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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충영 Apr 11. 2021

⑦백세문에서 백세길을 따라 걷다보면

[주말산책러의 동네 만보길]화랑대역|불암산 7km



주말에 시간 여유가 있어 평소보다 좀 먼 거리를 걸어볼 곳을 찾았다. 그래서 골라본 곳이 불암산이다. 화랑대역 3번출구에서 나와 원자력병원까지 걸어야 산 입구에 도착할 수 있어 다른 역에 비해서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역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불암산 산책은 '공릉산백세문'에서 시작해 상계동에 있는 상계역이나 당고개역까지 7km를 걷는 꽤 긴 코스다.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면 상계동의 불암산공원에서 시작하면 적당해 보였다.


불암산은 서울의 대표적인 산인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만큼 큰 산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좋아하는 명산에서 이 3개의 산 다음으로 좋아하는 산으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출발점인 백세문에서 시작해 '태릉백세길'을 따라 불암산으로 들어섰다. 산길에 들어오니 길이 푹신하고 습기가 많다. 키도 크고 굵은 소나무들에서 힘찬 생명력이 느껴진다. 벌써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백세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나보다. 나도 이 길을 걸으면 100세까지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불암산은 크게 2가지 방향으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입구인 백세길을 따라가다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둘레길을 따로 편안하게 갈 것인지, 불암산 정상으로 간 후에 내려올 것인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 둘레길을 걷는다면 이름 그대로 산의 둘레를 걷기 때문에 힘을 들이지 않고 쉽게 산책을 할 수 있고, 정상으로 향한다면 오늘은 꽤 넉넉한 운동을 할 수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같은 불암산공원에서 마칠 수 있다. 공원에 도착하면 동네로 내려가 바로 상계역으로 갈 수도 있고, 조금 더 걷고 싶다면 당고개역까지 1.5km 정도를 더 가는 것도 좋다.


불암산을 걷다 보면 정말 오래된 숲이라는 느낌과 함께 우리나라 산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먼저 굵고 키 큰 나무를 보면서 느껴진다. 크고 깊은 산이 아니면 우리나라 산에서 이렇게 큰 나무들을 많이 보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한국적인 느낌이 나려면 소나무가 있어야 하는데 크고 굵은 소나무라니. 소나무는 쑥쑥 자라는 나무도 아니지 않은가.


여러 차례 불암산을 가보면서 가장 운치가 있었던 것은 역시 비가 온 후에 갔을 때였다. 전날 오던 비가 그치고 주말에 불암산에서 만난 소나무들은 어제 온 비로 몸통이 젖어 있었다. 거친 소나무 껍질의 무늬 부분은 비에 젖어 검은색이고, 나머지 부분은 회색빛이었다. 불암산의 산길은 온통 흑백의 세계로 내가 수묵화 속을 걷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비오는 날에 길이 미끄럽지 않은 곳을 눈여겨 봐두었다가 우산을 쓰고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빗속에서는 길이 미끄럽기 때문에 큰 산까지 가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 온 다음날이 주말이라 산길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다니 운수 좋은 날이다.

사실 이런 소소한 풍경들은 대단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볼일 없거나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번거로운 사회생활 속에서 나를 잃고 살아가게 되는데 산책하는 시간 동안에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 시간 만큼은 각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발견하고 즐거움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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