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미 Feb 27. 2022

진짜 행복의 의미

금, 토, 일을 항상 남자 친구와 보낸다. 우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대화가 가능하고, 아침에 샌드위치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관념들, 어떤 사람의 존경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심취"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것과, 각종 쓸데없는 일에 궁금해하고, 상처에 대한 기억들, 평소에 무관심한 것들을 무관심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비슷하다. 그를 만날 때는 마치 내가 시간 속에 파묻히는 것이 아닌 시간 위를 달리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손을 잡고 무지개 위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되고 밤이 된다. 


내 안에는 작고 못생기고 울툴불퉁한, 너트처럼 생긴 마음의 구멍이 있다고 늘 생각해왔다. 나라는 사람이 너무 작고 초라해서, 아무도 그 너트에 맞는 볼트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보니 나처럼 생긴 볼트가 내 앞에 성큼 찾아왔다. 나는 심지어 그 볼트가 나만의 볼트 인지도 모르고 세상만사 귀찮은 티 다 내고 불평불만을 쏟아냈는데, 이 볼트란 놈은 "어? 너 나랑 잘 맞을 것 같은데?" 라며 저 뒤에서부터 달려와 나를 꽉 안아주었더니 어느새 우리는 우리만의 튼튼한 나무가 되었다. 그를 만난게 내 평생 고마운 일이다. 


남자 친구의 애칭은 펭귄인데, 회사에서 내가 붙인 별명이다.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체격도 좋은 편인데, 걸을 때마다 뒤뚱뒤뚱 걷고 말할 때도 무언가 어벙 벙한 것이 펭귄 같았다. 보기와는 다르게 앙증맞은 걸음걸이와 혀 짧은 말투가 사실 귀엽기도 해서 "귀여운 척좀 하지 마세요. 펭귄이에요?"라고 잔소리하면서 혼자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펭귄, 펭귄 거리다가 사귀게 될 줄이야. (진짜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오늘의 행복


이번 주말도 펭귄이랑 마트에서 장도 보고, 점심과 저녁을 의논하고, 펭귄이 집에서 받아온 재밌는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을 보고, 아침에 달리기도 하고, 각자 공부도 하고, 평소처럼 우리만의 라이프를 즐겼다. 그리고 남자친구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청소하고 글을 쓰면서 곰곰히 돌아보니, 나는 이번 주말에 총 2번의 행복을 느꼈다. 


첫 번 째로, 어제 펭귄이 내 컴퓨터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침대에 앉아 아이패드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그 순간, 스피커로 흘러나온 음악이 좋았고(허각의 노래였다)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배울 점들이 많아서 좋았고, 더불어 그다음 읽을 책을 미리 정해놔서 좋았고(나는 이상한 구석이 있어서 다음 책에 대한 행방이 정해지지 않으면 슬프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재밌는 사람이 내 옆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 "아! 행복해!"를 외쳤다(그 순간에도 남자 친구에게 이 내용을 그대로 전했더니 나를 보며 벅찬 감동의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표정을 매우 좋아한다).  


두 번째 행복은, 남자 친구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고 혼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서 올리브영에 들려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고, 집에 돌아와 청소와 빨래를 한 뒤 책상에 앉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다. 머리가 길어서 매우 거추장스러웠는데 예쁘고 가볍게 잘 잘라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가 과거 속에 머물러있거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재에 놓인, 이 시간들 위에 하염없이 달리고 있어서 행복하다!


그런데 행복이란 거, 내가 자주 만들 수는 없는 걸까? 


섬세한 고마움은 곧 행복


세상에 고마운 일, 감사한 일을 최대한 표현하는 일, 그것이 행복의 전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해줘서 고맙고, 저렇게 해줘서 고맙다고, 섬세하게 표현을 하다 보면은 진짜로 내가 행복해진다. 대우를 해준 그 사람에 대한 가치도 올라가고, 그런 대우를 받은 나 자신에 대한 가치도 올라가는 거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고맙다는 말보다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많았고 오만해진 나에게, 남은 건 부끄러움뿐이었다. 베풂이 뭔지도 몰랐고, 베풀 줄도 몰랐고, 베풀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행복해지기는 커녕 예민하게 뾰족한 안테나만 세우고 다녔다. 지난 시간들을 반추하면 너무 부끄러워서 어디 아무도 모르는 지하 세계에 꽁꽁 숨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뭐가 그렇게 남 주기 아깝고 아쉬워서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고 베풀어주지 못했는지. 설령 내가 아무리 가진 게 많은 자라고 하더라도, 넓은 마음과 관용이 없다면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내가 남에게 베풀 수 있는 행복"이 가장 확실한 행복이다. 


펭귄은 나에게 모든지 섬세하게 표현해준다. 그는 나와 사귀기 전에도, 나에게 어떤 장점이 있고, 어떤 고마움을 느꼈는지 섬세하게 표현하고, 또 고마움을 느끼면 바로 무언가라도 주려고 노력하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내게 보여줬다. 그가 내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내게 큰 배움을 주었다. 


내가 장점이란 게 있는 인간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반성하고, 배우고, 그리고 변하려고 노력하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이런 내가 가끔씩 아주 마음에 든다. 



글 여미 

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제 글... 읽어줘서 고마워요. 헤헷

이전 09화 진짜 사랑의 의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