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색과 당신만의 색
젊은 화가는 길거리를 지나다 가게 앞, 얇은 비닐에 쌓인 새하얀 캔버스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가슴이 콩닥콩닥, 울렁거리는 밤을 뜬 눈으로 지내고 나서, 해가 뜨자마자 저금통을 들고 단숨에 가게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서 저금통을 기쁜 마음으로 주인에게 내놓고 한쪽에는 캔버스를, 한 쪽에는 형형색색의 물감이 든 통을 들고 가게에서 나왔다.
“아저씨, 제가 그림을 다 그리면 꼭 놀러 오셔서 봐주세요!”
창문 너머 은은한 아침햇빛에 반사된 캔버스는 순결한 빛을 담고 있음으로, 화가는 붓에 쉽게 물감을 적실 수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오후가 되자 밝았던 하늘은 구름이 조금씩 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어두워졌다.
“정 네 색을 입힐 수 없다면, 장마가 끝난 후 아름답게 떠오르던 무지개를 내게 그려줘.”
캔버스는 망설이고 있는 화가에게 말했다.
“네가 본 무지개와 내가 본 무지개가 같은 지 모르겠어”
그는 팔레트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텅 빈 캔버스에 자신만의 멋진 그림을 그려 넣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새하얀 그것, 그대로 남겨두고 싶기도 했다.
“부탁이야, 봄과 여름 사이 피는 장미의 빨강을 그려줘.”
캔버스는 간절하게 이야기했다. 화가는 어쩔 수 없이 장미의 아름다움을 그렸다.
자신의 몸에 아름다운 장미가 핀 걸 본 캔버스는 흡족해했다.
“아… 너무 좋아. 하지만 뭔가 부족해.”
캔버스는 이내 창문 밖 하늘을 보며 다시 부탁했다.
“저 하늘, 저 하늘의 파랑도 내게 줘.”
“하지만 저건 그냥 하늘이 아니야. 아름다운 파랑과는 거리가 멀어.”
화가는 걱정스레 이야기했지만 캔버스는 그런 화가를 간절히 바라봤다.
“알았어, 네 부탁이니깐…”
화가는 장미 곁에, 아니 그 위에 하늘을 담아냈다. 캔버스는 기쁨과 슬픔의 보라가 되었다.
캔버스는 장미와 하늘에 그치지 않고 며칠에 걸쳐 창문 아래 피어나는 초록을 탐했고, 간간히 방으로 내리쬐는 햇살의 노랑을 요구했다. 화가는 첫날 거리에서 반했던 그 캔버스를 사랑했기에 그가 원하는 대로 초록과 노랑도 캔버스에 담아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캔버스의 욕심은 더해져만 갔다. 나무의 올곧은 뿌리에서 갈색을, 물 위에 드리운 그림자의 남색을 원했고 화가는 어쩔 수 없이 색을 더해갔다.
며칠 후, 화방의 아저씨는 새로운 캔버스와 물감을 들고 젊은 화가의 집을 찾았다. 가게를 나설 때 행복한 얼굴을 했던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문을 연 화가는 초췌하지만 환하게 웃는 얼굴로 아저씨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아저씨! 무슨 일이세요? 저, 저, 아저씨가 주신 새하얀 캔버스 덕분에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요.”
화가는 아저씨를 방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제가요, 장미도 그리고 하늘도 그리고… 또 제가 기르는 화초도 그리고 아름다운 햇빛도 그렸어요. 여기에 곧은 나무를 그렸고요, 그 나무 아래 그늘까지 섬세하게 그려 넣었답니다.”
아저씨는 화가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듯 화가의 집으로 들어갔다. 매캐하고 탁한 공기가 화가의 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화가는 아저씨의 손에 든 것이 무엇인지 보지도 못한 채 그를 방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곤 자랑스러운 몸짓으로 햇살 아래 캔버스를 보여줬다.
하지만 멋진 그림을 기대했던 아저씨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화가의 방에는 캔버스가 아닌, 기쁨과 슬픔과 삶과 죽음과 신념과 절망, 아니 그것들이 섞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검정 덩어리만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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