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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Dec 08. 2021

진짜 혼밥의 의미

하루 종일 마음이 울고 있는 날이 있다.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되는 일 하나 없다지만,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에 온종일 무거운 마음을 좀처럼 내려놓을 수가 없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겪은 뒤 내 마음은 회복이 되지 않을 정도로 무너지고 있었고,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 하필 그 타이밍에 엄마가 전화가 왔다. "우리 집은 왜 이모양이니, 다 파국이다 파국이야"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고, 나만 불행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서 울적했다. 


이대로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우주에서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터덕 터벅 집을 향해 걷다가, 평소 오고 가다 자주 보던 일식집이 있길래 이끌려 들어왔다. 


나처럼 일 끝나고 혼자 저녁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고 연어덮밥과 생맥주 한 잔을 시켰다. 나무 테이블에 아기자기한 공간의 작은 식당이었다. 그동안 혼자 밥을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크게 불편함 없이 자연스럽게 묵묵히 해결해왔다. 하지만 그날따라 무너진 내 마음을 위로해줄 사람 한 명 없다는 사실이 서글퍼졌고, 모르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는 시간들마저 외로웠다. 


생각에 빠져있을 때 생맥주가 먼저 나왔고,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켰다. 곧이어 정갈하게 차려진 연어덮밥 한 상이 나왔는데,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인지 야무진 구성과 정성에 감동을 받았다. 싱싱한 연어들 사이로 아보카도가 잘게 썰어져 있었고, 날치알과 양파 조림도 예쁘게 얹어서 주셨다. 작은 종기 그릇에 노오란색 계란찜 또한 괜히 서비스를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장국 안에는 꽃게 다리 한쪽과 두툼한 조갯살도 들어있었다. 흰 밥 위에 연어 한 점, 아보카도, 양파 조림, 날치알을 올려 푸짐하게 한 숟가락을 채웠다. 입으로 들어가자마자 신선함에 바닷속을 헤엄치는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해산물 향이 솔솔 나는 장국을 한 모금 먹었고, 밥알이 목구멍에 다 들어갈 때 즈음, 계란찜도 한 스푼 떠먹어보았다. 환상이었다. 


진짜 혼밥의 의미


그저 음식일 뿐이었다. 동네에서 흔히 사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연어덮밥. 그런데 이 한 상에는 정성이 있었다. 작은 반찬 하나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없었고, 요리하시는 분의 정성이 느껴지는 음식이었다. 내가 정성을 쏟았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위로를 받지 못했는데, 내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대접을 받은 기분이었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제 값을 주고 사 먹은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정성과 진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괜찮다고 속삭여주는 것 같았다. "맛있는 거 먹어, 지금 힘들잖아", 라며. 


사람은 왜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어야 하는가? 내가 선택한 요리로부터, 스스로를 사랑하는 기분을 상기시킬 수 있으니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챙길 줄 아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고, 그리고 나는 다시 행복을 되찾을 권리가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저 끼니를 때우려고 혼자 밥을 먹지 말지어다. 

맛있는 밥으로부터 충분히 무너진 마음과 공허함을 달랠 수 있다. 


위로는, 비단 사람에 의해서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글 여미

yeoulhan@nate.com


음식으로부터 위로받으신 적이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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