 아이> Review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난 삶을 데리고

안도현, '그대에게 가고 싶다' 中

  호소다 마모루의 작년 신작이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늑대아이>, <썸머 워즈>의 감독으로 신카이 마코토와 함께 현재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호소다 마모루가 가지고 있는 깊은 따뜻함과 긍정이 좋다. 진정 감동을 준다. <늑대아이>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그는 ‘부모’라는 역할에 대한 고민이 깊다. 그 고민은 <늑대아이>와 <괴물의 아이>에 잘 녹아 있다. <늑대아이>가 아이의 성장과 그를 위한 마련이 되어주는 부모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괴물의 아이>에서는 단순한 부모에 그치지 않고, 보호자이자 친구이자 또 함께 삶을 걸어가며 성장하는 동행자로서 주인공 ‘렌’과 ‘쿠마테츠’를 그려냈다.


  어린 렌은 마르고 연약하다. 아빠가 떠나고 엄마가 죽음을 맞은 실질적 고아이다. 어두침침하고 상처로 가득한 가슴엔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은 존재를 잡아먹을 수 있는 깊고 커다란 소용돌이이다. 모든 것이 싫다는 부정의 읊조림은 그의 걸음 뒤에 하나의 그림자로 남는다. 렌의 출발점은 이처럼 연약하고, 불안한 어둠이었다. 그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빛은 죽은 엄마의 현신인 작은 치코뿐이다. 

     

  그런 렌을 쿠마테츠가 발견한다. 그들은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다. 사회성이 없고, 너무 이른 나이에 홀로 남겨져 강해져야만 했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길이었다. 그런 렌의 모습에서 쿠마테츠는 자신의 과거를 보았을 것이다. 동시에 홀로 외로이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세계에서 싸움을 이어가는 쿠마테츠를 보고 렌은 자신을 투영해 동질감을 느낀다. 그들의 깊은 유대감은 그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렌은 인간이고 쿠마테츠는 짐승이다. 나이도 다르고 몸집도 다르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닮아있다. 


  우리가 관계를 배우고 익히는 가장 가까운 존재가 바로 부모이다. 우리는 어마어마한 부분에서 부모님의 영향을 받고 자라난다. 동시에 우리는 그 관계를 견디고 겪을 수밖에 없기에 성장한다. 홀로 자라나 수련하며 강해져야 했던 쿠마테츠는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일을 못한다. 할 줄 모른다. 설명이라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하기에, 쿠마테츠에게는 생소한 일이다. 렌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처와 경계로 뭉친 어린아이는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고 낯선 세계에서 헤맨다. 그럼에도 그 둘은 서로를 위해 노력한다. 쿠마테츠는 자신이 어릴 적에 무엇을 원했는지를 떠올리며 렌을 이해하려 하고, 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부터 차근차근 시도한다. 이들이 서로 본질적으로 아주 닮은 존재임을 생각한다면, 이 과정은 그들 스스로를 이해하는 일이라 보인다. 우리가 숨기고 싶고, 부끄러워하는, 혹은 잊고 싶어 하는 어떠한 내 모습을 마주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외면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는 것.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것. 서로를 향하는 관계 속에서 쿠마테츠와 렌은 비로소 자신을 만나고 자신을 알아간다.      


  시간이 흐르고, 그들의 수련은 계속된다. 단순히 일방적인 사제관계가 아닌 서로에게 보완이 되는 그들은 함께 성장한다. 가족이다. 어릴 적엔 세상에서 가장 커 보이던 부모님이 어느 순간부터 한 사람임을 알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를 통해 하나의 관계로 변모하면서 우리는 단순히 보호와 사랑을 받는 존재를 넘어서게 된다. 나의 분신과도 같으나 나의 소유는 결코 될 수 없는 자식을 통해 부모도 성장한다. 셀 수 없는 절망과 고통의 과정이다. 누구보다 가깝고 누구보다 닮았으나 같지는 않다.     


 렌은 원래 속한 세계가 다르다. 그는 괴물의 세계인 쥬텐가이에 들어와 스승이자 친구이자 아버지인 쿠마테츠를 만나 성장기를 보내지만 그의 정체성은 괴물이 아니다. 그를 부정할 수는 없기에 자연스레 그는 원래 속했던 세계로 돌아갈 시기를 맞는다. 그 속에서 살아남을 만큼 그는 강해졌기에, 이제 그는 평범한 자신 또래의 아이들이 지나온 과정을 밟기 시작한다. 공부에 빠진 그는 싸움 기술을 제쳐두고 학업에 몰두한다. 쿠마테츠와도 멀어진다. 결국 렌이 인간 세계로 돌아가길 결심하고, 친아버지를 찾게 되며 쿠마테츠의 품을 떠난다. 자식이 부모의 소유가 아니기에 언젠가는 그 품을 벗어나 날아가는 필연적 일이 <늑대아이>에도 큰 주제로 다뤄진다. 그 사건이야말로 부모 자식 간에 완전한 새로운 국면을 맞는 일이 아닐까.


     

  하지만 두 세계를 모두 겪은 렌은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그의 방황 끝에 그는 자신이 어릴 적 생겼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에게 그토록 어둡고 큰 구멍이 있음에 놀란 렌은 그에 잡아먹히려 한다. 그 순간 그가 새로 사귄 여학생인 카에데가 그를 잡아준다.      


우리는 모두 다 가슴에 구멍을 품고 살아.
누구나 다 힘들어.
하지만 그에 지면 안 돼. 굴복해선 안 돼.

그녀는 무너지려는 순간의 렌은 잡아 일으킨다. 어둠 에지지 말라고. 구멍에 잡아먹혀서는 안 된다고. 영화에 등장하는 주된 인간은 셋이다. 주인공인 렌과 카에데, 그리고 쿠마테츠의 경쟁자 이오젠의 아들이자 괴물 세계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치히리코. 그들은 모두 가슴에 구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구멍을 이겨내려 발버둥 치는 카에데, 그리고 본인의 연약함을 잡아주는 손길들로 어둠 에지지 않는 렌, 마지막으로 구멍을 알지도 못한 채 어둠에 점점 잡아먹히는 이치히리코.


  구멍은 다양하다. 누구나 운명적으로 가지는 외로움, 고독. 삶의 과정 속 갖가지 상처들. 생의 공허함. 우리 자신의 나약함. 그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어둠들이 마음에 뭉게뭉게 피어올라 구멍이 된다. 구멍 난 삶을 데리고 우리는 걸어간다. 살아간다. 그 구멍에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음은 단 하나. 곁에 있는 사람들 덕분이다. 그들의 사랑 덕이다. 

    

  이치히리코는 어둠에 잡아먹혀 결국 자신의 우상이었던 아버지를 누르고 괴물 세계의 수장이 된 쿠마테츠를 칼로 찌르게 된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홀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존재의 확인을 얻지 못했다. 어둠은 폭발하고, 자신의 눈앞에서 쿠마테츠가 칼에 찔려 쓰러지자 렌 역시 가슴속 구멍이 폭발한다. 렌이 어둠에 잡아먹히려는 찰나, 카에데가 그에게 건네 준 자신의 부적인 팔찌와 늘 렌의 곁에 머무르는 어머니의 현신인 치코가 그를 멈춘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결코 혼자가 아님을. 우리의 무겁고 무시무시한 구멍들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는 것은 바로 곁에서 우리를 잡아 일으키는 이들의 사랑 덕임을 알려준다.     


  이치히리코가 자신과 같은 처지였음을 알게 된 렌은 성숙한 선택을 한다. 그는 겸손히 고백한다. 자신이 그처럼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은 이유는 바로 곁에서 자신을 돌봐준 존재들 덕이라고. 그리하여 자신은 이치히리코를 그저 두고 볼 수 없다고. 진심으로 자신을 돌봐 준 이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칼에 찔려 누워 있는 쿠마테츠를 위해 그는 이치히리코를 구하러 떠난다. 그것이 그가 쿠마테츠에게 받은 은혜를 갚는 방법이었고, 그의 성장은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이다. 어리고 왜소한 모습으로 이끌려 들어온 괴물 세계를 그 어느 때보다 힘차고 평온한 눈빛으로 떠나며 그는 가장 큰 어둠을 마주한다.     


 그 어둠은 곧 자신이 가진 어둠이다. 렌은 이치히리코의 어둠을 제압함으로써 자신의 어둠을 이겨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혼자가 아니다. 칼에 찔린 쿠마테츠는 아픈 몸을 이끌고 선언한다. 


그 아이는 자신이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어리고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리석고 한심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바로 그 아이의 가슴을 채워주는 것이에요.


 그는 자신을 희생해 수호신으로 거듭나 쿠마테츠의 가슴속을 채워주는 검이 된다. 인간은 없으나 괴물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가슴속 검. 수장의 자리도, 명예로운 장수도 포기한 쿠마테츠의 사랑이 마지막 순간, 렌이 어둠을 이길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는 결코 이 자리까지 혼자 오지 않았다. 완벽하게는 아닐지라도 무너지려는 순간마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으로 도움으로 비틀대더라도 걸어왔다. 결코 혼자가 아니다. 

 사랑은, 그렇게 구멍 난 삶을 데리고 걸어가는 일. 하지만 혼자는 아닌 일. 안도현 시인의 시 구절처럼 말이다.



영화를 읽어내고 써 내려가다.

Film x Ulim, FilUm

by U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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