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데 뭐하세요?"
너는 일요일 오전에 업무 관련해서 물어볼 것이 있다며 갑자기 연락을 했지. 안 그래도 숨 쉬는 것도 귀찮았는데, 왜 이런 거까지 나한테 물어보나, 싶어서 진짜 귀찮았지만 그래도 뭐, 물어볼 사람 중에 내가 가장 편했나 보지, 하면서 묻는 말에만 딱딱하게 대답을 해주곤 대화를 마무리하던 참이었어.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 다음에, 백팩에 각종 책들과 노트북, 다이어리를 쑤셔 넣고는 집 앞 카페로 터벅터벅 걸어가 커피 한 잔을 할 계획이었지. 주말 잘 보내라는 내 말에 대충 이모티콘 하나 날아올 줄 알았는데, 물음표로 끝나는 질문이 와서 의외였어.
책 읽으러 카페에 갈 거라는 나의 말에, 너는 자신도 그런 심취 생활 좋아한다며 나의 말에 공감해주더라. "심취"라는 단어. 이상하게 기분 좋은 단어였어. 내가 평소에 일상적으로 하던 행동들이 되게 몰입감 있게 느껴지더라. 그냥, 주말에 항상 별다른 약속이 없었고, 친구도 별로 없었고, 취미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기도 하고 그나마 좋아하는 일이 커피 마시기, 책 읽기, 찌질한 내 모습 글로 써보기, 단지 그 세 개 밖에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어서였는데, 나를 굉장히 "어떤 것에 집중하고 푹 빠져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더라. 그게 되게 좋았어.
네가 질문을 먼저 던져놓고는, "어색한 기운"을 느꼈는지, 금방 사라지더라. 그러고 나서 종종 너는 나한테 종종 진심이 담긴 이야기들로 연락이 왔지만, 나는 그만큼 진심을 다해서 답장을 해주진 못했어. 내 인생이 많이 슬프고, 괴롭고, 그리고 허무하다고 느껴서 다른 사람의 소리에 집중할 수 없었어. 그 이후에 회사에서 만난 너를 보며 뭔가 미안했는지 너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에 농담을 던지곤 했어. 나이가 몇 살이냐는 말에 마흔이라고 둘러댔고(실제로는 31살이었지만) 꼰대 팀장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이 회사를 조만간 떠날 텐데,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내 책상 위에 있는 모든 책들은 너에게 주겠다는 말로 너를 불안하게 했고 나는 편지를 좋아하는데 왜 항상 나한테 아무도 편지를 안 써주지? 라는 말과 함께 인생이 귀찮고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별 쓰잘데기없고 의미없는 이야기들을 매일 했지. 나도 그때 내가 왜 그런 허무맹랭한 이야기들을 너에게 쏟아냈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냥, 무슨 말이든 떠들고 싶었나 봐.
그런 나에게 너는 언젠가 또 다시 장문의 연락이 왔지.
"여울님은 모든 사람들을 수평적으로 대하는 따뜻한 사람이에요. 전 그런 여울님이 좋아요."
우리가 언제 어떻게 이렇게 서로 스며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나는 항상 인생이 귀찮고, 우울하고, 슬픈 사람이라 긍정적인 이야기를 별로 한 적이 없는데, 너는 나에게 항상 따뜻한 사람이라며 칭찬해주고 나를 더 알고 싶어 했지. 그렇게 한 방향으로만 헤엄치는 오리처럼 따라온 너는, 어느새 나의 연인이 되었어.
"그런데, 내 나이 알아?"
우리는 햇빛 좋은 날에, 호수 공원을 걷다가, 백조 두 마리를 나란히 봤고, 그 백조들이 부부인지 연인인지 남매인지에 대해 토론을 했고, 그러다가 우리는 어느새 손을 잡고 걸었지. 그런데 이상하게 너는 나에게 고백하는 그 순간에도 내 나이를 물어보지 않더라.
이제 당신이 마흔이어도, 상관없다고.
(마흔은 절대 아닌걸 알고 말한 것 같기도 해)
진짜 사랑이라는 건 뭘까?
사랑은 미소 뒤에 숨겨진 슬픔에 신경을 쓰고 알아봐 준다는 것.
가슴에 박힌 상처로 인한 슬픔을 가만히 들어주고, 보듬아주는 것.
우리는 경험하지 않은 모든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울어줄 순 없어. 그렇지만 따뜻하게 안아줄 수는 있잖아. 상처를 편하게 드러낼 수 있고, 그 상처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 "괜찮아, 이리와" 하면서 토닥여주고 손잡아주고, 볼을 비비면서 내가 너의 옆에 현재 있음을 알려주고, 안심시켜주는 사람.
서른 둘의 내가, 요즘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이야.
내 슬픔을 알아봐준 너는, 나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야.
글/그림 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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