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해외 출장을 갔다 와서 출장비 목록을 제출했는데 식사비 얼마, 교통비 얼마, 숙박비 얼마 식으로 서술하고 맨 밑에다 ‘인간은 목석이 아님’ 얼마라고 썼다. 상사가 결재했지만, 도무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냥 짐작만 할 뿐. ‘사람은 밥만 먹고는 못살아’를 외쳤던 어떤 무능한 남자의 아내 이야기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버트런드 러셀은 나를 지탱하는 세 가지 열정은 여성에 대한 사랑의 갈구, 진리 추구, 인간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석학이기에 진리에 대한 추구, 그리고 인간애 등은 이해가 되지만, 그의 삶에서 보여주는 여성에 대한 사랑의 갈구는 러셀이 추군 댔던 하녀가 “훌륭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하군요.”라는 말에서 짐작할 뿐이다. 역시 사람은 목석이 아니고 밥만으로는 못 사는가 보다.
임마누엘 칸트는 삶에서 놀라움과 경건함을 주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항상 반짝이는 별을 보여주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마음속의 도덕법칙이라고 했다. 누가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어도, 누가 잘하면 상을 준다거나 잘못하면 벌을 준다고 하지 않았어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확한 시간에 산책한 것은 그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이 절대적 도덕법칙이었음을 잘 설명한다. 칸트를 칸트답게 만들어주는 적확한 대목이다.
대하소설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는 이제껏 나는 세 가지 대상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으로 살아왔는데, 인간에 대한 애정, 나를 태어나게 한 모국에 대한 애정, 민족 역사에 천착하려 했던 책임감이라고 했다.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줄기가 바로 그의 세 가지 대상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었던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내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때그때 달라요’이다. 윤리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는 내게 세 가지를 배워라. 첫째 인간에 대한 존중, 둘째 우리 민족에 대한 사랑, 셋째 인생관 정립.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에게는 첫째 책임감, 둘째 청결함, 셋째 시간의 소중함.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또 다르게 말한다. 그런데 이것들도 그때그때 달라진다. 어느 때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 또는 가진 능력을 계발하고 키워나가는 것 등. 나도 석학들의 흉내를 내 평생을 일이관지 하는 몇 가지 삶의 원리를 정립했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