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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Jun 06. 2022

진짜 혼술의 의미

모든 게 용서가 된다


나는 혼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위 무기력증이라는 이상한 질병이 있어서 가끔씩 술을 마셔줘야 소화가 잘된다(뇌피셜).

2. 술을 같이 마실 사람이 별로 없다(남자 친구도 술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냥 친구도 별로 없다)

3. 친구가 없다. 

4. 친구가 없다. 

5. 친구가 없다. 

6. 늦은 밤에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어질 때가 있다. 


여하튼 그러하다. 진짜 너무 술 마시고 싶을 땐 남자 친구에게 SOS를 하긴 하지만, 술을 즐기지 않는 그에게 가끔 참 미안해서 자주 제안하지는 않는다. 


술이란, 무엇인가. 나는 용서의 음료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술잔을 기울이면 내가 그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건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힘든 하루를 보낸 뒤 소주 한 잔 기울이면서 누군가를 용서하려고 노력하다보다. 관용의 자세가 되어버린다. 너를 이해하고 싶어, 그리고 나는 이미 너를 이해해,라고 속마음이 내게 대화를 신청한다. 


혼술을 할 때, 나는 음악만 틀고 딱히 아무것도 하지는 않는다. 날이 세워져 있던 까탈스러운 마음들을 저 멀리 보내버리고, 너그러워진 마음을 느끼고,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음미한다. 사실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진 않고, 딱 적당히 알딸딸할 때까지만 먹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곤 한다. 나의 취중진담을 들어줄 이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사실 같이 취하고, 같이 이상한 소리를 주고받고, 남겨진 미련들을 주고받는 일이야말로 맛있는 술을 먹는 방법이다. 그에 비해 혼술은 술을 마시면서 혼자 조용히 마음을 다스리고 삭히는 행위이다. 절대 말을 하지 않고 비눗방울 마냥 생각들을 후후 불어버리고는 하나씩 터뜨려본다. 그리곤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지나간 미련들에 대해, 슬프고 속상한 마음들에 대해, 용서를 한다. 


이젠, 다 이해된다고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왜냐면,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내가 생각해왔었던 대로, 누군가도 똑같이 그럴 거라고 당연히 판단하고 살아오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갈등도 발생하고, 속상한 일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모든 감정을 제어하고, 다스릴 줄 알고, 컨트롤할 수는 없다.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고, 풀기 어려운 일들에 대해서도 그때그때 대처할 수 없다. 올해 초,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까, 하면서 펭귄(남자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놨는데, 펭귄이 한 마디로 정리를 해줬다.


인생은 원래 힘든 거라고. 


결국 며칠 뒤 혼술을 몇 번하고 다시 괜찮아져서(?) 상담은 미뤄졌지만. 

마음이 붕 뜰 때마다, 내가 내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없을 때마다, 나는 혼술을 한다. 


지금보다 더, 

타인을,
그리고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서. 


혼술은,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마법의 음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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