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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Apr 07. 2018

저출산은 여성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

임신부터 출산까지 (2017.02.25. 작성)

| 저출산이 여성의 탓일까?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저출산이다. 머지않아 우리나라에 인구절벽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진료를 받으러 산부인과에 가보면 저출산 문제가 실감 나지 않지만,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TFR; Total Fertility Rate,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변화를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2007년부터 2016년까지의 출생통계자료를 분석해 보면, 2008년(465.9천명)부터 감소한 출생아 수는, 2010년(470.2천명)부터 다시 증가하다가 2013년(436.5천명)부터 감소 추세(2015년에는 438.4천명으로 소폭 증가)를 보인다. 2016년 출생아 수는 40만 6,200명으로 전년보다 7.3% 감소하였으며, 출생아 수가 가장 많았던 2007년(493.2천명)보다 17.6% 감소한 것이다.


또한, 합계출산율은 2010년(1.23명)부터 증가하다가 2013년(1.19명)에 감소하였고, 2014년(1.21명)부터 소폭 증가하였으나, 2016년(1.17명)에 다시 감소하였다. 2016년 합계출산율은 전년보다 0.07명 감소하였으며, 합계출산율이 가장 높았던 2012년(1.30명)보다 0.13명 감소한 것이다.

 

▲ 처음 작성 당시, 최근 자료였던 2015년 출생통계(확정)를 참고하여 분석하였으나,2017년 8월, 2016년 출생통계(확정)가 발표되어 추후 보완하였다. ⓒ고상(고양이상자)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요즘 여성들이 이기적이어서 아가를 낳지 않으려 한다며, 사회 구조를 생각하지 않고 저출산의 원인을 여성에게서 찾는 것이다. 낳을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지, 낳기만 하면 끝인가? 임신·출산·육아 모든 것이 여성의 몫으로 인식되는 현 상황에서, 경력단절, 육아휴직과 복직, 어린이집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회 문제가 있는 것인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정부 산하 연구기관은 혈세로 한심한 짓을 하고 있다.  



| 행정자치부, '가임기 여성 분포도' 발표


2016년 12월, 어이없는 행정자치부 발표가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 출산지도'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가임기 여성 분포도'를 발표한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저출산 대책(출산 장려 대책)을 세우기 위해 자료로 가지고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전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사이트를 만들어 발표한 것이 문제다. 저출산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는 정부의 인식을 보여준 것이며, 여성이 아가를 낳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 냥, 여성을 가축처럼 취급한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심지어 전국 지역별 가임기 여성 수를 1명 단위까지 공개하고 순위 매기기까지 했다. 이 지도의 결론은,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가임기 여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출산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혹은, '이렇게 많은 가임기 여성이 있으니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다' 이 정도?


특히, 여기서 가임기 여성으로 분류한 연령에는 미성년자를 포함해서 임신 계획이 없는 여성도 있기 때문에, 이것은 다분히 폭력적이다. 실제로 각종 포털이나 커뮤니티에는 가임기 여성이 많은 곳에 가서 강간하자는 정신 나간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정부 차원에서 성범죄를 권장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 사이트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해놓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무책임하게 살아가겠지. 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너희들은 20대 초반에 출산했니? 너희들 딸이나 20대 초반부터 출산시키세요. ^^"  


▲ 가임기 여성 분포도. 홈페이지는 삭제했지만, 캡처는 남는다. 대한민국 출산지도 화면 갈무리.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비혼이나 늦은 결혼, 출산율 낮춘다'


이런 상황에 또 어이없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주요 저출산 대책의 성과와 향후 발전 방향"이라는 주제로 「제13차 인구포럼」을 개최했다. 이 포럼에서 한 연구원이 "출산율낮은 이유는 결혼하지 않거나 늦게 결혼하기 때문이며, 기혼 부부의 출산율을 높이는 것보다 미혼 남녀의 혼인율을 높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이것까지는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 따라 내놓은 정책이 문제다. 이 연구―연구라 말하기도 싫다―의 결론은, '여자가 공부해서 뭐해. 스펙 쌓느라 시간과 돈 낭비하지 말고 결혼해서 애나 쑥쑥 낳아라.'는 말을 빙빙 돌려서 말한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연구원은 연금 관련 연구를 해온 경제학자라고 한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교육에 투자하는 기간과 배우자를 찾는 기간을 줄이면 결혼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여러 변수를 제외하고 너무나 단순하게 비용 문제로만 분석했다. 교육이나 복지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경제 ·경영 전공자들은 제발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입 좀 다물라.


교육에 투자하는 기간을 줄여주는 정책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휴학, 연수, 자격증 취득이 채용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여, 불필요한 스펙 쌓기로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것을 막는다는 정책이다. 휴학하고 싶어서 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휴학을 해야 했다. 연수는 꿈도 못 꿨지만, 시간을 쪼개서 자격증을 취득했다. 시간을 합리적으로 투자할 줄 아는 인재를 채용하겠다는 것이라 하지만, 결국은 안정적인 부모의 지원으로 생활하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을 수 있는 학생에게 유리한 정책이다.

물론, 과도한 스펙 쌓기를 줄이는 정책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지원하는 일에 필요한 스펙 외에 더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하는 것을 줄여야 하는 것이지, 결혼과 출산을 위해서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과 출산은 필수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사람과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 모두 행복한 정책이 필요하다. 워낙 오지라퍼가 많은 나라이긴 하지만 누구도 개인의 선택을 강요할 수 없다.


미혼 남녀가 연결되는 기간을 줄일 수 있는 정책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을 활용해서 배우자를 찾는 시간을 줄이라는 정책이다. 즉, 가상공간에서 배우자를 찾을 수 있는 정보기술을 개발하고 그것을 대학에 보급해서 결혼시장에 진입하는 시간을 줄이라는 것이다. 이러다가 대학에 교양필수로 신부 수업 교과목도 넣으라고 할 기세다. 아무튼, 그러면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은 하지 않는 딩크(DINK; Double income no kids)족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결혼시장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계층(결혼시장 이탈 계층)을 줄일 수 있는 정책

고소득·고학력 여성이 저소득·저학력 남성을 배우자로 하향 선택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문화적 콘텐츠 개발해야 한다는 정책이다. 단순한 홍보가 아닌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고소득·고학력 여성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상향 선택을 원하기 때문일까? 남자와 똑같이, 아니, 더 많은 교육을 받아도,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불합리하고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일이 많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괜히 독신주의를 선언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다.

연구원의 가장 기막힌 발언은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낮을 때는 남성 위주의 선택 결혼이 가능했다"라는 것이었다. 저 인터뷰를 보고 지금이 2017년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여성은 남성에게 선택받는 존재인가? 그렇게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낮아져야 출산율이 높아지며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아지는 것인가?   



| 경력단절이 두려운 여성들 


통계청에서는 15~54세 기혼 여성 대비 경력단절여성이 20.6%라고 발표하였으나, 비취업여성 대비 경력단절여성의 비율은 2배 이상인 51.7%이며, 가장 높은 비율은 한참 사회생활을 할 나이인 30~39세(73%)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연령별 경력단절여성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도 30~39세이다.


▲ 연령별 경력단절여성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은, 한참 사회생활을 할 나이인 30~39세이다. ⓒ고상(고양이상자)


직장에서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에 대해 상담하면서, 복직하고 나서 내가 하던 업무를 못 한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경력단절의 심정을 겪었다. 그날 집에 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물론, 해당 업무를 비워둘 수 없다는 고용주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기획부터 운영관리까지 혼자 도맡아 몇 년 동안 열심히 키워온 일이고 내외부에서 좋은 평가를 들어왔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과정이 힘들고 어려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웠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한다 해도, 예전처럼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린이집 폭력 사건이 하루가 멀다고 언론에 오르내리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아가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속상한 것은 이런 고민을 엄마들만 한다는 것이다. 아빠들은 아가가 생긴다 해도 경력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직장에서 가장이라며 더 챙겨주면 챙겨줬지 경력단절을 고민하지는 않는다. 예전에 승진 심사에서 갓 결혼한 남자 직원이 가장이 되었으니 이번에는 그 사람을 밀어주기로 했다며 이해를 강요한 상사도 있었으니까.  


▲ 결혼과 임신·출산,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이 91%다. 경력단절의 두려움 없이 결혼과 임신·출산, 육아가 가능한 환경 조성이 중요한 이유다. ⓒ고상(고양이상자)


혹자는 여성의 좋은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한다. 다른 직업에 비해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고, 하던 일로 복직하는 것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성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상관없이 엄마로서의 삶에 도움이 되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모르겠다. 출산하고자 하는 여성이 경력단절을 겪지 않도록 지원하고, 출산하지 않으려는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불안하긴 하지만, 되도록 마음 편히 육아휴직 기간을 보내려 한다. 청소년기부터 누군가에게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남편의 월급과 정부의 지원금으로 생활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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