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일을 하는가?
내가 중학생 때였나, 그때 나는 직업이 꼭 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게 현실 자각을 잘하는 인간은(?) 아니긴 하지만, 여하튼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먹고사는 정도는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어딜 가나 내 꿈은 "시인", "영화감독", "애니메이션 감독", "작가" 등 아주 돈이 안 되는 직업들만 번갈아가면서 희망했다. 그래도 조금은 알고는 있었다. 예술 분야에서 유명세를 타고 각광받기란 쉽지 않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까지는 고정 수입을 기대하기 힘든다는 현실을.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 최고가 될 줄 알았기 때문에 별 걱정이 없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다.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고 살지 않지만(겨우 연명하며 사는 중이다), 그땐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내 재능은 아무도 못 따로 오고, 뭐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은 꼬마처럼 그랬다. 이런 이야기를 떠들고 다니면 어머니는 내게 항상 말했다. 예술은 취미로 하라고, 직업이 될 수 없다고.
어머니는 내가 공무원이나, 간호사가 되길 바라셨다. 아마도 어머니가 바라보는 직업이란, 안정적이고, 고정수입이 확실하고, 어딜 가서든 당당하게 내 직업을 말할 수 있으며, 부모님에게도 꽤나 괜찮은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뭐 그런 것이었을 것 같다. 이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내가 책을 내거나, 큰 영화제에도 초청이 되어도, 어머니에게 예술가라는 것은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그건 참 축하한디야, 그건 그런데 어서 빨리 회사를 들어가라"라곤 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나의 예술적 재능이란, 아마 흔치 않은 일상에서 잠깐의 특별한 이벤트였을 지도 모르겠다.
나의 기쁨은 엄마?
내가 착각하고 살았던 것이 하나 있다.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취업을 하고 싶어서 취업을 한 적이 없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나에게 "직업"이란, 어머니가 기뻐하기 때문에 가지려고 했지, 정작 내가 정말 원해서 한 게 아니었다. 내가 취업을 하고, 돈을 벌면, 어머니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셨다. 물론 나 또한 백수로 평생 살지는 않았겠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어머니가 항상 늘 걸렸다. 빨리 취업하지 않으면, 그녀를 실망시킬 것만 같았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다. 백수가 된 나를 엄마가 미워할까 봐, 그런 느낌들이 싫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냥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만 골라서 취업을 빨리 했다. 대학에서 애니메이션과 영화 전공 둘 다 해서, 그래픽 디자인이나 영상 편집 툴을 잘 다뤘다. 흥미가 아예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니면서도 꽤 할 만은 했다. 어느덧 6년 차가 돼가고 있을 때, 나는 이 직업에 대한 현타가 크게 왔다. 여러 이유들이 있었지만, 하루하루 별로 열심히 살고 싶은 생각도 안 들었고, 더 배우고 싶은 욕구도 없어졌고, 앞으로의 삶이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길 위에서 어정쩡하게 멈춰져 있는 것만 같았다. 이번에 퇴사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흥미 있을 수 있는, 다른 분야들에 대한 탐구를 그동안 너무 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다른 곳에 눈을 돌려도,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진짜 직업이란 무엇일까?
생계유지가 되지 않은 일은 직업이 아닌 걸까?
진짜 직업의 의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사람답기 살기 위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그 직업이 나를 사람답게 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있어도 언제든 그 직업을 떠나야 맞는 게 아닐까.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나를 계속 움직이게 만들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는 힘이고, 나에게 언제든지 좋은 것들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결국, 그 직업이 당신을 열심히 살아가게 해야 해야 진짜 직업이다.
나는 더 이상 이 일을 열심히 잘할 자신이 없었다. 나의 퇴사 소식을 듣고, 엄마의 반응은 역시나 좋지는 않았다. 여기서 약간의 상처도 받긴 했다. 내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없고 현재 나의 상태에 대한 변화에만 관심이 있는 엄마가 (나 또한) 미웠다. 그래도 이젠 두렵지 않다. 내게 남은 인생이 너무나 길고, 이젠 내가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지고 싶었다. 돈을 못 벌어서 당장 굶어죽을 지경이 오면 다시, 일을 찾아 하면 되는것 아닌가.
그래도 엄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은 아니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니 너무 큰 해방감과 동시에 행복해졌다. 물론, 회사를 다니면서 얻은 것들은 정말 많다. 여러 팀원들과 협업하면서 나름 비즈니스 스킬도 얻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연애도 했고, 꽤나 저축도 잘해왔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더 사람답게, 살고 싶어졌다.
조금 미움을 받으면 뭐 어때, 다른 사람의 기쁨이 절대 나의 기쁨이 될 순 없어.
내 기쁨이, 바로 내 기쁨이라고!
글 여미
yeoulha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