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인 사촌동생이 내년 3월로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고 한다. 추석에 친척들이 모인 자리는 당연히 그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다. 모두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이야기다 보니 그 이야기가 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작년 말에 결혼한 미국에 사는 사촌동생 결혼식 이후 1년이 조금 더 지난 후에 열릴 결혼식.
그런데 그 대화 중간에 내 안에 있는 꼰대스러움을 스멀스멀 올라오게 하는 말이 있었다. 본인은 40살 전에는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고, 회사를 그만두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것이라는 얘기.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내 안에서 올라오는 꼰대스러움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그걸 억누르는데 집중하느라 기억도 나지 않는 말 한마디를 하고 더 이상 그에 대한 말을 하진 않았다.
내 사촌동생을 판단하거나 비판할 생각은 없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결혼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니까. 아니, 그렇게까지 생각은 하지 않더라도 나 자신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고 윤택하게 하고, '내'가 안정되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선택하니까. 그리고 의외로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은 주위에서 결혼, 결혼, 결혼을 외치다 보니 그 분위기에 등 떠밀리듯이 결혼을 하기도 하니까. 무엇보다 나도 서른 살에는 그런 생각으로 결혼을 하고 싶어 했으니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건 잘못된 생각이란 것이다. 서른 살에 나는 틀렸고, 서른 살인 내 사촌동생도 틀렸으며, 자신만을 위해 결혼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틀렸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이후 부부싸움은 그런 생각이 부딪히면서 발생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혼을 하는 것은, 두 사람 중 최소한 한 사람은 그 정도 수준의 사고의 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그냥 참으면서 사는 거야'라고 했지만, 그건 사회에서 상당수 사람들이 남존여비를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남녀가 평등한 것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는 그걸 그냥 참고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게 참고 살아질 수도 없다. 그게 되기 위해선 두 사람이 모두 의식과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건 노력으로도, 시간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결혼을 할 때는 '내 것을 어느 정도는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정도의 마음가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건 상대를 위해 포기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위해 포기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나도 미혼이지만, 내가 아는 것은 결혼을 함으로써 상대를 위해, 그리고 아이를 위해 포기하게 되는 것은 내가 지금 수준에서 상상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크고 많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가정을 꾸릴 상대를 선택할 때는 상대와 결혼하게 됨으로써 내가 얻게 될게 무엇인지가 아닌, 내가 이 사람과 함께 함으로써 어디까지 포기하고 내려놓을 수 있을지를 감정적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결혼할 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은 '결혼하면 내가 000을 얻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다. 물론 그것을 얻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결혼은 내 삶에서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부분과 자유를 빼앗아 갈 것이다. 결혼을 해서 내가 기대하는 것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건 내가 잃은 다른 것들로 인해서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너무 부정적인 사례들을 많이 봐서일까? 솔직히 말해서 사촌 형의 입장에서 걱정이 된다. 상대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고, 본인은 40세가 되면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고 하는, 학부를 졸업하고 대기업만 다녀서 세상이 얼마나 거친 곳인지를 모르는 모습으로 결혼을 하는 그의 가정이. 여자 친구와 이런저런 면에 대해서 많이 싸우고 갈등이 있었지만 이젠 잘 정리가 되었다는 부분도, 내 지인들의 경우를 보면 그건 정리가 된 게 아니라 봉합된 것에 불과하고 그 문제는 결혼한 이후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더라.
사실 내가 가장 걱정되는 것은 그가 현실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기가 힘들 것이라는데 있다. 회사를 40에 그만두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데, 가정을 꾸리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따져보다가 40에 결국 회사를 그만둘 수 없게 되면 그는 그 화살을 누구에게 돌릴까? 만약 10년의 시간 동안 자신의 가정이 소중하다고, 자신은 가정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면 그래도 그의 삶은 꽤나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결혼함으로 인해 가고자 했던 길을 가지 못하게 되었다며 배우자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신의 결혼은 자신이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가 그렇게 원망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그게 걱정이 된다. 그래도 사촌동생이니까.
결혼은 현실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잃게 되는 것이 많을 뿐 아니라 내 인생에 대한 것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가 없게 된다. 내 인생에서의 결정이 내 가족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결혼은 그걸 인지하고, 그럴 각오로 해야 한다. 사업을 하려면 결혼하기 전에 해야 한다는 친한 형의 얘기에도 공감이 가고, 내가 가치를 느끼는 일을 찾아서 가고 있는 이 여정으로 인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결혼이 아주, 매우, 많이 미뤄졌음에도 불구하고 후회하지 않는 것은 서른 살에 결혼을 얘기했던 그 친구와 가정을 꾸렸다면 내 삶이 달라졌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그 때 결혼을 했다면 더 행복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우린 결혼을 얘기했지만 싸우면 엄청 크게 싸웠으니까. 누구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지난 몇 년간 내가 믿는 가치를 따라 내 인생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싱글이었던 영향이 컸단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는지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생이란 게 그렇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한 가지를 가지면, 다른 건 잃게 되어 있다. 우린 살면서 항상 그 사실을 기억하고 받아들여야 하며 이는 결혼을 결심할 때도 마찬가지다.