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 오지랖이 한 다리 건너라면
어제는 아이 둘을 태우고 소아과 앞에 주차를 하다가 스타렉스를 긁어버렸다. 일단 침착하자는 다짐이 한발 늦었는지 얼이 빠져서 핸들을 아무렇게나 돌리고 후진기어를 넣었다 드라이브를 넣었다, 뒤에 있는 나무까지 박을 기세였다.
어느새 할배들이 몰려와 손을 흔들면서 어허이! 오라이! 외치면서 주차를 봐주었고, 내가 내리자 내 차와 저쪽차를 구경하면서 각자의 참견, 조언과 위로, 모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앞에 낡은 정자에는 오래된 사무실 의자나 소파같은 걸 옹기종기 모아놓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날씨 좋은 한낮에 나와 햇볕도 쬐고 바둑도 두곤 하는데, 끼이익 차 긁히는 소리에 살짝은 신이 난듯 나와본 모양이었다.
가장 적극적인 할배 두분이 끝까지 남아서, 애가 둘이나 되냐며 애들 이쁘단 소리도 하고, 이러면서 배우는 거다, 바깥 아저씨한테 좀 혼나것네, 근디 휠만 긁혀서 다행이여, 보험처리하면 그만이여, 하고 자꾸 말을 붙여 주었다. 차주가 무섭게 나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고, 경미한 사고를 내고 길 한복판에 애들이랑만 서 있는 것 보다는 내심 그 할배들이 있어서 든든했다.
스타렉스 주인 아저씨는 보험사와 통화를 하고는, 어서 애들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남편은 거기가 좀 주차가 위험하긴 하다고 고생했다고 해주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면서 "애기 춥겠다" 하는 소리에 "웬 오지랖이야."하고 날을 세우던 때가 있었는데, 어제는 할배들의 오지랖 덕분에 추가로 나무를 박지도 않았고, 놀란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다. 정과 오지랖이 한다리 건너라면 그런대로 둘다 수용하면서 살고 싶어지는 걸 보니, 새침한 젊은 새댁에서 넉넉한 애엄마가 되는 나이듦이 싫지만은 않다.
오늘 비가 와 아이 둘을 챙겨 가면서 나는 우산을 포기했는데 다른 엄마가 내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주었다. 어제 오늘은 다른 이가 잠깐 건네주는 우산 아래 몇 걸음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