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엔 그랬지
어릴 때부터 시계를 찬 여성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이지적이고 우아하고, 자기 일을 잘할 것 같은 느낌. 꽤 먼 시골에서 자라다가 스무 살에 대학을 가서 본격적으로 도시 문화를 접했다. 시계를 차고 싶어서 시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OST매장에 들어갔다.
내 것을 고르다가 메탈 시계를 보고는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어졌다. 엄마는 액세서리를 거의 하지 않으셨는데, 엄마가 시계를 차면 더 멋질 것 같았고, 엄마도 좋아할 거라 막연하게 들떴다. 매장 직원은 물정 모르는 스무 살 학생에게 거기서는 꽤 비싼 축에 속하는 시계를 팔기 위해, 이런 게 엄마들한테 잘 어울린다, 이거라면 괜찮다,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엄마는 내가 건넨 시계를 한번 차 보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금방 팔에서 빼냈고, 얼마를 줬느냐며, 시계가 불편하고 잘 안 어울리니 환불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엄마에게 다시 시계를 돌려받자니 민망하고 부끄러웠고, 매장에 들어가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되어 교환인지 환불인지를 받아야 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이 쉰이 넘어서 평생 안 차던 손목시계를 찬다는 것도, 그게 OST시계라니 곤란했을 엄마 마음도 이해가 간다.
4월, 곧 나의 생일을 맞아 남편이 나에게 갖고 싶은 게 있느냐고 물어와 시계가 있으면 한다고 했다. 비싼 건 됐고, 카시오에서 예쁘고 심플한 거 많이 나오더라, 까르띠에랑 완전 똑같아서 '카르띠에'라 불리는 시계가 있는데 웃기지, 했다. '카'르띠에는 괜찮아도 OST시계는 지금 나도 딱히 원하지 않는 걸 보면 그때 시계를 거절한 엄마가 그렇게 잘못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엄마는 안 예쁜 것을 예쁘다고 하는 둥의 빈말이나, 생각해 주어서 고맙다는 따스한 말을 할 줄 모르는 투박한 엄마였다는 것을 떠올릴 뿐이다. 엄마의 그런 점이 좋았고, 그런 점이 때로 기억에 남아있다.
세상엔 수많은 브랜드와 세련된 취향, 분위기 좋은 카페와 갖가지 식당, 파스타와 초밥이 존재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는 아쉬움도, 이제는 다 지나간 시절의 에피소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