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아버지가 같은 학교 선생님이라는 것은 든든한 배경이었다. 물론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힘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고 또 나도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또래들의 인간관계에 암묵적으로 작용하는 배경이었음이 분명하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졸업 후 처음 만난 두 친구가 이런 말을 나눴다. “너는 나한테 혼 좀 나야 해.” “왜?” “너, 초등학교 때 나 얼마나 괴롭혔는지 지금까지도 이가 갈릴 정도다.” 주변 친구들이 다 한 마디씩 한다. “나도” “나도” 그 친구는 악명이 높았나 보다. 내가 6학년 때 전학 와서 잘 몰랐던 탓도 있었겠지만, 아버지께서 선생님이셨기에 나를 함부로 괴롭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만 그 친구가 악동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은 어림도 없는 사실이지만, 교사의 매력(?) 중 하나가 교실에 들어가면 ‘왕’이라는 것이다. 어디에 가서 젊은 날부터 그런 권력을 맛볼 수 있을 것인가. 내겐 힘이 없어서 지금까지 누구를 때려본다든가 위협을 했다든가 해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도 내가 가진 왕 같은 권력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은연중 학생들 위에서 군림하고 압박감을 주었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작은 힘이라 할지라도 또는 보다 큰 힘을 갖게 된다면 상대를 위해서, 약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상대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갈 길을 바로잡아주기 위해서만 쓸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다. 그리고 힘이 있으면서도 힘을 써야 할 자리에서 쓰지 않고 허송하는 일 또한 없도록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