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도시 우화 01화

어느 날, 길고양이가 말했다.

바보야, 너는 그냥 길들여진거야.

by 차감성

[도시 우화]

어느 날, 길고양이가 말했다.



그는 어쩌다 이 지독하게 깔끔하고 답답한 집에서 태어났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저 그의 부모가 그러했고, 부모의 부모가 그러했으며, 그러므로 자신 역시 이 집에서 태어났음을 당연히 여길뿐이었다.

목줄을 차고 태어나는 개는 없다. 그 역시 그러했다. 어릴 적, 그의 목은 비어 있었으며 걸음은 자유로웠다. 하지만 식사 때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미의 품으로 돌아갔으며 밤새 평화를 누렸다.


날마다 정교해지는 인간의 손길은 그를 길들였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 밖으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주인은 물과 사료를 주었고, 마당에서 묵은 속을 배설하고 새로운 땅과 꽃의 향을 맡으러 마당을 돌아다니는 일상을 반복했다. 이따금 나가는 산책은 그에게 도전이자 즐거움이었으며, 산책을 나갈 때마다 매는 목줄은 외부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손길이자 동시에 억압의 도구이기도 했다.


산책할 때만 매이던 목줄은 그의 몸집과 정신이 성장하자 항상 그와 함께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는 그 목줄이 무겁고 답답했으나 그의 부모 역시 항상 그 목줄을 차고 있었기에, 그는 이 목줄을 성인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그는 부모와 함께 목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견스러웠다. 답답한 건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되었고 말뚝으로부터 목줄의 매듭까지의 반경이 그가 생각하는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그는 포근한 보금자리인 마당을 좋아했고 이따금 외부인에 의해 영역을 침범받을 때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그는 지혜롭게 외부인을 경계하고 호의를 베풀며 지켜냈다. 어느 생명과 마찬가지로 그의 부모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숨을 거두었고, 부모를 잃은 슬픔은 그의 마음을 한동안 텅 비게 만들었으나 결국 시간이 이 공허함을 메웠다.



어느 날과 다름없는 평화로운 오후, 그의 마당에 수척한 길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그는 맹렬히 짖어댔고 주인을 호출하였으나 고양이를 본 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고양이는 그가 짖을 때마다 걸음을 옮겨 거리를 멀리하였으나 이내 목줄의 길이 이상으로 접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마당 한쪽 담장 밑에 자리 잡았다. 거리의 먼지를 잔뜩 묻힌 고양이의 털은 어두웠긴 했으나 햇빛에 비출 때마다 부드럽게 갈색빛을 반사했다. 그는 고양이를 노려보며 경계하였으나 그 역시 고양이가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고양이는 그의 마당을 방문했다. 아니 찾아왔다. 눈에 띄게 고양이는 수척해졌으며 어느 날은 상처투성이인 채로 들어오기도 했다. 그는 그런 고양이가 안타깝고 어리석어 보였다. 그의 주인은 착한 마음씨로 고양이를 위해 사료와 물을 담아두었으나 고양이는 그런 마당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울타리 넘어 어딘가로 돌아갔다. 그 역시 주인의 착한 마음씨를 닮아 그런 고양이를 위해 마당의 일부를 양보할 수도 있었으나 날마다 어딘가로 떠나는 고양이의 행동으로 보았을 때,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날도 고양이는 울타리를 넘어 마당으로 들어왔다. 주인이 마련한 사료와 물을 입에 대고는 햇볕이 드는 담장 아래서 휴식을 취했다. 그는 그런 고양이를 보았지만, 지루함에 이내 관심을 거두었다. 그때 고양이가 말했다.


"안타까운 녀석."


그는 깜짝 놀라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한 번도 고양이가 말을 건네지 않았기에 그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그렇게 백날을 마당에만 있으니 뭘 알겠어?"

고양이는 그를 안타깝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는 당황스러웠으나 이내 어이가 없었다. 울타리를 넘는 것조차 힘겨워보이는 그 몸으로 평화를 누리고 있는 나를 안타깝다고 이야기하다니.


"내가 할 소리구나. 주인도 없이 마당이 아닌 울타리 너머를 떠돌다니. 겁이 없는 건지..."

"매일 주는 사료에 길들여져서 정작 네가 하는 것이라고는 마당 지킴이 밖에 더 있어?"

갈라지는 목소리로 고양이가 말했다.


그는 존중받아야 할 자신의 존재를 이유 없이 모욕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만 세상을 다 본 듯 이야기하네. 고작 조금 더 거리를 떠돈 경험으로 함부로 내가 선택한 삶을 판단하지 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으르렁거렸다.


"판단이라니, 하하하. 그게 정말 네가 선택한 삶이니? 바보야, 너는 그냥 길들여진 거야."

고양이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며 이야기했다.

"뭐... 네가 좋다면 상관없지만 너의 이 마당과 목줄, 그리고 사료만 포기한다면 더 넓은 세상을 얻을 텐데 말이야. 그리고 내가 봤던 그 멋진 광경도 볼 수 있을 테고."


고양이는 힘겹게 담장 위로 올라섰다. 분명 다음에는 담장을 넘을 수 없으리라, 그는 생각했다.

"네가 본 광경이 어떤 광경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곳에서도 충분히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


"하긴 멍청한 네 마당에도 내가 보지 못한 행복이 있겠지. 하지만 분명한 건 네가 본 광경과 내가 본 광경이 같을지라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거야."

고양이는 알 수 없는 말만 남기고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그는 갑자기 평화로운 마당을 찾아와 자신의 삶을 모욕한 고양이가 증오스러워졌다. 평화라고는 단 한순간도 누리지 못했을 길거리의 삶이 얼마나 불행한 삶인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산책 때마다 자신을 위협해오는 도시의 거리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그는 집 안으로 돌아가 고양이가 떠난 자리를 보며 잠에 들었다.


다음 날, 그는 주인과 함께 산책에 나섰다. 밤새 머리를 맴돈 고양이의 말에 잠을 설쳤으나 산책은 그가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즐거움이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산책용 목줄을 채우는 주인을 기다렸다. 참... 인정하기는 싫지만 고양이의 말대로 그를 깨우는 몇 안 되는 행복 중 하나가 산책이었다. 얼마나 다양한 행복을 누렸길래 평화로운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았을까.


잠시 고양이의 삶이 궁금했으나, 산책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궁금증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제 담장을 넘어간 고양이는 차에 치인 것인지, 인간 무리에 괴롭힘을 당한 것인지 상처투성이인 채로 거리 한복판에 쓰러져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고양이를 그렇게 만든 무언가가 주변에서 그와 주인을 위협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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