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귀찮다는 말을 너무 심하게 달고 산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것은 내 방을 청소하는 것과 나 자신을 씻기는 일, 두 가지다. 이 두 가지만 수동이 아닌 자동으로 해결될 수만 있다면 평생 붕어빵만 먹고 살지어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매일 청소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고, 가만히 앉아있어도 머리가 깨끗하게 말려져 있었으면 좋겠다.
청소는 그냥 청소니까 하기 싫다. 온갖 먼지들의 시체들을 마주해야 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한번 하다 보면 끝도 없고, 구석구석 닦아봤자 다음 날이면 다시 더러워지니까 시작조차 하기 싫다. 어차피 더러워지니 그냥 처음부터 안 하면 안 되나?(잠깐, 이건 마치 인간은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살아? 같은 이치인가...) 하지만 언젠가는 결국 완패한다. 청소를 해야 비로소 "맞아, 나 인간이었지" 라며 내가 붕어빵이 아닌 인간임을 자각하게 되니까.
머리가 너무 길어서 씻는 것도 귀찮다. 두피가 약한 탓에 두피샴푸와 먼지떨이용 샴푸 2개를 써야 하고, 머릿결은 늘 건조한 탓에 트리트먼트 헤어팩, 에센스 등 이 기다란 털 뭉치들 표면에 발라야 될 게 너무 많다. 게다가 샤워를 하고 축축한 머리를 보유한 채 한 참을 버텨야 하는 일도 영 찝찝하다. 드라이기를 들고 말려주어야 하는 것도 귀찮고 온몸 구석구석 로션을 발라주어야 하는 것도 귀찮다. 그래서 머리는 축축이 젖은 채 고드름이 된 채로 출근한 적도 많고, 휴일이 연달아 있는 연휴에는 나뭇잎 옷으로 중요부위만 가린 원시인 마냥 며칠 씻지 않은 적도 많았다.
이외에도 내가 귀찮아하는 것은 수두룩 하다. 회사에서도 친한 후배에게 사는 게 귀찮다, 숨 쉬는 게 귀찮다, 걷는 것도 귀찮다, 질문받는 것도 귀찮으니 내게 질문하지 마라, 라며 스스로 "프로 귀찮음러"를 인증하고 있었다. 그러하다. 나는 다 귀찮다.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질문을 하는 것도, 질문을 받는 것도 , 궁금해하는 것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도, 귀찮은 사람이다.
진짜 "귀찮음"의 의미
어느 날 인생이 귀찮다며 아우성치는 내게 다가와 "당신은 기만자입니다. 어떻게 귀찮다면서 매주 등산을 가고, 귀찮다면서 책을 그렇게 많이 읽고, 귀찮다면서 사람들 먹을 쿠키도 챙겨주고, 귀찮다면서 제게 주말 잘 보냈냐고 물어볼 수 있습니까? 당신은 역시 기만자입니다." 라며 회사 후배가 내게 "당신은 귀찮은 사람이 아닌 부지런한 사람입니다"라며 반대 입장을 강하게 내보였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세상 귀찮은 사람인데, 그게 아니라니. 그의 말에 갑자기 번뜩 눈이 뜨였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난 현재 그 후배와 사랑에 빠졌다. 사는 게 귀찮다고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마는(아직도 의문이다).... 그는 아무리 내가 귀찮다며 불평불만을 해도, 내가 가진 긍정적인 면들을 구석구석 찾아 칭찬해주곤 했다. 그를 만난 이후로 "아, 나 생각보다 모든 귀찮아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연애를 하면서 내가 귀찮아하지 않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춥거나 더워도 아이스커피를 사러 나가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둘 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것들이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 그날 하루가 행복해서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영양가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단연컨대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 귀찮지 않다. 1시간 거리이든, 2시간 거리이든 귀찮음을 물리치고 만나러 갈 수 있을 지어다.
사랑
학창 시절,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늘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소풍을 떠나는 자식들의 도시락을 싸고, 아버지의 셔츠를 다리미로 다리고, 주말에 구워 먹을 삼겹살을 사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 주고, 집안일을 다 하고 나서도 가족들이 먹을 과일을 깎았다. 이 중에 단 한 번도 하기 싫거나 귀찮아한 적이 없었을까? 본인의 몫도 아닌, 다른 사람의 몫을 위해 준비를 하는 일. 얼마나 귀찮은 일인가? 그런데 어떻게 어머니는 단 한순간도 불평도 없이 그 많은 일들을 혼자 해내셨을까?
뻔한 말이지만 사랑하니까,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번거롭기는 하더라도 사랑하는 딸들과 가족들을 위해 내가 조금 더 움직여서 해줄 수 있는 일이니까. 귀찮다는 것, 성가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사랑이라는 영역에 아직 접근을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관심을 가져보려고 하고, 사랑을 담아보려고 하면 이 세상에 귀찮은 일이란 없다. 부족하지 않게,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지어다.
집 앞 5분 거리 분리수거장에 가는 길은 귀찮지만, 남자 친구와의 대화는 항상 즐겁고 영양가 있어서 아무리 먼 곳이라도 그와 함께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싶어 진다. 비염 때문에 코가 밍밍해져도 뜨끈한 라떼 한 잔 먹을 수만 있다면 목도리를 칭칭 감고서라도 카페로 향한다. 맛있는 커피를 먹는 상상만 해도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귀찮은 일이 수두룩하다면 사랑이라는 영역에 어느 정도는 도전해보자. 일단 행동을 하고 나서 나중에 사랑에 빠지는 일도 있을 수 있는 거니까. 지금 조금 귀찮아도, 좋은 결과를 생각해서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큰 행복이 찾아올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럼 언젠간 나도 청소하는 일도 좋아하고, 머리 감는 일도 점점 안 귀찮지 않을까?(음 아닌가?)
글/그림 여미
저처럼 귀찮아하는 일이 있나요?
yeoulha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